작가저자 [우리가 주목한 작가] 『말문이 열리는 순간』이온 작가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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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온 ‘따뜻한(溫) 원자(ion)’라는 이름 뜻에 걸맞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 잘하고 좋아하는 일, 여행과 글쓰기를 하며 살아간다. 말보다는 글로, 영상보다는 사진으로 소통하는 편이 편하다. 느긋하게 걸으며 오롯하게 느끼는 정처 없는 방랑자, 거침없는 글쟁이로 살아가고자 한다.
음미해 봅시다,
웅숭깊은 우리 말맛!
『말문이 열리는 순간』이온 작가와의 만남
인터뷰 김상화 기자 사진 장세이
『말문이 열리는 순간』은 찰나의 예술이라 불리는 ‘사진’과 현재성이 강한 우리말 ‘형용사’를 하나씩 짝지은 우리말×사진 산문이다. 한 장의 사진과 하나의 형용사가 만나는 교차점에서 작가는 “형용사가 곧 사진”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고운 우리말로 설파해 간다. 여름내 잘 익은 매실이 어떻게 ‘짙푸르다’일 수 있는지, 지붕 위로 늠름히 올라간 고양이가 어떻게 ‘떳떳하다’일 수 있는지… 시적 정취와 우리말 흥취가 넘실대는 산문을 읽다 보면 뻑뻑했던 마음은 습해지고, 말을 톺는 감각은 작가를 따라 덩달아 섬세해진다. 아무래도 우리말 변태(?)가 쓴 것이 틀림없는 이 책. 그런데… 정확히 누가 쓴 걸까? 책날개의 작가 프로필엔 아무 이력이 없고, 이름조차 필명 같다. 그 필명마저 검색해도 나오는 게 없다. 분명 재야의 고수 향기가 나는데…… “여행과 글쓰기를 하며 살아간다”는 작가 이온, 어디서 온 누굴까?
작가 이온의 정체(?), 다름 아닌 『말문이 열리는 순간』을 펴 낸 이응 출판사 장세이 대표님 본인이셨습니다. 간단한 자 기소개를 요청드려요. 안녕하세요. 『말문이 열리는 순간』의 작가 이온, 우리말 전문 출판사 ‘이응’의 대표 장세이입니다. 저는 잡지사에서 오래도록 기자와 편집 장 생활을 했습니다. 매달 수많은 기사를 쓰며 자연스레 우리말을 가까 이 하며 그 멋과 맛에 더 매료되었는데요. 특히 인터뷰 기사를 쓰며 무 수한 문화예술인을 만났고, 그러는 동안 그들의 내밀한 속내와 지난한 인생을 적확한 단어와 문장으로 구사하기 위해 애쓰며 살았습니다. 그 러한 내력은 자연스레 우리말 책을 내는 작가의 길로 이어졌고, 급기야 우리말 출판사를 운영하도록 이끌었습니다. 한마디로 저는 평생 글밥을 먹으며 말과 글을 가까이 지낸 글쟁이입니다. 하여 ‘장세이(世耳, Say)’라는 이름 또한 이온처럼 ‘세 상을 듣고 세상을 말하다’을 뜻을 담아 스스로 지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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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이’ 대신 ‘이온’으로 이번 책을 내신 이유, 스리슬쩍 여쭙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장세이라는 이름 또한 필명입니다. 처음 기자 생활을 시작하던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에서는 기자의 본명 대신 아이디를 쓰기를 권했습니다. 그때 지은 영어 이름이 세이(say)였습니다. 이후 쭉 그 이름으로 기자 생활을 했고 책을 낼 때도 장세이라는 필명을 썼습니다. 저에게 ‘이온’은 이를테면 요즘 유행하는 ‘부캐’인데요. 기존에 제가 쓴 『맛난 부사』, 『후 불어 꿀떡 먹고 꺽!』 등이 우리말의 너비와 깊이를 들여다보는 교양서인 데 비해 이번 『말문이 열리는 순간』은 직접 찍은 사진과 형용사를 짝 짓고 그에 어울리는 시적 혹은 감성적인 글을 담은 책이라 이전에 낸 책과는 다소 결이 달랐습니다. 언젠가 이온이라는 필명을 쓰고 싶기도 했고, 전작 없는 신인 작가는 기성 작가와 어떻게 다른 평가를 받는지도 오랜만에 느껴 보고 싶어 (이온이라는 새로운 필명으로) 이번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우리말 전문 출판사를 차리기 전엔 생태책방을 꾸리는 숲해설가로, 그 이전엔 20년간 잡지 기자로 생활하셨습니다. 우리말의 말맛에 나도 모르게 훅! 빨려든 첫 시기를 꼽자면요?
맨 처음 기자가 됐을 때는 패션 기자를 꿈꿨어요. (패션이라는 분야만 놓고 보면) 한복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죠. 돌이켜보면 무언가 ‘짓는’ 행위에 끌린 듯해요. 집을 짓는 건축학을 전공하고 싶었고, 옷을 짓는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으나 결국 글을 짓는 작가가 되었으니까요. 사범대학을 졸업해 동기들은 대개 안정된 교사가 되었으나 그 갈림길에서 글을 쓰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느꼈어요. 그토록 원하던 신입 기자가 되어서는 매일같이 국어사전을 뒤적이며, 안다고 생각했으나 제대로 몰랐던 단어, 아예 몰랐던 새로운 단어들을 익히고 글에 적용했습니다. 한 대상을 표현하는 데 딱 알맞은 단어와 문장을 썼을 때의 쾌감은 실로 짜릿했습니다.
의성의태어 활용법을 담은 『후 불어 꿀떡 먹고 꺽!』, 부사의 매력을 소문내는 『맛난 부사』, 한 음절 의성의태어를 가려 뽑은 『뿡빵뻥』 등 다양한 책으로 우리말을 맛깔나게 알리고 계십니다. 책을 쓰고 우리말을 공부하며 알게 되는 ‘오래된 말의 새로움’ 같은 게 있을 듯해요.
얼마 전 『뿡빵뻥』 저자의 글을 쓰며 다시금 깨달았는데요. 우리말은 너무도 신기하게 그 말뜻이 그 말의 꼴에도 고스란히 배어 있다는 점이에요. 한자어는 다소 한계가 있지만 순우리말인 경우에는 그 정도가 더하고, 그중에서도 소리와 모양을 표현하는 의성의태어는 그 특징이 두드러집니다. 가령 ‘하’나 ‘호’처럼 입김을 부는 말은 아픈 대상을 향한 올곧은 마음과 체온을 담은 온기가 그 형상에도 깃들어 있고, ‘앙’이나 ‘왕’ 같은 아기 울음 소리에는 대번에 입을 동그랗게 벌리고 있는 대로 울어 재끼는 아이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주렁주렁’만큼 무언가 주렁주렁한 모습에 적당한 말이 어디 있으며, ‘발밤발밤’처럼 조심조심한 발걸음에 어울리는 말이 또 있겠습니까.

이번 신간 『말문이 열리는 순간』의 주인공은 형용사입니다. 2만여 장의 여행 사진을 정리하다 “형용사는 사진이다!” 문득 터져나온 말에서 출발한 책이라고요.
의성의태어나 부사 등을 주제로 한 책을 쓰고 펴내고, 북페어나 북토크 등의 현장에서 직접 독자를 만났을 때, 대부분은 책을 보고 놀라움이나 반가움을 표현하시는데요. 개중 ‘부사’가 품사 중 하나라는 사실에 얼굴에 빗금이 그어지는 분도 만났습니다. 국어 시간이나 학교 공부에서 우리말을 접하면서 ‘우리말 품사는 어렵다’고 여긴 이들이었습니다. 또한 형용사는 동사와 구분 짓기 (헷갈릴 때가 많고), 영어 형용사와 달리 우리말 형용사는 단독 서술어로 쓰인다는 점 등에서 (형용사를) 가까이 하기를 꺼리더군요. 이토록 아름답고 쓸모 있는 우리말 형용사를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끝에 나온 결과물이 『말문이 열리는 순간』입니다. 현재성이 강한 형용사와 찰나의 예술이라고 불리는 사진을 짝지은, 우리말 사진 산문의 형태로요.

이번 책을 쓰며 새삼 그 단어가 품은 아름다움이나 슬픔, 혹은 깊이감이 작가님 안에서 확장된 형용사가 있다면요? 형용사는 곱씹을수록 아름답기에 참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네요. 문득 ‘웅숭깊다’라는 단어가 떠올라요.
그냥 ‘깊다’라고 해도 되는데 앞에 ‘웅숭’이 붙어 그 깊이에 넓이까지 더해진 말 같아요. 웅덩이나 숭늉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웅숭깊다’의 뜻 ‘생각이나 뜻이 키고 넓다, 사물이 되바라지지 아니하고 깊숙하다(출처: 표준국어대사전)’에 이 두 단어의 특징이 고스란한 점은 참으로 공교롭죠. 이 단어도 어디선가 누군가가 써서 알게 된 말이 아니라 국어사전을 헤집다 우연히 발견한 보석 같은 우리말입니다.
형용사도 형용사지만 이 책은 또한 누가 뭐래도 여행 산문집입니다. “정처 없는 방랑자”로서 거닐거나 멈춰 서기 좋았던 책 속의 장소 하나를 소개해 주세요.
비록 이번 책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요즘 들어 강원도 속초와 고성의 매력에 푹 빠졌어요. 우선 속초에는 동아서점, 문우당서림, 완벽한날들 등 인구가 10만도 안 되는 도시에 오래되거나 특색 있는 서점이 여럿이라는 점이 안정감을 주더라고요. 특히 이 지역은 바다와 산맥의 간극이 좁은 땅인데 그 땅에 뿌리 깊은 책 공간이 자리한다는 점이 든든하기도 해요. 고성의 아야진해변과 울산바위를 마주하노라면 절로 시를 읊게 되기도 하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