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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편집자의 칼럼] 시민의 권리: 한 학기 한 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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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2-10-06 17:37 조회 1,66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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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권리 : 

한 학기 한 권 읽기

최문희 <학교도서관저널> 편집장  




손에 쥐고 다 읽을 수 있을 때까지. 이해되지 않는 문장은 호흡에 맞춰 다시 짚고, 써 보고(필사), 친구들과 읽은 느낌을 나누는 것(이해와 공감). 한 권 의 책을 완독했다는 기쁨을 교실에서 누리는 것. 집에 돌아와선 한 가지를 해냈다는 자신감으로 접힌 자국이 선명한 그 한 권을 책꽂이에 떳떳이 놓아 보는 것. 익명의 중학생이던 시절 내가 교실에서 겪은 한 권 읽기 경험이다. 당시 국어선생님은 읽고 싶은 책을 학생들이 고를 수 있도록 추천 책 목록을 소개한 출력물을 분단별로 돌리셨다. 일주일이 지나자 찜해 둔 책들이 도착했고 나와 친구들은 완독 후 감상문을 제출했다. 귀찮다며 볼멘 소리하거나 학원 마치고 읽어야겠다고 푸념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만날 수 있었다. 자신의 소년기를 반추하며 사랑하는 아들과의 시간을 에세이 『나의 나무 아래에서』로 완성한 소설가를. 열네 살에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을 만난 덕분에 어른이 된 후로도 그의 작품들을 탐독할 수 있었다.  


중학교 시절, 주로 하교 이후 책을 읽곤 했지만 교과 시간에 책을 선택 했던 경험은 나에게 긍정의 경험으로 남아 있다. 제한적이지만 교사가 엄선한 목록 가운데서 마음 가는 책을 고르는 일이 즐거웠다. 나는 초등학 교 시절부터 방과 후 공공도서관에 죽치고 앉아 만화책이든 백과사전이든 눈에 닿는 대로 펼쳐 가며 동생과 놀다가 귀가하곤 했는데, 어쩌면 그래서 누군가가 권장하는 도서목록이 내심 반가웠을지 모른다. 부모님은 맞벌이로 바쁘셨고 어쩌다 백일장 상품으로 받은 문화상품권을 쓰기 위해 고심 해서 책을 사는 소박한 가정의 청소년으로선 온전히 내 소유물로 독서 시간을 공식적으로 누릴 수 있어 즐거웠던 기억이 선명하다. 한 학기 한 권 읽기가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삭제되다시피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중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그리고 비슷한 상황에 놓일 또 다른 청소년들이 독서라는 이름의 울타리를 빼앗길 수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계층을 불문하고 모든 어린이·청소년이 교육과정 안에서 책을 읽을 시간을 더 누리지 못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작은 분노가 일었다.




타인에 대한 문해력을 키우는 한 권 읽기 


한 학기 한 권 읽기(이하 한 권 읽기)는 국어 시간에 책 한 권을 온전히 읽고 생각을 나누는 경험을 학생들에게 주고자 2018년 개설된 것으로,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읽기 후 다양한 후속활동을 꾀할 수 있는 교육 방법이다. 읽을 시간 확보하기, 책을 선택할 권리 존중하기 등 개선 할 점이 많다는 의견이 있지만, 교사의 약 80%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교육 방법이다. 특히, 양질의 도서를 수서하는 사서교사와 도서목록을 꾸릴 수 있는 협업의 가능성이 풍부해서 학교도서관계도 관련 연구를 활발히 꾀하는 추세다.


한 권 읽기는 학년이 높아질수록 책을 읽지 않는(읽을 여유가 없는) 학생들이 한 학기에 한 권이라도 책을 읽을 수 있는 물리적 여건을 제공하고, 책 읽기의 즐거움을 알게 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위에 언급한 중학생 시절 필자의 읽기 경험과 한 권 읽기의 다른 점은 전자가 다소 “개별적이고 자율적인 독서활동”인 것과 달리, 현행 한 권 읽기는 “수업 시간에 한 권의 책을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누며 표현하는 읽기 공동체를 형성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1) 즉 교실에서 읽기가 전면적으로 이뤄진다는 셈인데, 우리는 공동체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9년 국어교사 4855명에게 설문한 결과, 한 권 읽기 선정 도서의 첫 번째 기준은 “인간과 사회에 대해 폭넓은 이해를 돕는 책”인 것으로 나타났다.2) 학생들은 한 권 읽기 이후 다양한 독후활동으로 독서 경험을 친구와 나누며 토론하기, 서평 쓰기, 영상 만들기 등을 통해 교실 구성원들과 깊게 소통한다. 나와 타인 간의 다름을 인지함으로써 이분법의 세계에서 깨어날 수 있는 경험이 읽기인 것이다. 따라서 한 권 읽기를 익히는 것은 타인에 대한 문해력을 기르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1) 『초등 한 학기 한 권 읽기』(전국학교도서관 경남모임 학생사모) 머리글 중에서
2) 「한 학기 한 권 읽기의 실행 양상과 개선 방향」, 서수현(우리말교육현장연구 제13집 2호, 2019)  




반쪽짜리 읽기로 깊이 있는 토론 수업? 


현재 교육부에서 추진하는 2022 국어과 개정내용을 살피면, 한 권 읽기 적용 학년은 50%가 감소했고 모든 학년의 국어 교육과정에서 독서가 줄어 든 것으로 나타났다. 고2∼고3 선택과목 과정에서는 책 읽기 적용 과목 이 71.4%에서 약 34%로 감소했는데, 해당 과목을 선택하지 않으면 청소년은 교과과정 안에서 한 권 읽기를 영영 접할 수 없다. 긍정적인 변화는 개정 교육과정에 프로젝트 수업을 명시했다는 것인데, 이마저 그 바탕이 되는 심도 있는 텍스트, 즉 한 권 읽기 과정을 선행적으로 두지 않았기에 인과관계가 맞지 않는 수업 설계라는 지적이 잇따른다. 교과서에 실린 쪽글을 활용해선 깊이 있는 토론이나 프로젝트 수업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교과서 수업에 의존한다. 반면 호주, 독일, 핀란드 등 많은 복지국가에서는 교사가 수업 주제에 맞는 단행본을 바탕으로 탐구형 프로젝트 교육으로 전환한 지 오래다. 국내의 천편일률적인 교과서 수업 방식에서 탈피하기 위한 대안 중 하나를 한 권 읽기라고 본다면, 교육 부의 이번 정책은 쪽글 읽기를 권하며 사유 없이 암기식 공부에 매달리게 했던 과거의 교육방식으로 후퇴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이와 함께 교육부의 총론 시안도 눈여겨봐야 할 지점이 한둘이 아니다. 연구진은 한 권 읽기를 축소했을 뿐 아니라 초중고 교육과정을 모두 포괄하는 주요 내용 가운데 ‘노동’이라는 단어를 삭제하고 ‘일의 가치’라는 모호한 단어를 새로 추가 했다. 근로자로서 자신을 지킬 권리를 익히는 것의 의미를 얼마나 얕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제야 교실에 정착하기 시작한 생태전환교육과 노동교육, 한 권 읽기를 도려낸 시안을 교실에 적용하면 불 보듯 뻔한 내일이 밀려들 것이다.


우리 교육현장은 두 세계가 더욱 극명하게 갈릴지도 모른다. 사교육 에 고통 받는 세계 그리고 쪼그라든 공교육 공간에서 영문도 모른 채 읽을 권리를 박탈당하며 정크푸드 같은 자극적인 텍스트에 잠식당하는 세계 말이다. 팬데믹 상황으로 이미 벌어질 대로 벌어진 교육격차를 해소하려면 유창한 말하기 프로젝트형 수업이 아닌, 정제된 양질의 텍스트 읽기가 선행돼야 한다. 읽을 책을 고르기 위해 서가와 행간 사이를 마음껏 서성일 수 있는 ‘시간’을 어린이·청소년에게 교과 안에서라도 주어야 한다. 공 교육의 자리에서 교사로부터 교과서가 아닌 또 다른 세계가 담긴 책 한 권을 건네받았던 나이 든 중학생은 생각한다. 손에 쥐고 한 권의 책을 온전히 읽을 수 있을 것. 나를 둘러싼 세계를 마주하고 이해하여 친구를 발견 할 것. 그와 소통하고 이 세계의 작동 방식을 의심하고 좋은 삶을 고민할 줄 알 것. 한 권 읽기를 교과에 온전히 들여야 하는 이유다. 교실에서의 읽기는 누군가가 아닌 누구나를 위하여 계속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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