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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새책 길게읽기 - 아이 눈으로 그린 동학 농민군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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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07 23:09 조회 7,67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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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장한 청년 보부상이 등짐을 지고 다음 장을 향해 길을 걷는다. 반복되는 기나긴 여정의 지루함을 잊기 위해 옛기억의 실마리를 풀어낸다. 청년은 가장 또렷한 열세 살의 기억 속으로 발걸음을 디딘다. 열세 살의 기억은 아버지와 함께 노스님의 서찰을 지니고 전라도로 가는 1년여의 길 위의 여정이다. 서찰은 한 사람을 구하고 때로는 세상을 구할 만큼 중요하다. 이 작품은 『봉주르, 뚜르』로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을 받은 한윤섭 작가의 첫 역사동화로 촘촘한 구성과 맛깔스런 스토리 전개가 문학적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작가는 화려한 미사어구 대신 담백하고 간결한 문체를 구사하고 있다. 이런 문체는 역사라는 주제와 맞물려 더욱 진솔하다.

역사동화는 아이들이 어렵게 생각하는 역사 지식을 모티브로 허구와 버무려 역사에 쉽게 접근시킨다. 대부분의 역사동화는 역사의 단편을 소재로 가상의 인물, 아이를 등장시켜 이야기를 끌어간다. 『서찰을 전하는 아이』는 동학혁명의 현장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이야기가 전개되어 좀 더 깊숙이 역사와 맞물려 있다. 아이가 지나간 길은 수원에서 시작하여 오산, 안성, 성환, 아산, 온양, 예산, 공주, 논산, 백양사, 순창 피노리로 동학혁명의 불길이 뜨거웠던 현장이다. 보부상 아들의 눈을 통해 동학의 실체를 노정시켜 객관적인 시각으로 독자를 이끈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으로 퍼즐 조각을 맞추듯 한 글자 한 글자를 알아가며 떠나는 길에는 동학농민전쟁과 청나라와 일본의 각축장이 된 조선말의 피폐한 우리 역사가 가로놓여 있다. 봉건주의와 일본의 침탈에 맞서 싸운 동학농민전쟁의 물결이 이끼처럼 내려앉아 민초들의 가슴에 스며들고 있었다.

이런 정국은 아이에게 낯설다. 하지만 아이와 나라의 몰락 사이에 아버지의 염원이 있다. 아이는 서찰을 전하는 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임을 알기에 목숨 걸고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간다. 아이는 험난한 세상이지만 해야 할 일이 있어 힘들지 않다. 갈 길을 찾은 아이는 처음으로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노스님의 예지력이 적힌 서찰의 내용은 ‘嗚呼避老里敬天賣綠豆’ 열 글자. 뜻은 ‘슬프도다. 피노리에 사는 경천이 두장군을 파는구나.’ 실제로 전봉준은 김경천의 밀고로 피노리에서 붙잡혀 효수梟首된다.
그 당시 일설에 의하면 녹두장군이 한 노파에게 점을 봤더니 계룡산과 무너미 고개를 벗어나야 산다고 했단다. 그 말에 장군은 충청도로 알고 순창 피노리로 피신했는데 피노리의 뒷산이 계룡산이고 마을 앞 재가 무너미 고개였다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온 노스님의 예지력은 노파의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
아이는 백양사에서 녹두장군을 만나 서찰을 전했으나 녹두장군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다.

“아이야, 내가 나와 함께한 동지도 믿지 못한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 (중략) “피노리에서 잡히지 않았어도 아마 다른 곳에서 잡혔겠지. 내 운이 다한 것뿐이다.” 155쪽

이같은 녹두장군의 생각은 죽음에 다달아 지은 유시遺詩와 맥을 같이한다.

때 만나서는 천지도 내 편이더니 / 운 다하니 영웅도 할 수 없구나. / 백성 사랑 올바른 길 무슨 허물이더냐. / 나라 위한 일편단심 그 누가 알리.

아이는 서찰을 받고도 피노리로 향한 녹두장군에게서 남자로서의 의연함을 본다. 그리고 비록 효수되었지만 전국 곳곳에서 들리는 녹두장군의 노래에서 녹두장군의 기상을 되새긴다.
저자는 아이들이 동학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더해 재미있게 글을 풀어내고 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아이의 노래에 병을 고치는 효험이 있다는 것이다.

재미있게 반복되는 두 가지 모티브는 글자를 알기 위해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과 치료의 효험이 있는 노래다. 아이는 한문을 모르기 때문에 열 개의 글자를 열심히 베껴 네 사람에게 나누어 묻는다. 책장수와 양반은 ‘글자가 중요한 만큼 그에 맞는 대가를 치르는 것이 당연하다’며 돈을 요구한다. 아이는 세 번째와 네 번째 사람에게는 스스로 대가를 지불한다. 그래야 잊어버리지 않는다면서. 아이는 앎에는 대가를 지불해야 자기 것이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이가 부르는 노래는 일곱 번이나 나온다. 처음 노스님이 듣고 ‘네 소리에 약이 들어있다’는 말을 들은 후 아픈 사람에게 노래를 불러준다. 하지만 아이는 글자를 알기 위해 돈을 주었듯이 노래를 부르며 대가를 요구한다. 이유는 대가가 있어야 효능이 있다는 것이다.

글자를 알려주는 것에도 대가를 치러야 하고, 노래의 대가를 받는 반복의 설정이 다분히 교훈적이지만 독자들의 흥미를 끌 만하다. 다만 셈이 밝은 아이라는 칭찬보다 ‘절대 공짜는 없다’는 야박한 인심이 먼저 떠오르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1년여가 지나 열네 살이 된 아이는 전쟁 속에서도 아버지의 유지를 지켜낸 자부심과 녹두장군의 의연함을 본받아 한층 성숙된 아이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청년이 되어서도 잊지 못할 기억으로 함께한다.

책의 말미에 동학농민운동의 발자취와 지도, 사진들을 실어 이해를 돕고 있다. 백대승의 그림은 참 좋다. 글을 보완하는 삽화라기보다 하나의 작품으로서 높은 완성도를 보이며 글과 잘 어우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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