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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4-03-04 10:56 조회 28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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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 세대,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최은영 『알파세대가 학교에 온다』 저자, 초등 교사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온 지 어느덧 15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초임 교사 시절에는 이십 대의 젊은 혈기로 학급 운영과 생활지도 방법들을 잘 익혀 나가면 아이들 앞에서 당당하고 멋진 선생님으로 바로 설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다시 곱씹어 생각해 봐도 나는 여전히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는 새 학기가 두렵다. 3월이 늘 두렵기만 한 건 왜일까? 오랜 기간 쌓아 온 교직 경력과 아이들에 대한 진심 어린 마음, 그리고 열성적으로 쌓아 온 교육 전문 지식 그 모든 것들도 교사의 새 학기 증후군을 해결해 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많은 선생님이 나와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고 계시리라 생각한다. 왜 선생님들은 점점 더 아이들 대하는 게 어렵고, 아이들이 난해하게만 느껴지는 걸까? 그저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들과 세대 차이를 느끼는 나이가 되어 가기 때문이라고 단정 짓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아이들과 맺는 관계가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교사로 살아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아이들이 선생님의 눈을 바라보며 활짝 웃어 줄 때, 얼마나 행복한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해마다 점점 더 이해하기 어려운 아이들의 숫자가 많아지고 있다고 한들, 아이들과 하나로 연결된 듯 소통하는 기쁨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이해해 보려 노력해야 한다. 이해하지 못하면 사랑할 수 없다.



2010년 이후 출생아, 알파 세대의 특징 돋보기

 
정성스러운 손 글씨로 필기하기보다는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기록을 남기는 게 훨씬 더 익숙한 알파 세대 아이들. 교과서와 공책, 그리고 선생님의 목소리만으로는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다. 어서 화려한 동영상과 피피티, 그리고 재미난 수업 활동지가 나와야 한다. 알파 세대의 수업 풍경이다. QR코드를 스캔해 디지털 세상에 접속하고, 인공지능 로봇에게 날씨를 묻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 버린 우리 아이들은 나와는 얼마나 다른 관점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맞춤형 개인의 취향
최초로 아이패드가 출시된 2010년 이후 출생한 알파 세대 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재미있는 유튜브 영상에 노출되어 자랐다. 꼭 유튜브가 아니라도 이 아이들은 아주 이른 나이부터 흥미로운 영상에 푹 빠져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부모의 핸드폰 안에는 화려하고 감각적인 영상은 물론, 재미난 노래와 이야기가 잔뜩 담겨 있다는 것을 아이들을 익히 알고 있다.
이 아이들은 대개 부모님이 틀어 준 영상이 재미가 없으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목소리를 높여 외쳐 왔다. “재미없어요! 다른 거 틀어 주세요.” 우리가 자라던 시절 TV 채널 선택권은 부모에게 있었다. 부모가 저녁 뉴스를 보는 시간에 내가 보고 싶은 만화 영화를 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알파 세대 아이들은 다르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각자의 취향을 존중받으며 보고 싶은 걸 보고, 보기 싫은 건 바로 거부하며 자라났다. 이는 어느 정도 출생률과 관련이 있다. 
알파 세대 아이들은 결혼율과 출생률이 모두 급격하게 저하된 시절에 태어났다. 집안마다 손자나 조카가 태어나면 금이야 옥이야 한없이 무한한 관심과 사랑을 쏟아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여전히 각종 ‘키즈 전용’ 고급 서비스와 상품들이 새롭게 개발돼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은 키즈 용품이 필수품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을 위해 지갑을 열어 줄 어른들의 수요가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한다. 어린이 전용 수영장, 어린이 전용 키즈 카페 등을 떠올려 보자. 아이들은 자신들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가 존재한다는 것에 익숙하다. 부모와 함께 카페에 들러도 어린이 전용 메뉴를 골라 선택할 권한이 주어지지 않으면 왠지 모르게 섭섭함을 느끼는 아이들이 많을 것이다. 이 아이들이 경험한 세상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유난스러운 것이 결코 아니다.

세상에 대한 불안과 공포
내가 학창 시절을 보낸 1990년대를 떠올려 보면, 그때는 세계화와 국제 교류 활성화로 세상에 활기가 가득해 보였다. 낯선 외국인을 만나면 새로운 세계를 마주한 듯 설레며 호기심을 느끼는 사람도 많았을 테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유년기를 보내는 지금의 세상은 어떠한가? 낯선 타인을 결코 함부로 신뢰하며 마주할 수 없는 세상이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다니는 성장기 아이들은 목청 높여 “안 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 구호를 함께 외친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유괴 예방 교육과 아동학대 예방 교육을 받는다. 이 아이들은 낯선 어른이 다가와 말을 걸면 도망쳐야 한다고 배운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환경오염으로 일어날 수 있는 심각한 사회 문제들이 무엇인지 학습한다. 미세먼지와 방사능 유출, 신종 바이러스 감염 문제 등 아이들은 공포 영화에 나올 법한 이야기들을 실제 현실 세계 안에서 이미 생생하게 체험했다. 우리가 처한 세상에 관한 공포심을 키워 왔다. 아이들은 이 세계를 결코 안전하다고 신뢰하지 못한다. 알파 세대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이처럼 불안감이 가득한 세상이다. 
알파 세대 아이들에게는 학교라는 공간도 그다지 안전하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 세상과 이 세상에서 만나게 될 낯선 이들에게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는 게 숙명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 시대 사람들의 인식 체계 안에 뿌리 깊게 사로잡힌 ‘학교폭력’이라는 새로운 합성명사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언제든 폭력이 일어날 수 있다는 가정을 명백하게 드러내는 것 같다. 어른들의 입을 통해 종종 듣는 학교폭력에 관한 이슈들을 접해 본 아이들이라면 학교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곳이 될 수 있는지 상상해 보게 될 테니 말이다.

메타버스 세상이 놀이터
알파 세대 아이들은 유아기 시절부터 부모와 함께 셀카에 이모지를 붙이고 놀았다. 사진을 찍고 그 위에 디지털 스티커를 붙이며 현실 세계의 실시간 ‘디지털화’ 현상을 목격하며 자라난 것이다. 그뿐인가? 초등학생만 되어도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사용해 동영상 촬영을 놀이처럼 즐길 줄 안다. 이 아이들이 태어나서 접한 자연 환경은 온갖 바이러스와 미세먼지, 방사능 공포로 가득한 곳이었다. 반면 디지털 세상은 신선하고 감각적인 재미의 세계였다. 입체적인 3D 아바타를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는, 현실에서는 감히 시도조차 못할 억눌러 둔 욕구들을 발현할 또 다른 페르소나를 갖춘 아이들도 늘고 있다. 빠르고 감각적인 가상 현실에 익숙해진 아이들에게 차분한 마음 상태로 글자를 읽으며 머릿속에서 구체적인 장면을 상상해야 하는 독서라는 행위는 결코 편하게 느껴지는 일이 아닐 것이다. 메타버스 세상을 현실과 구분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며, 어린 시절부터 빠르고 편하고 재미난 것만 추구해 온 아이들의 뇌는 인내심을 요구하는 전통 교육 방식에 길들여지기 힘들다.


이해하고 나면 측은지심이 드는 알파 세대 아이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시대의 공유 정신 혹은 집단의식에 엄청난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세상이 바뀌면 사고 체계도 바뀐다. 현재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 것들이 과거의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듯 말이다.
알파 세대 아이들도 자신이 태어난 시대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과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아 그들만의 공통적인 문화와 특성을 공유한다. 이 아이들의 문화와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이들과 마음을 나누는 소통은 어려울 것이다. 이들은 낯선 어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보다 경계심의 각을 세울 수밖에 없다. 책에 적힌 글자와 선생님의 목소리만으로는 도저히 집중력이 따라 주지 않고, 집 바깥 세계보다는 집 안에서 핸드폰 영상을 보는 게 더 마음이 편안하다는 아이들이 느는 이유는 바로 아이들 개인의 탓이 아닌 아이들이 자라나는 이 현실 세계의 불안과 공포 때문일지 모른다.
알파 세대 아이들은 화려하고 감각적인 디지털 세상과 값비싸고 화려한 상품 디자인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면서도 늘 미래에 관해서는 지구 온난화, 양극화, 인구 감소 등의 이야기에 둘러싸여 있다. 미래를 떠올리면 희망보다 생존의 위협감이 느껴지는 숙명을 안고 사는 것이다. 그뿐인가? 2020년 시작된 코로나19로 성숙한 어른이 되기 전 이미 공포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 생생한 생존 불안을 감당해야만 했던 아이들이다.
유아기의 신체 감각을 통해 디지털 정보에 상시 접속이 가능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자라난 알파 세대 아이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도대체 무엇인지, 이 아이들에게는 어떤 결핍이 있는지 이해해야 진정한 학교 교육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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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같은 사서가 되고 싶어요

사서·사서교사가 꿈인 학생을 만났을 때 

진로 지도법



이덕주 송곡관광고 사서교사



“선생님, 저 도서관학과(지금의 문헌정보학과) 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선생님처럼 살고 싶습니다.” 1984년, 고등학교 2학년이던 내가 당시 나의 롤모델이었던 마포고의 박등우 사서선생님께 했던 이야기다. ‘선생님 같은 사서가 되고 싶다’는 나에게 박등우 선생님은 걱정스러운 눈길로 이렇게 답하셨다. “덕주야. 그런데 이 자리는 그렇게 멋있고 빛나는 자리가 아니야. 신중하게 생각해 봐.” 1993년, 송곡여고에 정식으로 채용됐을 때도 인사를 드리러 갔던 선배 사서교사의 첫 마디는 다음과 같았다. “왜 이쪽으로 왔어. 큰 도서관으로 가지 않고?” 모두 오래전 이야기지만 아직도 이런 말들은 반복될 수 있다고 본다. 과연 내 자녀가 사서교사의 길을 걷겠다고 한다면 선뜻 권장할 수 있을까?

나는 아이들이 어떤 직업을 궁금해하든 해당 직업 세계에 대해 객관적으로 말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전의 양면을 최대한 다 보여 주는 것이다. 또 사서란 정보를 다루는 직업인 만큼, 사서가 꿈인 학생을 만났을 때는 이 전공에 관한 가짜 정보나 편향된 정보를 구분하게 해 줘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사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학생에게 사서의 세계가 적성에 정말 맞는지’다. 나는 이것을 알아보기 위해 사서가 꿈이라며 찾아온 아이들에게는 일부러 많은 질문을 건네는 편이다. 다음은 내가 사서를 진로로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자주 던졌던 질문들이다. 학생들을 사서의 길로 지도할 때 선생님 스스로 가지고 있으면 좋을 마음가짐도 말미에 함께 서술했으니, 앞으로 사서 꿈나무들의 길잡이가 되어 줄 선생님들께 도움이 되면 좋겠다.



 사서가 꿈인 아이들에게 건네는 단골 질문 LIST 

 
Q. 왜 사서가 되고 싶니?
도서부 신입 회원을 뽑을 때 지원 동기를 묻는 질문에 “저는 사서가 되고 싶고, 그러려면 도서부를 하는 것이 유리할 것 같아 지원했습니다.”라고 말하는 학생들을 해마다 한두 명씩은 꼭 만난다. 심지어는 “저는 사서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하는 학생을 만나는 일도 있다. 반갑기도 하지만 나도 40년 전 나의 사서선생님처럼 이 학생이 과연 왜 이 직업이 궁금한 것인지, 사서의 세계를 어디서 어떻게 접하고 이러는 것인지 여러 이유로 걱정과 호기심이 동시에 든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나에게 묻기 전에 먼저 물어본다. 왜 이 직업 세계에 발을 들이려고 하냐고. 아이들은 보통 어느 직업이든 그 직업의 겉모습과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해당 직업의 수준, 블로그나 유튜브에서 보고 습득한 정보에 대해 말한다. 사서가 되려는 이유를 물으면 대개 아이들은 중학교 때 받았던 직업심리검사 결과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양육자와 갔던 공공 도서관의 사서선생님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책 읽기가 좋아서라고도 하고, 중학교 때 만났다는 멋진 학교도서관 사서선생님 이야기도 한다. 때론 막연하게 “좋아 보여서요.”라 답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또 물어본다.

Q. 사서의 무엇이 좋아 보이는데?
아이들의 답변은 각양각색이다. “책을 많이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안정적인 것 같아요.” “도서관이 좋아요.” “멋있어 보여서요.” “그냥 좋아요.” “내향적이고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저에게 맞는 것 같아요.” “내가 보고 싶은 책을 맘대로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시간 여유가 있을 것 같아요.” “요즘 많이 뽑는다고 해서요.” “연예인을 볼 수 있는 방송국 자료실에 근무하고 싶어서요.” 아주 최신 정보에 입각한 답변부터 역시 ‘그냥 좋아요’ 하는 막연한 대답까지 들린다. 그중에서 나의 기분을 가장 좋게 만드는 말은 “선생님이 행복해 보여서요.”라는 말이다. 어, 이 녀석이 어떻게 알았지.

 

Q. 이런 곳 들어가 보았니? 여기부터 가 봐
사서나 사서교사를 꿈꾸며 상담을 하러 오는 아이들을 만나면 나는 우선 ‘사서e마을’이란 네이버 카페를 안내해 준다. 회원가입을 하고 어떤 도서관이나 직장에서 사서를 뽑는지, 정규직 알바직 공고만이 아니라 해외에서 뽑는 공고까지 보라고 일러 준다. 또 자유게시판 등에 익명으로 올라오는 직업적 푸념들도 보라고 한다. 그 글들의 댓글까지도. 다른 사서선생님들도 나와 비슷하게 안내하는 것인지, 실제로 카페 게시판에서 고등학생들의 글을 종종 보기도 한다. 결론은 이렇게 해서 사서 직군의 어려운 점들을 아이들 눈으로 직접 보게 한다. 물론 이런 말을 함께 덧붙인다. “사서e마을에는 아직 취업이 안 되었거나 이직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이 들어가겠지. 그러니까 글들이 많이 부정적일 수 있어. 그러나 그것도 냉철한 현실이니까 잘 봐 두길 바란다.” 

 

Q. 요즘도 사서를 꿈꾸니?
특별히 아이들이 도서관에 찾아오지 않더라도 사서를 진로로 생각한다는 아이들을 나는 가끔 부른다. 그렇게 아이들이 오면 요즘 성적이나 생각을 묻기도 한다. 그러면 많은 아이들이 진로가 변해 있다. 경영학과로, 국어국문학과로, 사회복지학과로, 심지어는 계열이 다른 간호학과로 진로가 변한 아이들도 만난다. 그래도 상대적으로 문헌정보학과를 지망하는 아이들은 진로 바꿈이 흔한 편은 아니다. 졸업해서도 정말로 문헌정보학과만을 지원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입시를 치르는 아이들에게 나는 되도록 성적에 맞춰 학과를 바꾸지 말라고 한다. 수시 지원을 하다 보면 성적이 낮아도 갈 수 있는 문헌정보학과가 고르게 있다. 성적이 좋으면 선택권이 넓어지고 성적이 안 좋으면 선택권이 줄어드는 것뿐이다. 진로를 정했다면 한길로 가도록 안내한다.

(...)

 

Q. 사서교사가 꼭 되고 싶다고? 그렇다면 말이야···
학교도서관의 사서교사가 꼭 되고 싶다는 아이들에게 나는 이렇게 일러 준다. “일단 공부를 잘해야 해. 그래야 사서교사 자격증을 딸 수 있으니까. 사서교사를 양성하는 사범대는 전국에 한 곳이어서 매우 커트라인이 높아. 일반대학을 가면 사서교사 자격증을 받기가 힘들어. 학부 때 사서교사 자격증을 못 따면 교육대학원에 진학해야 해. 그리고 또 임용고시에도 합격해야 하는데 이건 말 그대로 고시야. 하루 12시간씩 1년은 책상 앞에 꼬박 앉아 있을 수 있어야 해.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따로 있어. 내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학생들과 어우러지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지 생각해 봐. 그래야 교직 생활을 보람으로 견딜 수가 있어. 그렇지 않다면 다른 직업을 갖는 게 좋아. 나도, 학생도 행복하기 위해선 아이들을 정말 좋아해야 해. 또 사서교사에게 특별히 필요한 마인드는 주체성이야. 사서교사는 혼자서 학교도서관을 책임져야 해. 즉 학교도서관의 관장인 거야. 많은 것을 스스로 결정하되 윗사람의 잔소리나 세세한 매뉴얼에 의존하지 않고 무언가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해. 내가 속한 학교의 특수한 상황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사서교사 자신이라는 걸 유념해야 해. 배운 원리를 스스로 내가 처한 상황에 적용하면서 일하는 능동성이 필요한 직업이야.”

 

 사서의 길을 안내할 선생님들에게 

 
우리는 존재 자체로 멘토다
문헌정보학과 교수나 도서관 관장들을 만나면 고맙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문헌정보학과에 입학하려는 학생들, 그리고 도서관에 취업하고자 하는 취업 준비생들의 자기소개서를 보다 보면 대부분이 도서부 출신이거나 학창 시절 학교도서관에서 만났던 사서선생님들에게 강렬한 추억과 영향력을 받은 학생들이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공공도서관 사서를 보면서 꿈을 키운 학생들이 좀 있었다면 지금은 압도적으로 학교도서관 사서선생님을 만나 사서의 꿈을 키운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학교도서관의 사서교사들이 대학 교수님들을 먹여 살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에게 “저도 사서 하고 싶어요.” 하고 말했던 학생들이 어느덧 사서교사와 사서로서 이 길을 함께하는 동료가 되어 있는 모습들을 본다. 안정적인 사서로 근무하고 있는 제자들도 있지만 대부분 정규직보다는 취업 준비생으로서 기간제, 대체직, 계약직을 전전하고 있는 제자들이 훨씬 많다. 때로는 같은 길을 가는 제자들을 생각하며 행복하다가 때로는 또 책임감에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한다.

좋은 멘토가 되는 방법
좋은 멘토가 되는 방법은 내가 스스로 행복한 학교도서관 사서의 삶을 살아 내는 것이라고 본다. 내가 행복한 교직 생활을 하면 아이들은 귀신같이 알아본다.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그 역시 아이들은 알아본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 주는 것보다 우리의 학교도서관을 좋은 근무 여건을 갖춘 곳으로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나뿐만이 아니라 사서의 꿈을 키워 갈, 오늘 나에게 상담 온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아이들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 나에겐 책임이 없다’고 나 몰라라 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책임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나는 어느 정도 교육계와 학교에서 편안하게 자리를 잡은 상태다. 하지만 이제 막 이 길을 걷기 시작한 제자 혹은 후배에게 지금의 이곳이 괜찮은 곳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기 자신은 이미 자리를 잡았더라도 ‘새로 시작하는 신규 입장에선 이 현장이 어떻게 보일까?’를 늘 생각하며 진로를 걸어가야 하는 이유다. 사실 신규 사서교사보다는 나의 행복한 교직 생활과 사서 인생을 지속하기 위해서라도 지속 가능한 근무 여건을 계속해서 만들어 가는 일이 절실하다. 사서를 양성하는 대학 교수들이 때로 학생들이 근무하는 열악한 현장에 대해서 무관심할 때, 그분들께 분노하고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이제 선배가 된 나는 나의 멘티들이, 나의 제자들이, 어쩌면 나를 만났기에 걷게 된 이 도서관의 길을 계속 잘 걸을 수 있도록 좋은 현장을 만들어 주고 지켜 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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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태기1)와 친구하는 법

우리는 즐거움을 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

 

김담희 이리영등중 사서교사



책을 읽기 위한 준비는 끝났다. 적당한 조도와 옆 테이블과의 거리, 몰입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의 소음, 무엇보다 안락한 분위기의 카페를 찾았다. 책과 함께 곁들일 커피가 훌륭해야 하는 건 물론이다. 핑크색의 책표지를 넘겨 책날개에 적힌 작가 소개를 읽기 시작하자마자 주문한 커피가 준비되었다는 알람이 울린다. 다시 몇 장을 넘겨 서문을 읽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은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제니 오델)의 첫 문장을 읽는데 시선이 자꾸만 가방 속에 넣어둔 스마트폰으로 향한다. 알림이 울리지 않는데도 왠지 중요하고도 재미있는 일이 내가 있는 여기가 아닌, 화면 너머 저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분이다. 사실이 아닌 줄 알면서도 그 기분에 속아 넘어가다 보면 책장은 여전히 제자리다. 그 사이 ‘책태기’가 성큼 다가온다. 책태기는 다양한 얼굴로 찾아온다. 그 얼굴은 스마트폰이기도 하고, 감당하기 버거운 업무량이기도 하며, 질병과 돌봄이기도 하다. 때로는 알 수 없는 얼굴이기도 하다. 학교도서관에서 일하는 사서교사가 그 얼굴이 달가울 리 없다. 읽어야 할 책들이 매일 쌓이고 당장 읽어야 할 책들도 책상 위에 한가득한데, 옆에 눌러앉아 떠날 생각이 없는 책태기의 얼굴을 보면 얄미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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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시기를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로, ‘권태기’에라는 단어에서 비롯된 신조어다. 



책을 읽지 않을 독자의 권리도 있다

책태기가 왔다면 먼저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그를 물리치고 싶은지를 말이다. 수업 준비나 각종 업무로 인하여 당장 읽어야 할 책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책태기와 조금 더 함께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사서교사인 우리에게도 책을 읽지 않을 독자의 권리가 있다. 그럴 때면 필자는 책을 완전히 멀리한다. 연애 프로그램을 보고, 요리를 하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도서관 사서로 일하며 평생을 지독한 독서가로 살아온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독서의 목적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난 의무적인 독서는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의무적인 독서보다는 차라리 의무적인 사랑이나

의무적인 행복에 관해 얘기하는 게 나을 거예요. 우리는 즐거움을 위해 책을 읽어야 해요.” 

 

-『보르헤스의 말』 중에서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부터 시작한 독서에 대한 압박은 책태기의 훌륭한 먹이다. 그 의무감으로부터 조금은 놓여나 또 다른 즐거운 일들을 하다 보면 책태기는 어느새 슬쩍 물러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는 의무감으로 펼친 책이라 하더라도 그 가운데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사서교사는 책 읽기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도저히 한 톨의 재미도 없을 것 같은 책에서도 끝끝내 즐거움을 찾아내어 그 즐거움을 전달해야 하는 일은 쉽지 않은 만큼 근사한 사서교사의 일이다. 책태기를 물리치기 위하여 어떻게든 책 읽기의 즐거움을 되찾아야만 할 때, 필자가 활용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몇 가지 소개하겠다. 책을 읽고 싶지 않지만 읽어야만 할 때, 책을 읽고 싶지만 읽기가 쉽지 않을 때 등 각자의 상황에 맞추어 시도해 보기를 권한다.



그럼에도 읽을 마음을 회복하고 싶은 당신에게


첫째, 이동하는 동선마다 책을 놓아 둔다

필자의 침대 머리맡에는 클라우디아 해먼드의 『잘 쉬는 기술』이, 매일 들고 다니는 가방에는 천선란의 『노을 건너기』와 한병철의 『서사의 위기』가, 거실 책상 위에는 홍은전의 『나는 동물』이 놓여 있다. 지독한 ‘병렬 독서가’라서 읽다 만 책들이 아무렇게나 놓인 것이기도 하지만, 장소와 어울리는 책을 의식적으로 놓아 두기도 한다. 책을 멀리하는 시기에는 핸드폰과 태블릿, 리모컨만 책상 위에 두기 때문이다. 보는 행위는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다. 앞서 펼친 핑크색 표지의 책에는 이런 문장이 등장한다. “보는 행위는 사람들이 좀처럼 연습하지 않는 하나의 기술이자 의식적 결정이다. 우리가 기꺼이 보려고 하고, 우리에게 볼 능력이 있을 때만 이 세상에는 볼 것이 정말 많다.”(『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우리의 시선이 닿는 곳에, 손을 뻗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우리가 보고자 하는 대상들을 부려 놓는 일은 그 대상에 온전한 관심을 기울이는 데 매력적인 출입문이자 튼튼한 징검다리가 되어 줄 것이다.

둘째, 읽어야 하는 책과 읽고 싶은 책의 비중을 조절한다
사서교사라면 모두 한 권쯤은 자기만의 ‘필승의 책’이 있으리라 짐작한다. 이 책이라면 즐거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 확신하는 책 말이다. 읽어야 하는 책 사이에 그러한 책을 한 권씩 끼워 넣어 보면 어떨까. 이는 책 읽기가 의무감에 잠식되지 않도록 하는 좋은 장치가 되어 줄 것이다. 책태기를 겪는 한 학생을 상상해 보자. 다시 책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책장을 넘기기가 바쁠 정도로 흥미진진한 책 한 권을 쥐여 줄 수도 있고, 독서의 속도를 조절하도록 지도할 수도 있고, 책의 적절한 독서법을 안내할 수도 있다. 밑줄을 그어 왔다면 필사를 한다든지, 인물 관계도를 그려 본다든지 하는 식으로 다양한 독서 전략을 적용해 보게 이끌 수도 있겠다. 이렇듯 학교도서관에서 만나는 학생들에게 좋은 책을 읽히고자 하는 마음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먼저 사서선생님이 되어 주면 어떨까. 

셋째,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마음으로 문장들을 읽는다
대충 아는 것을 잘 아는 것으로, 심지어 모르는 것도 아는 것으로 착각하기 쉬운 세상이다. 책을 펼치기 전, ‘내가 제대로 아는 것은 하나도 없다’라는 마음으로, 어린이가 처음 그림책을 읽는 마음으로, 어떤 문장이든지 감탄하고 크게 놀라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다. 당연히 엄청 어렵다. 채 얼마 읽지 않고서도 어찌나 아는 척을 저절로 하게 되는지 ‘아, 이거, 아, 그거’를 연발한다. 그때마다 잠시 멈추어 한 문장씩 정확히 읽으며 ‘세상에 이런 일이 있구나’ 하며 다시 되뇐다. 그렇게 새 마음으로 본 책은 분명 재미있고 아름답다.

(...)

마침내 핑크색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그 사이 엉덩이를 열두 번을 떼고, 인스타그램을 스물일곱 번쯤 열었으며, 커피 석 잔을 마셨다. 그러나 중요한 건 책을 끝까지 읽었고, 읽는 내내 꽤 즐거웠다는 사실이다. 책 읽기가 곤란해질 때마다 온몸으로 경험했던 독서의 즐거움을 떠올린다면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결국 다시 책으로 손을 뻗게 되리라 확신한다. 그리고 이 확신은 사서교사로서 학교도서관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알려 주고 싶은 경험의 본질과도 맞닿아 있다. 이토록 아름다운 일을 하는 사서선생님들의 즐거운 읽기 생활을 마음 다해 응원한다. 
 

맛보기로 소개한 특집 외 다양한 이야기는 2024 <학교도서관저널> 3월호에 수록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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