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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여행! 세상은 열린 도서관이 되다] 도서관 여행, 지도를 펼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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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9-25 14:51 조회 7,06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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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예린 건축사사무소 S.O.A. / 『도서관 산책자』저자


여행은 집에 돌아오는 가장 느리고도 창의적인 방법이다. 돌아온다는 전제로 떠나는 것이 여행이라면, 도서관을 여행하는 것은 다양한 도서관 경험을 일상에 들여오는 과정이기도 하다. 따라서 책을 읽기 위해서 가는 여행이기도 하지만, 도서관이 삶에 줄 수 있는 풍요로움과 다양한 가치를 체험하고 확인하는 일이 더 중요해 보인다.

도서관이 지역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을 살피면서 짐작할 수 있다. 책의 집이 가지고 있는 공간의 유형에 따라, ‘읽는다’는 것이 다채로워질 수 있다. 높은 천장 아래에서 책을 읽으면, 책 읽는 자신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내려놓기도 한다. 낮은 천장의 서가에서 책의 줄거리를 따라가며 자신을 동화하기도 하고, 보기 힘든 책들이 꽂힌 서가를 오르내리며 고고학자처럼 책을 발굴하기도 한다. 검색하는 대신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할 때까지 시간을 들여서 서가를 헤매다 길을 잃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책을 읽고 책에 감응하는 것은 서가가 거드는 분위기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공간이라도 경험의 내용도 상대적이다. 다양한 서가 속 책읽기를 경험하면, 책 읽기가 더 좋아질 수 있다. 이때의 도서관은 ‘책을 읽다’라는 것의 본뜻을 가르치는 ‘학교’와도 같다.

이 글에서는 세 개의 다른 도서관을 여행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세 가지 지도를 제시하려 한다.
첫 번째, 서울도서관으로의 여행은 도서관이 지역민의 일상 경로의 중심이 될 때, 지역에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경험하는 경로다. 두 번째, 세계적으로 유일한 ‘출판’과 ‘건축’을 주제로 생성된 파주출판도시(Paju Book City)와 열화당의 책방+도서관을 통해서는 출판계와 도서관이 어떻게 조화로운 생태계를 이룰지 기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부산의 김성종 추리문학관에서는 도서관을 통해 보호되고 활성화되는 장르문학에 대해 관심을 가져봤으면 한다. 물론 꼭 지도에 난 길로 도서관을 살피고 누릴 필요는 없다. 하지만 도서관이 딛고 서 있는 도서관과 책 문화를 통해 이해한다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일상에서 내 주변의 도서관을 보면서 많은 기대와 질문을 던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도서관은 좋은 질문과 기대로 성장하는 유기체와 같다.




도시의 중심이 되는 도서관 : 서울도서관

도시의 발달 속도에 비해 도서관 문화가 늦게 성숙한 한국에서 도서관은 좋은 땅을 차지할 수 없었다. 도서관들은 높은 지가를 피해 접근성이 떨어지는 자연녹지지역이나 외곽을 택했다.

그러나 비교적 최근에 생긴 런던의 신개념 도서관 ‘아이디어 스토어(idea store)’는 아예 쇼핑몰이나 시장 내부에 도서관을 지었다. ‘책을 고르고 빌리는 것’이 ‘물건을 고르고 사는’ 정도로 자연스러운 생활 행위가 될 수 있게 의도한 것이다.

작년 10월에 개관한 서울도서관도 아이디어 스토어와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굳이 가야하는 곳’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지나칠 수밖에 없는 곳’에 도서관이 있다면, 이 장소가 얼마나 자연스럽고 활기찬 생활공간이 될 수 있겠는가?” 하루에 2만 명, 한 달에 30여만 명이 방문하는 서울도서관은 이 질문에 스스로 답하고 있다. 1926년 경성부청사로 지어진 근대 건축물이 서울시청사로 사용되다가 서울의 대표 도서관으로 바뀐 것이다. 애당초 이 자리는 접근성이 가장 좋았다. 서울의 남북축인 세종로와 동서축인 종로가 마주치는 접점이니 서울의 핵심부에 해당한다. 주변에는 광화문과 정부청사, 광장, 중심상업시설이 즐비하다. 게다가 지하철 시청역에서 내리면 곧바로 서울도서관 지하로 연결된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바로 진입할 수 있는 건물은 백화점이나 오피스, 주상복합과 같은 상업 건물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비상업적인 도서관이 지하철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도시계획의 측면에서는 하나의 사건이다.

서울도서관은 지상과 지하 모두 서울의 일상공간의 중심을 차지한다. 작정하지 않고도 쉽게 갈 수 있으며, 저녁 9시까지 이용가능한 도서관에서는 다채로운 이용자들을 만날 수 있다. 정장 차림으로 점심시간에 짬 내거나 퇴근 후 도서관을 들른 사람들, 쇼핑 전후에 오는 사람들, 근처의 탑골공원을 배회하다가 자연스럽게 오시는 노인 분들, 데이트 커플, 가족들, 주말에 각종 행사에 왔다가 들르는 사람들 등 다양하다. 보통의 도서관에서는 학생이나 취업준비생, 퇴직자들이 주류인 것과 사뭇 대조적이다.

지역의 ‘공공의 방(Public room)’으로서의 도서관

접근성 측면에서는 도움이 되지만, 도서관 앞에 있는 광장은 서울시 대표 도서관에게는 풀어야 할 숙제이다. 각종 행사와 집회의 장으로 자리 잡은 시청 앞 광장과 공생을 하는 것은 도서관으로서는 쉬운 일처럼 보이지 않는다. 바깥의 활기는 도서관을 이용하는 데 불편함이 될 수 있다. 서울도서관은 바깥 소음을 차단하고 창 쪽의 서가를 이중으로 두어서, 여차하면 창문을 가릴 수 있도록 갖춰 놓고 있다. 이 이중서가는 앞으로 장서가 늘어날 때를 대비한 방책이자, 방음벽이다. 그러나 바깥의 소란함에 귀를 막는 것이 근본적인 대안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막는 것도 한계가 있다.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묻혀 온 바깥의 북적거림은 제1열람실을 금방 술렁이게 한다. 하지만 여기서 질문할 수 있다. ‘활발하게 시민이 오가는 응접실과 같은 도서관이 나쁜 것인가? 도서관은 조용해야만 하는가?’ 미국 시애틀의 랜드마크가 된 시애틀 라이브러리는 도서관에 들어가자마자 ‘응접실(living room)’이라는 커다란 공간이 있다. 새 책을 접할 수 있고, 햇볕이 들어오는 창가에서 책을 읽거나 두런두런 책을 두고 토론할 수도 있다. 조용하게 개인화된 독서를 하는 것 못지않게, 책을 매개로 사람을 만나게 하는 것이 도서관의 주요한 목적이라는 생각에서 만든 공간이다.

서울도서관의 5미터 높이 벽면서가 옆의 계단식 자리에서 다리를 뻗어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거나,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을 보면 서울시민이 공공의 응접실을 나누어 쓰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보기 좋다. 공공건물 중에서 도서관만큼 지역주민이 오랫동안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이러한 공공의 방으로서의 도서관은 도시를 커뮤니티로 묶는 데 기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지역과 함께 나이 먹기,
지역을 기록하기

중심지에 있다는 것 못지않은 서울도서관의 또 다른 특징은 이 도서관이 ‘서울’의 ‘대표’ 도서관인데 있다. 서울을 기록하면서 서울과 더불어 나이를 먹는 것, 서울에 있는 도서관들을 네트워크해서 하나의 유기체처럼 작동하게 하는 것이 서울도서관의 역할이다. 옛날 서울역사가 ‘문화역서울 284’로 다시 태어난 것에 이어서, 서울의 3대 근대 건축물인 서울시청사(경성부청사)를 없애지 않고 재활용해서 살려냈다는 점에서 서울도서관은 그 태생부터 서울을 기억(기록)하려는 목적에 부합되었다. 근대 초기에 관사로 만들어진 건물이기 때문에 갖는 건축 공간 폭의 한계는 새 도서관임에도 불구하고 좁다는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발현되는 독특한 장소감은 새로 지어낼 수 없는 것이다. ‘관’이라는 권위적인 건물이 가진 위계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중앙 계단으로 집중된 동선을 1열람실과 2열람실은 중앙계단을 거치지 않고 계단식 서가로 연결하였다. 건물이 어두워지지 않도록 바닥을 뚫어서 천창에서 내려온 빛이 홀과 열람실로 들이면서, 근대건축물의 단점을 극복하려 한 점도 보인다. 관청을 도서관으로 바꾼 과정을 기록한 것은 3층에 전시되어 있다.

서울도서관은 서울을 대표하고 기록하는 도서관이기도 하다. 모든 시정기록물들과 서울학 자료들을 ‘서울자료실’과 ‘서울기록문화관’이라는 3층에 보관하고 있다. 예전에는 서울 관련 자료들을 살피기 위해서는 시청에 있는 자료실이나, 서울연구원의 도서관, 서울시립대학교의 서울학연구소, 서울역사박물관의 책방 등을 돌아다녀야 했다. 이제는 서울도서관이 통합해서 서울을 기록한다. 연도별 서울의 지도, 서울학, 서울의 도시계획, 도시경영, 서울의 제반 도시정책에 관한 부분들은 물론,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신이 연구해 온 관련 서가를 내어준 ‘명사의 작은 도서관’도 배치되어 있다. 이런 자료가 계속 늘어난다면, 서울에 대한 자료의 질은 더 높아지고 이 자료를 토대로 만들어지는 서울의 연구 자료가 다시 이곳에 쌓일 것이다.


도서관과 같은 도시 : 파주출판도시와 열화당 도서관

책을 읽기 위해 가는 여행이 있다면, 책 마을로 가는 여행도 있다. 책으로 기획된 마을이나 도시와 같은 너른 공간의 느낌과 장소감을 느끼기 위해 가는 여행이다. 한국에는 아직 책 마을이 존재하지 않지만, 책을 기획하고 생산하기 위한 출판문화도시가 있다. 자유로가 생기면서 만들어진 폐천 부지를 매립한 땅 위에 세워진 습지 도시(urban wetland) 파주출판단지이다. 이 도시는 출판계와 건축계가 책과 건축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만든 신도시이다. 자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신도시가 아니라, 주변 경관(landscape)과 책을 통해 생산된 인문경관을 존중하며 만들어진 인문화 된 장소다.

파주출판도시는 책을 만드는 산업을 문화 공간화하기 위해 기획한 것이다. 책을 기획하는 출판의 시작에서부터, 만들어지고(편집, 인쇄), 시장에 배포되는(물류, 유통) 과정에 이르기까지가 이 도시의 근간을 이룬다. 한마디로 책이 탄생하는 모든 과정을 담은 도시다. 그래서인지 파주출판단지는 도서관과 같은 느낌을 준다.

실제로 파주출판단지의 6가지 건축 유형 중에는 ‘서가유형(bookshelves units)’이 있다. 땅에 건물이 앉혀지는 방식이 서가의 배치와 유사하게 되어 있는 곳이다. 서가유형에 있는 출판사 사옥은 다섯수레, 살림출판사, 글로벌, 밝은세상, 청아출판사, 대림지업사, 국민서관, 좋은생각 사람들, 열화당, 다락원, 열린책들, 한길사, 교육과학사, 보림출판사, 청년사, 도서출판 보리, 지식산업사, 음악세계, 삼호뮤직 등이다. 이 거리에 들어서면 출판사별로 분류된 책장에 들어온 듯하다.

각 출판사들은 사옥의 1~2층에서 자기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소개하고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책방을 두었다. 각 출판사 건물의 덩어리만 놓고 봐도 서가이지만, 실제 이 거리를 걷고 있으면 양쪽의 각 출판사들의 책방들이 이루어낸 책방 거리를 걷는 느낌이다. 책을 기획하고 생산하는 도시에서 책을 이용하고 전파하는 도시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이 거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열화당이다. 예술분야 전문 출판사 열화당은 사옥의 옆에 아트 야드(art yard)를 사이에 두고 2009년 ‘도서관+책방’의 형태를 지닌 신관을 만들었다. 아예 건물을 새로 만들었다.

이곳에서는 열화당에서 오랫동안 소장해 온 책, 특히 예술 전문 출판사로서 구비해 온 미술, 사진, 디자인, 건축, 전통문화에 관한 책을 읽을 수도 있고, 마음에 든다면 구매할 수도 있는 곳이다. 이름 그대로 도서관이자 책방이다. 하지만 이름처럼 도서관이 먼저다.

이전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이기도 했던 열화당 발행인은 각 출판사들이 자기 출판사에서 나온 책과 그 분야의 전문 서적을 도서관으로 만들어 공유한다면, 출판도시 전체가 ‘도서관 도시’가 될 수 있지 않겠냐며 그 꿈을 먼저 실현했다. 이곳은 출판도시를 방문하는 누구라도 이용할 수 있다.

오랫동안 모아온 옛 책과 열화당에서 새로 낸 책들이 층을 사이에 두고 있다. 복층으로 된 높은 1층의 공간의 테두리를 2층인 갤러리층이 두르고 있다. 사람들은 1층에서 새로 나온 책을 뒤적이다가 2층에 올라가서 옛 책을 뒤지다가 난간에 앉아서 1층을 내려다보며 책을 읽을 수 있다. 혹은 1층에 앉아서 천장에서 은은하게 내려오는 빛을 받으며 책에 집중할 수도 있다. 열화당의 책들은 미술 전문서적이나 사진 전문서적이 많아서 많이 찍지 않아 금세 절판된 경우가 많은데, 이곳에 오면 다시 찾기 힘든 책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런 갤러리 형식의 복층 공간은 전통적인 도서관에서 많이 사용된 건축의 형식인데, 건물 외관의 클래식한 면모와 잘 어울린다. 그림을 보기에 좋은 빛에 찬찬히 한 장 한 장 넘기기에 충분할 정도로 느리게 가고 있는 공간이다. 열화당 사옥을 설계한 플로리안 베이겔이 이 건물도 설계했기 때문에, 출판사와 도서관은 닮은꼴이다.


열린 도서관은 준비 중

열화당 도서관+책방과 같은 도서관과 같은 도서관은 파주 출판단지에 절실하게 필요하다. 특히 파주출판도시를 방문하는 사람보다는 여기서 근무하는 출판인들을 위해 필요하다. 건축이 지반에서부터 올라가는 것처럼 새로운 책은 기존의 책으로부터 태어나 자라나기 때문이다. 도서관의 기본 기능은 기존 책에서 새 책을 틔워내는 것이다.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집필한 아놀드 하우저도 브리티시 라이브러리에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하우저와 같은 책의 저자뿐 아니라 책을 기획하고 만드는 출판인들에게도 새로운 책을 위해 기존의 책이 필요하다. 이들에게 도서관은 무엇보다 필요한 인프라(infrastructure)다.

그런 점에서 파주출판도시에 모든 출판인들을 위한 통합된 도서관을 지으려고 하고 있다. 제2기로 들어선 파주출판단지가 시작되면서 도서관과 영상을 기본으로 하는 문화 콘텐츠들이 도시를 직조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열린 도서관’이라는 가제로 이루어지는 도서관은 올해 안에 일부 개방될 예정이다. 도서관이 지어진다면 더 좋은 책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일상을 떠난 도서관 :
부산 ‘김성종 추리문학관’

여름을 앞에 두고 여러 기관에서 휴가 가서 읽으면 좋은 책 시리즈가 나온다. 추리소설은 이 항목의 단골손님이다. 우리뿐이 아니다. 앙드레 지드, 헤밍웨이, 카뮈 같은 전 세계의 대문호들도 벨기에 추리소설가 ‘조르주 심농’의 책으로 휴가를 보냈다. 추리소설의 미스터리를 따라가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현실을 잊고 줄거리에 몰두하며 더위도 추위도 다 책 속의 현실에 무뎌진다.

이런 추리소설이 1만 7,000권이 쌓여있는 도서관에서 보내는 여행은 한 곳에서 머물더라도 다채로울 것이다. 더욱이 이 도서관은 대표적인 휴가지인 부산 해운대에서 멀지 않은 달맞이 언덕에 있다. ‘김성종 추리문학관’이다. 집의 제목이 말해주듯이 한국의 대표적인 추리소설가 김성종 씨 개인이 만든 사립도서관이자 문학관이다. 그는 추리소설의 토양이 얕은 한국에서 이 장르의 발전을 견인하고자 ‘전문도서관’을 세웠다. 벌써 20년도 넘은 일이다. 최초의 전문 도서관이자 문학관으로서, SF&판타지 도서관도 이 사례를 좇아 장르문학을 발전시키기 위한 견인차로서 도서관을 만들었다.

왜 한국에서는 추리소설이 발달하지 않았을까? 도시화와 산업화가 서양에 비해 늦게 일어났으며, 전쟁의 피해에서 회복하기 위해 도시화와 산업화를 상대적으로 별 갈등 없이 받아들인 측면이 있다. 미스터리 소설, 범죄소설로 불리는 추리소설은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튀어져 나온 도시의 병리현상을 다루는 장르이다. 그래서 추리소설은 산업화와 도시화가 제일 빨리 진행된 영국에서 태어났고 신문이나 타블로이드 판형의 출판시장의 확산과 더불어 인기를 얻었다. 도시의 밀도가 높아지고, 소득 격차가 심해지고, 공동체가 해체되면서 발생하는 범죄와 병리현상은 추리소설이 탄생한 배경이다. 이 고전 추리소설의 경우는 이해하기 힘든 도시의 낯선 병리현상을 인간의 이성이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추리소설의 양대 산맥인 일본의 경우는 ‘사회파 추리소설’이 있다. 『점과 선』으로 대표되는 마츠모토 세이초의 작품, 『화차』의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들은 일본의 거품경제나 미디어와 익명성에 관해서 생각하게 한다.

미스터리의 줄거리를 거둬들이면 그 배경이 되는 도시와 사회를 마주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한국의 추리소설을 읽고 맞닥뜨리게 되는 도시의 얼굴은 무엇일까? 전근대와 근대가 복잡하게 얽혀 있으면서 생겨난 사건의 내막을 아직도 ‘쫓는 과정 : 수사’에 있지 않나 싶다. 그런 점에서 부산에 추리문학관을 세운 것은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나 <사생결단>과 같은 많은 수사물 영화가 부산을 배경으로 한 것과 맥이 닿는다.


기이한 건축을 배경으로 하는
미스터리의 향연


문학관의 장르를 표현하기 위해 ‘추리문학관’이라는 명칭을 달았겠지만, 도서관이 아닌 ‘추리문학관’이라고 하니 특정한 형태의 건축에 대해 상상하게 된다. 홈즈가 단서를 모아서 사건의 퍼즐을 짜 맞추는 살롱과 같은 장소가 떠오르기도 하고, 포와로가 용의자들을 모아두면서 사건을 재구성하며 의외의 결과를 발표하는 저택의 응접실 같은 공간을 상상하게 된다. 또한 일본 추리소설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도시에서 교통이 끊긴 오지의 숲으로 들어왔더니, 놀랍게도 서양식 야릇한 건물이 있고, 그 안을 배경으로 비밀과 살인이 오가더라’는 그런 사건의 배경으로서의 건축(아야츠지 유키토과 같은 소설가는 ‘기면관, 인형관, 흑묘관, 수차관, 미로관, 암흑관, 시계관, 십각관’의 살인과 같은 ‘관’ 시리즈를 기획했다)이 떠오르기도 한다.

도시가 추리소설의 숨은 배경이라면 추리소설 속에서 드러나는 기묘한 분위기의 집들은 사건을 발생시키기도 하고, 해결하기도 하는 세트장과 같은 특성을 지녔다. 김성종 추리문학관의 1층에는 이런 추리소설의 세트장과 같은 공간이 있다. ‘셜록 홈즈의 집’으로 불리는 1층 공간에는 작가가 집필의 원천으로 삼았던 역사적인 추리소설과 추리소설 작가들의 사진이 있다. 의자는 살롱 형태의 의자로 차를 한 잔 마시면서 추리소설을 읽는다면 어느 곳에 와있는지 순간적으로 잃어버릴 것만 같다. 2층으로 올라가면 김성종 씨의 대표 소설인 『여명의 눈동자』를 테마로 하는 열람실이 있고, 3층과 4층에는 보다 새로운 추리소설과 기타 문학소설들이 있다. 합해서 5만 권 정도로 개인이 운영하는 도서관으로서 만만치 않은 규모다.

이곳에서는 책을 읽는 것을 넘어서 ‘추리여행’, ‘추리창작교실’, ‘추리문학관 독서클럽’에 이르기까지 추리소설이라는 장르 문화를 활성하기 위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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