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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여행! 세상은 열린 도서관이 되다] 김영갑갤러리두모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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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9-25 14:26 조회 8,05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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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성 시인, 글로벌사이버대 겸임교수

사진가 한 사람이 삼달국민학교 폐교 터를 사들였다. 가까스로 2002년 여름에 ‘김영갑갤러리두모악’이라고 자기 이름을 붙여 그동안 찍은 제주 사진 수만 컷을 보여주고, 간직할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생고생 이십 년 세월이 자기 몸에 루게릭병(근위축성측색경화증)이라는 흉측한 덫을 쳐 놓은 줄은 꿈에도 몰랐다. 2005년 5월 29일, 결국 그는 눈을 감았다.

정작 주인은 떠났으나, 그가 목숨값으로 만들어 놓고 간 ‘두모악’은 더 흥청거렸다. 미완성의 정원에 제주 돌이 더 들어왔고, 그가 생전에 심은 어린 나무들이 뿌리를 내렸고, 애인처럼 아끼던 감나무에선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왔다.’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하고도 삼달리, 이름조차 낯설던 시골마을을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내남없이 찾아주었다. 처음엔 도민들이 태반이었다가 점차 육지 손님들이 늘었다. 벌써 개관 10년을 맞았고, 그가 간 지 8주기를 넘긴 ‘두모악’은 이제 뜻있는 사람들의 제주여행에선 빼놓을 수 없는 순례지가 되었다.

나는 가끔 ‘그’를 만나러 자전거 타고 간다. ‘같이 내려와 살자’던 약속을 그가 떠난 지 4년 후에나 지킨 셈으로, 옆 마을 신풍리에 2009년부터 귀촌해 사는 덕에 그리움이 도지면 자전거 타고 휘딱 ‘그가 없는 그의 갤러리’로 간다. 외지 사람들은 제주공항이나 제주항에서 내려 지방도로 97호 번영로를 타고 대천동, 성읍민속마을 들러 오거나, 성산항으로 들어와 1132번 일주도로로 10여 분 움직여 신산리 지나 삼달리 1리 주민센터(리사무소)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갤러리를 찾는다. 나는 코 앞 이웃이라 일도 아니고, 먼 길 오는 이들도 내비게이션이 좋아, 길 한번 물어보는 일 없이 곧잘 찾아온다.


우기에 들어선 갤러리 뜨락엔 산수국 보랏빛 꽃잎들이 함초롬하다. 옛 운동장 터에 미로처럼 길을 내고 둥그렇게 제주돌을 쌓아올려 마삭줄을 감아올린 갤러리 어귀 길에 육지 처녀 서넛이 감나무 잎처럼 푸르게 재잘거린다. 그 사이 휘파람새가 길게 한 울음 떨구고 가고, 금목서 이파리 사이로 잠시 갠 하늘이 삐죽 얼굴을 내민다.

생전의 ‘그’는 운동장은 제주 중산간의 빛과 색으로, 교실은 상설전시실과 초대전시실로 꾸며 제주 중산간마을 풍경과 자신이 찍은 제주사진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 같은 그의 유지는 그의 수제자이자 현 관장인 박훈일 사진가가 어김없이 받아 지키고 있다.

뜰에 상록수목보다 활엽 낙엽수(말오줌때, 때죽나무, 화살나무, 동백나무, 땡감나무 등)가 많고 지피식물도 수선화, 감국, 노랑붓꽃, 산수국, 개모밀덩굴 등으로 고집스럽게 제주다움을 보여주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현재 하날오름관(유작전: <내가 본 이어도> 중에서, 연말까지), 두모악관(상설전: <구름이 내게 가져다 준 행복>, 연말까지)으로 나뉜 전시실 두 동에서는 그의 대표작들이 철따라 색다른 주제로 전시되고 있다.

갤러리 전시동의 나무문을 열고 들어서면 먼저 만나는 곳이 매표소와 아트샵이다. 아트샵에선 김영갑 사진가의 작품을 프린트한 엽서와 포스터, 자전 에세이집과 추모에세이집, 사진작품집 들이 주인을 기다린다.

‘김영갑’이 낯설고, 갤러리도 초행이라면 인터넷 사이트(www.dumoak.co.kr)에서 기본 정보를 훑고 가는 것도 좋을 터이다.


갤러리 뒤뜰, 소담한 무인찻집에 앉아 나는 간간이 길손들과 대화를 나눈다.
“좋죠?”

뜬금없고, 두서도 없는 내 우문에도 길손들은 각각 무지개 빛깔의 현답을 내놓는다.
“두 번째예요. 작년 가을엔 친구하고, 이번엔 혼자서. 그 친구한테 엽서 썼어요. 초여름에 오니 더 좋다고.”
“연애 시절 둘이 왔는데, 이번엔 세 사람이네요. 네 살짜리 아들하고 같이요. 처음엔 이월이라 수선화가 곱던데, 오늘은 산수국이 기막히네요.”

길손들은 그의 작품과 그가 공들여 꾸미고, 그와 여러 형태로 인연을 맺은 지인들이 정성들여 돌보고 있는 ‘두모악’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고 만나고 가는 것일까? 나는 후박나무 아래서 오늘도 독백한다. 길손들은 ‘이어도를 자신의 작품에, 영혼에 인화한 김영갑’의 체취를 보고 느끼고 만나고 가는 것이라고.

그러면서 나는 오늘도 궁금하다. ‘김영갑’이라는 이름의 제주를 보고 느끼고 만나고 가는 길손들의 영혼은 어떤 빛깔로 채색되어 있을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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