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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청소년도 그림책을!]학교를 그만둔 청소년과 그림책 읽기 - 학교 밖 아이들, 그림책 속으로 들어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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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12-04 22:19 조회 8,58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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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다는 것이 많이 부끄럽다. 그저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을 읽고 있을 뿐인데, 지면을 통하여 드러내는 것이 영 내키질 않아서 몇 번이나 글을 쓰다 지우다 하다가 쓰게 되었다. 특별히 내세울 만한 일도 아니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없이 조심스럽다. 전국학교도서관담당교사모임을 통하여 알게 된 중대부중의 주상태 선생님은 오랫동안 공부방을 운영하며 아이들과 함께 인문학을 해왔고, 성공회대학교 고병헌 선생님은 노숙자나 재소자를 대상으로 인문학 읽기를 해왔다고 들은 바 있다. 이분들 이외에도 많은 분들이 사회적 약자를 위하여 책 읽기를 하고 있는 바에 비하면, 내가 하는 그림책 읽기는 사실 아주 보잘것없다.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이러저러한 성과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매주 목요일, 밤 9시~11시, 작은 중국집
올해 4월부터 경남 창원에서 매주 목요일 밤 9시부터 11시까지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을 읽고 있다. 처음에는 10시부터 12시까지 하다가 마지막 시내버스를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시작 시간을 한 시간 당겼다. 목요일 저녁에는 김해에서 그림책을 공부하는 교사모임을 8년째 하고 있는데, 이 모임을 마치고 아이들을 만나러 가면 시간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아픔 없는 사람이 없겠지만 이 아이들은 모두 공통된 아픔을 가지고 있다. 학교와 관련하여 상처를 받은 아이들이다. 중학교를 그만둔 아이들, 고등학교를 그만둔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와 함께 그림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은 15살부터 20살까지인데 학교에 다니지 않는 학교 밖 아이들이다. 학교를 다니지 않지만 꿈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다. 모두 저마다의 꿈을 가지고 있다. 검정교시를 통하여 진학을 꿈꾸는 아이도 있고, 미용사가 되려는 아이도 있다. 물론 아직 무엇을 해야 할지 뚜렷이 정한 바가 없는 아이도 있지만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솔직히 고백하는 모습이 당당하다. 그렇지만, ‘학교를 그만두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았을까? 부모님은 아이의 뜻을 순순히 받아주셨을까? 숱한 갈등이 오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오만 가지도 더 들어 그냥 마음이 짠해진다. 나도 이들처럼 중학생과 고등학생을 둔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학교 밖 아이들과 그림책 읽기 모임은 창원 시내에 있는 작은 중국집에서 한다. 같이 그림책을 읽는 솔이가 중국집 아들이라 부모님이 장소를 선뜻 내주셨다. 이 중국집은 아홉시가 되면 영업을 마친다. 배가 출출하면 조금 일찍 가서 맛있는 자장면을 먹을 수 있어서 좋다. 지난 7월에 아이들과 한참 그림책을 읽고 있는데, 한 달 전쯤 중학교를 그만둔 남학생이 엄마랑 함께 우리 모임을 찾아왔다. 학교를 그만두고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 우리가 그림책을 읽고 있다는 소식을 어딘가에서 듣고 찾아온 것이다. ‘학교가 적성에 맞지 않았다’고 고개를 숙이고 이야기하는 아이와 그런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면서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었다. 우리는 아이와 부모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그건 진심이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환영받기는 처음이라며 함께 그림책 읽기를 하기로 하였다.

상처받은 아이들과 그림책을 읽는 까닭
경남에서 진보교육연구소를 만들어 함께 활동하고 있던 진선생님으로부터–진선생님은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계신다.–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처음 듣게 되었다. 그동안 교회 목사님과 함께 체험활동도 하고 영화도 보면서 아이들을 만나왔는데, 올해에는 무엇을 할지 고민된다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그림책을 읽어보면 어떻겠는가?’하는 제안을 하게 된 것이 아이들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일단 아이들의 뜻이 중요한지라 한 번 만나서 아이들의 의사를 물어보기로 하였다.
올해 새 학교로 와서 5학년 담임에 도서관과 독서교육 업무를 맡았는지라 바쁜 3월을 보내고 4월 첫 목요일에 아이들을 만났다.

그림책 몇 권을 들고 가서 그림책으로 무엇을 할지 들려주고는 함께 읽자고 제안하였다. 싫으면 안 해도 된다고 말했다. 무척 조심스러웠다. 학교가 싫어서 그만둔 아이들, 책이 지긋지긋한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들고 가서 같이 읽자고 했으니 거절당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이야기를 다 듣고나더니 시큰둥하게 ‘한번 해보지요, 뭐’ 했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정도 반응은 아주 좋은 호응이라는 것을 동석했던 진선생님이 알려주었다.–그래서 만날 날짜와 장소를 정하고 그림책을 읽기로 하였다.

처음 만났던 여섯 명의 아이들과 그림책 읽기가 시작되었다. 매주 그림책 두어 권을 들고 가서 작가 이야기, 그림책 속에 담긴 인문학적 의미, 그림 속에 숨어 있는 이야기, 그림책의 주제를 현실에 비춰보며 세상도 읽어나갔다. 그림책을 읽어주고 책 놀이도 하고, 독후활동도 하였다. 기타를 치며 노래도 불렀다. 매주 고사성어에 담긴 이야기도 하나씩 들려주었다. 아이들이 그림책에 매력을 느끼고, 마음을 열기 시작하면서 친구를 데려오고, 애인을 데려오고, 엄마도 모셔오면서 식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많았을 때는 열여섯 명까지 되었다. 아직은 모임 식구가 들쑥날쑥하지만 계속 늘어나는 것만은 틀림없다. 뭔가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내가 선정해서 가지고 간 그림책을 읽어주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부이다.

엄마, 미안해… 우리는 한참 동안 울었다
5월에는 어버이날도 있고 해서 권정생 선생님의 마지막 작품인 『엄마 까투리』(낮은산, 2008)란 그림책을 읽어주었다. 이 그림책은 아주 쉽다. 유아부터 시작해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책이다. 산불이 난 산속에서 삐삐거리는 새끼 꿩을 아홉이나 거느린 엄마 까투리가 새끼들 때문에 날아가지 못하고 결국 새끼를 품고 타 죽고는 새끼를 구하는 이야기가 담긴 그림책이다. 『엄마 까투리』를 다 읽어주고, 부모님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마움을 이야기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미워죽겠다는 아이들도 많았다. 아마, 학교를 그만두는 과정이나 그 이후 생활하면서 부모님과 사이가 소원해졌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야기를 나누고 ‘난파선 게임’을 하였다. 먼저 호화로운 유람선에 공짜로 초대를 받는다면, 누구를 데려가고 무엇을 가져가겠는지 발표하였다. 많은 것이 나왔다. 부모님, 가족, 친척, 친구 들을 데려가고 좋아하고 아끼는 물건들을 모두 가져가겠단다. 유람선을 탄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모두 탁자 위로 올라가서 깔깔거리며 마음껏 상상을 즐겼다. 분위기가 한창 익었을 때, 종이 한 장과 가위를 나눠주고 종이를 접어서 열 개로 자르게 했다. 아이들은 의아해했지만 기분 좋게 종이를 잘랐다.

그때, 유람선이 난파되었으니 탈출을 해야 된다고 하였다. 탈출하는 나에게 조그만 보트가 하나 주어졌는데 딱 열 사람만 (물건을 포함하여) 태울 수 있다고 하였다. 보트에 태우지 못하면 모두 목숨을 잃게 된다고 일러주었다. 아이들은 많은 고민 끝에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되는 열 개를 종이에 하나씩 적었다. 타이타닉호 이야기도 곁들여주었다. 보트를 타고 탈출하는 중에 보트에 물이 조금씩 새기 시작해서 종이에 적힌 것을 하나씩 버려야만 모두가 살 수 있게 되는 상황이 왔다. 아이들은 망설였지만 하나씩 버려나갔다. 종이를 버리는 바로 그 순간, 종이에 적힌 사람은 차가운 바닷속에서 내 눈을 응시하며 서서히 몸이 얼고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목숨을 잃게 된다고 하였다.

종이를 한 장씩 버릴 때마다 나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버려진 사람과 어떤 추억이 있는지, 제일 미안했던 때와 최근 나눈 대화도 말하였다.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해 주고 싶은지도 물었다. 처음에는 웃으며 시작한 이야기가 다섯 장쯤 버려졌을 때 분위기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남아 있는 종이에는 가족들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몸이 편찮으셔서 병원에 계시는 할머니를 버린 경이가 울기 시작했다. “나에게 잘해주기만 했던 할머니에게 아직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데…” 하면서 울었다. 경이의 손에는 부모님과 동생들이 남아 있었다. 경이가 울자, 다른 아이들도 훌쩍이기 시작했고 나도 눈물이 나왔다. 계속 종이를 버려나갔다. 동생을 버리고, 아버지를 버리면서 우리는 울었다. 아이들은 “선생님, 정말 잔인해요”라고 하면서, 버려진 사람에게 미안함을 토로했다. 좋았던 추억을 이야기했고, 더 잘해주지 못했음을 후회했다. 그렇게 울어가며 마지막 한 장을 남기고는 게임을 멈추었다. 보트가 구조된 것이다.

마지막 남아 있던 카드를 모두 펼쳐 보였다. ‘엄마’라고 적힌 카드였다. 연이가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였다. 돈을 달라고 할 때마다, ‘미친년!’ 하면서 펄쩍 뛴다는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밉다고 했던 친구이다. 우리는 엄마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찬이의 카드에는 다른 것이 적혀 있었다. ‘칼’이었다. 놀랐다. 왜 ‘칼’이 남았는지 물었다. 처음에는 무인도에 도착하면 꼭 필요한 도구가 될지도 몰라서 가지고 갔는데, 아빠를 버리고 동생을 버리면서 마지막에는 내가 목숨을 끊기 위해 남겼다는 것이다. 이를 앙다물고 말을 하던 찬이가 “왜 구조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해주지 않았느냐”며 따지더니, 펑펑 울기 시작했다. “엄마, 미안해. 엄마, 미안해….” 우리는 한동안 울다가 감정을 수습하고 탁자에서 내려왔다.

우리 모두에게 주변의 소중한 존재들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 것 같았다. 말은 없었지만 마음속에는 ‘좀 더 잘해야지, 좀 더 사랑해야지’ 하는 비슷한 생각들이 흐르고 있었다. 내가 『엄마 까투리』라는 그림책을 읽어주고 ‘난파선 게임’을 한 이유를 아이들은 알아챘다. 아빠의 사랑이 담긴 그림책을 읽어주고 이 게임을 했다면 아이들의 마지막 카드에는 ‘아빠’가 적혀 있었을까? 이것은 아직도 의문이다.

학교 밖 아이들을 만나면서 아이들이 착하고 정의롭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구보다도 선하고 여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그러한 마음 때문에 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이런 마음과는 달리 사람들이 이 아이들에게 보내는 시선은 그리 따뜻하지 못하다.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할 공간이나 시설을 제공해주지도 않으면서 패배자나 낙오자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본다. 지독한 편견이다. 20년 넘게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선생이라 마음이 무겁다. 공교육이 이 아이들을 모두 품어주지 못하는 부분이 안타깝다. 아이들에게 따뜻한 관심이 주어졌으면 좋겠다. 그림책 읽기가 계속되기를 기대해 본다(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으로 썼음을 밝힙니다).


『엄마 까투리』
권정생 글|김세현 그림|낮은산|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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