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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이 함께 [편집자의 수작]21세기에 새롭게 풀어쓴 현대판 민담 열 폭의 병풍 속에 숨겨진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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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9-02 18:11 조회 6,47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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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을을 구한 원님』
이호백 글・그래픽
20세기 한국민화–가회민화박물관 그림|재미마주|2010

민간의 신앙을 담은 그림_ 무속화
우리나라에 불교와 유교, 기독교와 같이 어떤 체재를 갖추고 보편성을 지닌 종교가 들어오기 이전에 우리 조상들이 믿어온 신앙은 무엇이었을까? 학문상 정확하게 밝히기는 쉽지 않겠지만 아마도 해와 달, 기암괴석이나 거목과 같은 자연숭배 신앙과 함께 샤머니즘에서 보이는 무속신앙을 떠올려 볼 수가 있을 것이다. 더욱이 고대사회가 제정일치의 부족국가였음을 감안한다면 단군 이래로 천지신명께 기도를 드리고 위안을 받는 무속신앙이 토착종교로서 뿌리 깊게 자리잡아왔음을 어렵지 않게 상정해 볼 수가 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민간신앙을 엿볼 수 있는 유물로는 전국 각지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서낭당, 칠성당, 산신당, 당산나무, 솟대, 장승, 남근석, 돌탑, 미륵바위, 성주독, 조상단지 따위들을 열거할 수 있겠으나, 그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은 역시 무속인들이 흔히 사용하는 각종 기구들과 더불어 신당을 치장하는 무속화라고 할 것이다. 무속화가 언제부터 그려져 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고려 때의 학자 이규보가 지은 『동국이상국집』에 “벽에는 울긋불긋한 신의 형상을 그려 걸어놓고 칠원성군과 구요성은 액자에 그려 붙였다.”라는 기록을 보면 무속화와 그 유사한 형태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그려온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무속화에 등장하는 신으로는 옥황상제・일월신장・삼불제석・칠성신・산신 등과 무학・나옹・사명당과 같이 덕이 높은 대사신, 관운장・임경업・최영과 같은 장군신 등 모두 20여 계통 113종이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무속화는 인간의 부귀다남과 수명장수, 길흉화복과 나아가 마을과 국가의 안녕질서를 관장하는 것으로 보통 흰 명주와 결 고운 무명천, 또는 한지에 적・황・청・백・흑의 오방색 안료로 그려져 강렬한 원색적 채색이 특징인 데다가 그 그린 솜씨가 다소 서투르고 어색하기 때문에 민화의 한 갈래로 보기도 한다.

병풍 속 무속화가 생뚱맞게 민담으로 탄생
열 폭 병풍의 무속화가 그림책 『고을을 구한 원님』으로 탄생하게 된 것은 작가 이호백(李鎬伯)의 다소 생뚱맞은 호기심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쯤 작가는 서울 가회동에 위치한 ‘가회민화박물관’을 방문한다. 그때 그곳에서 우연히 10폭짜리 병풍에 그려진 무속화를 보게 되는데, 자연스레 두 가지 상념에 빠지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 하나는 어린이가 그린 서투른 그림과 참 닮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옛날 어머니의 여고 시절에 주고받은 친구의 편지 속에 담긴 그림과 매우 흡사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가만히 병풍 속 그림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려니까, 그 속에 무슨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 것만 같았다. 민속학자 윤열수(尹烈秀) 관장으로부터 그 병풍은 20세기 중반에 어느 무속인이 쓰던 물건이라는 것 이외에 병풍 속 무속화를 해석할 아무런 단서가 없다는 말을 듣고는 더더욱 그 무속화를 가지고 그림책으로 한번 풀어봐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해지더란다. 작가 이호백은 그 무속화를 복사하여 프린트해 갖고 와서는 사무실 책상의 유리판 밑에 깔아놓고 출퇴근할 때마다 쳐다보기를 하루 일과처럼 했다. 그런데 시간만 흐를 뿐 그 어떤 이야기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그림 속 등장인물들이 하나씩 무슨 말인지를 걸어오더라는 것이다. 먼저 지방의 관료 같은 사람들이 우산을 받쳐 쓰고 화려한 의상에 부채를 들고 등장하고, 말 탄 장수와 연꽃과 과일을 든 무당과 아낙네, 사슴과 두루미, 아이들도 요기조기 숨어있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무언가 소곤소곤 말을 붙여오더라는 것이다. 또 병풍의 아래 위로는 험준한 산과 무성한 숲, 산 정상에 꽂혀 있는 깃발 같은 것도 보이는데, 이러한 것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던 중 불현듯 이야기 하나가 떠오르더라는 것이다. 그 이야기가 바로 그림책 『고을을 구한 원님』의 줄거리가 되었다.

옛날 어느 고을에 커다란 양산을 쓴 원님이 부임해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런데 이 고을은 오랜 가뭄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으므로 무엇보다 가뭄 퇴치가 큰 과제였다. 원님은 온 고을의 학자들과 무사들을 불러 모아 가뭄 퇴치 방안을 논의해보았으나 아무런 묘안도 떠오르지 않는다. 고심 끝에 한 꼬마가 전해준 예언대로 동헌에 날아든 두루미의 짝을 찾아주자 장대비가 내리고, 그 바람에 양산이 찢어져 햇볕을 가리지 못하는 바람에 그 원님은 발작을 일으켜 죽음을 맞이한다.

특이한 것은 『고을을 구한 원님』은 우리의 옛이야기 민담처럼 “옛날 어느 고을에~”로 글의 첫머리를 시작하고, 결말에 가서는 “이 마을 꼬마들은…, 놀고 있다고 합니다.”라고 하여 전형적인 민담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등장하는 인물이나 서사의 전개방식에 있어서도 민담의 표현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어 마치 21세기에 새로 풀어쓴 민담처럼 내용의 사실성보다는 익살맞고 흥미진진한 사건의 줄거리 속으로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다시 말해서 이 책은 10폭 병풍의 무속화에 숨겨진 비밀을 찾아가는 흥미만점의 기상천외한 상상놀이와 함께 무속화라는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보기 힘든 민화를 감상해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그림책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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