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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이 함께 8. 방자가 기가 막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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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01 18:58 조회 7,24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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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매는 안방으로 건너갔지만 여름 홑이불 얇은 막 사이로 새어나와 창호지 문 너머로 건너오는 춘
향이 방의 소리를 다 들어야 했것다. 어린것들이 내는 온갖 기기묘묘한 소리를 들으니 좋은 것 같
기도 하고 뒤숭숭하기도 하면서 제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으니, 당연지사렷다.

어찌저찌 이냥저냥 첫잠을 자고 깨어났다가 다시 개잠에 빠졌는가 싶었는데, 때 아닌 여름에
문풍지 바람이 울고 서까래가 삐거덕거리고 방구들이 들썩거려 밤새 노루잠 괭이잠으로 자는
둥 마는 둥 했것다.
몽룡과 춘향이 노는 걸 보니 젊은 시절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고 성 참판의 모습이 떠
오르기도 했으니.

“아이고 저것들이 시방은 물색없이 그냥 좋아서 저런다만…….”
월매는 제발 오늘밤 하루 놀이로 끝나고 더 진도가 안 나갔으면 했다. 못 오를 나무는 처음부
터 쳐다볼 일이 아니다. 이 근심 저 근심에 곰방대에 담뱃불을 붙여 한 모금 길게 들이마셨다. 그
렇다고 답답한 가슴이 뚫리는 건 아니었지만 이미 오래된 습관으로 굳어져 새벽이면 곰방대부
터 찾게 된다.

방자는 향단이를 끌고 주막집으로 갈까 하다가 밤도 깊고 해서 허드레 짐을 넣어두는 뒷방으
로 갔것다. 취기도 어지간하고, 몽룡이가 딱지를 떼고 춘향이가 머리를 얹는 첫날밤도 신경 써져
서 그런지 방자는 기분이 묘했다.

결국 춘향이는 몽룡이 품에 들게 되어 버렸다. 생각해보면 기가 막혔다. 하지만 어찌할 것인
가. 어쩌자고 세상은 사람을 귀하고 천한 처지로 나누어 놓았는지. 말인즉슨 왕후장상의 씨가 따
로 있는 건 아니라지만 어떤 집안의 어떤 피를 받아 태어나느냐에 따라 사람의 평생이 달라지는
건 사실이니, 속이 쓰리고 아려도 어쩔 수 없는 일이렷다.

말이야 바로 말이지 방자 자신이 몽룡보다 못할 게 뭐 있는가? 몽룡이 더 나은 건 기껏 진서 글
줄이나 좀 볼 줄 안다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몽룡은 잘난 춘향이와 놀고 자신은 춘향이 몸종인
향단이와 놀아야 한다. 그러고 보니 향단이 신세도 좀 그렇다. 언제까지 춘향이 그늘에서 지내야
하나. 그래도 방자는 향단이가 고맙고 편하다. 어미 애비 얼굴도 모르는 주막집 손자를 향단이 아
니면 누가 좋아해주겠는가.

십육 세인 몽룡과 춘향이와 달리 십팔 세인 방자와 향단이는 탐색전 없이 막바로 사랑 놀이를
했것다. 사랑을 나누는 일에 두 해 터울은 엄청난 차이를 보여준 것이렷다. 석 달 가뭄 끝에 내린
단비처럼 달게 일합을 끝냈지만 춘향이 방에서 흘러나오는 어린것들의 개굴거리는 소리를 들어
야 하는 방자의 마음은 먹먹했다. 몽룡이가 먼저 힘을 쓰면 춘향이가 바로 힘을 받는 소리가 또렷
이 들리는데, 방자라고 마음이 좋기만 하겠는가. 듣다 못해 방자가 고개를 저으며 투덜거렸다.

“허! 어린것들 잘 논다! 누가 사랑 놀이를 배워서 한디야. 나를 찾기는 왜 찾어? 하다보믄 저
절로 다 되는 걸 넘의 속도 모르고 묻고 난리여!”
방자는 애써 춘향이 방에서 건너오는 소리를 지우려고 영문도 모르는 향단이한테 아주 묵직
한 목소리를 냈것다.

“향단아, 인자 우리도 성례 올려야 안 쓰겄냐?”
향단이는 수도 없이 듣는 소리여서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었지만 오늘은 좀 실감나게 들렸다.
그렇지만 바로 확답을 해줄 수도 없었다.
“방자, 너 또 달달대기 시작하는 것이여. 춘향이 아가씨가 먼저 성례를 혀야 나도 할 수 있다고
했잖여.”

“만날 똑같은 소리!”
“이치가 그렇잖여.”
“무슨 놈의 이치! 나이 먼저 찬 계집이 먼저 결혼하는 것이제!”
“그려도 월매 아줌니가 부모도 없는 나를 어려서부터 거두어 주었는디 내가 춘향 아씨보다
먼저 갈 수는 없어.”

“알었어. 이래서 양반 종 노릇보다 상놈 종 노릇 하기가 더 힘든 것이여!”
“방자 너, 그런 소리 쪼깐 안 할 수 없어? 내가 언제 종 노릇 한다고 그랴? 입만 열믄 달달대는
디 못 살겄어, 내가.”
“그랴. 그라믄 방자 달달 그먼 헐 틴께 술이나 더 내와라잉.”
“아까 남은 것 니가 다 마셔부렀잖이여. 술 하고 뭔 웬수 졌다냐?”
“내가 몇 잔이나 마셨다고 그랴?”

“술단지 바닥 본 사람은 너였어.”
“나는 바닥만 비웠어. 되령하고 춘향이가 더 먹었제. 술맛도 모르는 것들이 마구 마셔대더라
니…….”
“술이 꼭 더 있어야 되겄어?”
“응, 오늘 밤은 술이 더 있어야 쓰겄어.”

향단은 몽룡이 춘향이와 노는 꼴을 방자가 그리 탐탁스레 여기지 않는 것 같아 될 수 있으면
방자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알았는디, 나중에는 이렇게 술을 끝장 보기로 마시믄 안 되야!”

향단이는 술을 더 거르기 위해 방을 나갔다. 방자는 향단이가 벌써 나중에 가시버시가 되었을
때를 염려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도 가슴 한쪽이 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시
방 춘향이가 몽룡이하고 춘향이 방에 같이 있다……. 어찌해볼 수 없는 태생의 한계. 자신은 그저
중매쟁이에 불과했다. 중매는 잘해야 술이 석 잔, 못하면 뺨이 석 대라는데. 일단 술 석 잔은 받아
마셨다. 그런데 이 중매질을 잘한 것일까? 춘향이를 몽룡에게 소개한 것이 정말로 잘한 것일까?
얼마 안 돼 향단이가 술단지를 들고 돌아왔다. 일단 한 잔을 따라 마신 방자가 안주를 우물거
리며 치하를 했것다.

“햐, 바로 이 맛이야! 향단이 넌 애초에 주막집 고두쇠 각시로 태어난 거야? 으짜믄 이렇게 술
을 잘 거른다냐? 나중에 우리 주막 잘되겄어!”
향단이는 방자의 인사가 싫지는 않으면서도 눈을 흘겼다.
“나를 기껏 주막집 주모로 쓸라고 혼인하자는 것이여?”
“주막집 주모가 으째서 그랴?”

“대를 물려 술장시를 하잔 말이여?”
“내가 내 손으로 벌어묵을 수 있으믄 되았제. 뭔 일을 하든 뭔 상관이야. 할머니가 저만치 해놨
은께 우린 쪼깐만 더 힘을 쓰믄 되는디.”
“그려도 젊어서부터 주막집은 쪼깐 거시기하단 말이여.”
“젊어서부터 해봐야 늙어서도 잘허지. 그라고 술지게미를 같이 먹고 사는 부부가 이별 수 없
이 잘 산디야.”

“누가 그래?”
“누가 그러긴? 조강지처라고 경서에 다 나오는 말인디.”
“조강지처? 너 참 유식헌 소리 헌다. 조강은 술 거르고 남은 찌꺼기하고 쌀겨를 말하는 거잖여?”
“내가 누구냐? 책방 방자 아니냐? 책방에 살다본께 진작에 언문 풍월은 띠었고, 인자 진서 풍
월이 절로 나온다. 그란께 방자 왈 조강지처란 술지게미하고 쌀겨를 먹고살 정도로다가 없이 살
때 만난 각시는 절대 이별 수 없이 끝까지 해로한단 이 말이렷다.”

“방자 너, 설마 나 데려다가 술지게미나 먹고 살라는 건 아니겄제?”
“무신 소리? 이 몸은 세상이 두 동강으로 결단 나는 일이 있어도 절대로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종자가 아녀. 그란께 하는 말인디 나랑 살믄 호강은 넘의 말이어도 요강은 갖출 수 있을 것이여.
에헴.”
“뭣이라고? 으이그.”
향단이가 방자를 쥐어박는 시늉을 했것다.

춘향이 방에선 한 번 둑이 터지자 연달아 쉬지 않고 여러 합을 겨루는 것 같았다. 일 합, 이 합,삼 합…….
그때마다 여름 문풍지가 태풍에 우는 소리를 내고 서까래가 틀어지고 방구들이 가라앉는지 야단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방자는 몽룡이 골즙 내기 위해 힘줄 방망이를 쓰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술잔을 들이켰다. 아무래도 인자 몽룡의 형님 노릇도 그만 할 때가 된 성싶기도 했다. 월매는
밤새 춘향이 방에서 들려오는 어린것들의 노닥거리는 소리에 자신의 열여섯이 아스무레하게
 떠올랐다. 이어 성 참판과 함께 한 꿀맛같던 세월이 바로 손에 잡힐 것만 같다.

한양 가자마자 세상을 떠 자신 모녀를 영원히 데려가지 못
한 걸 생각하면 속이 다 쓰리다. 그러나 어찌할 것인가. 저마다 운명은 타고난 것일 밖에.
“쯧쯧, 시방은 앞뒤 없이 좋아서 저럴 것이다만 세월이 어찌 될지…….”

아침이 되어도 두 청춘은 일어날 생각을 못하고 곯아떨어졌것다. 월매는 춘향이 방문 앞을
몇 번이나 서성이다가 되돌아서곤 했다. 그러다아무래도 이도령을 깨워 관아로 돌려보내야
할것 같아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것다.
“오메!”
월매는 차마 민망하여 방 안을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둘 다 실오라기 한 올 걸치지 않은 알
몸으로 완전 무방비 상태로 누워 있는 것이었다. 몽룡은 북쪽 봉창문 쪽에 머리를 하고 있고 춘향
은 윗목 병풍 쪽에 머리를 한 채 아주 한밤중이었다.

자신은 열세 살에 관아 기생이 되어 사또들수청을 드느라 춘향이보다 더 이른 나이에 일찌감치
잠자리를 해보았지만 이처럼 퍼질러 자본기억이 없다. 밤늦도록 사또랑 잠자리 했다고 누가
봐주기나 했나. 잠자리 끝나자마자 바로 기생방에 나가 아침 점검 받고 늙은 기생들 눈치 받으며
뒤치다꺼리를 해야 했으니.

“허! 아무리 여름이라지만 이러코롬 발가벗고 자믄 개좆부리 걸릴 것인디, 시방 이것이 뭔꼴이랴!”
월매는 방구석에 말려 있는 홑이불을 펼쳐춘향이 몸부터 덮어주었다. 혹시라도 고뿔이 걸리면 안 될 일이었다.
“여름 고뿔은 개도 안 걸린다는디, 야들이 시방 눈에 뵈는 게 없구만…….”

몽룡이까지 덮어주자면 몸을 끌어다 나란히 눕혀야 하는데 차마 몸에 손을 댈 수는 없는 노릇
이었다. 월매가 잠든 몽룡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아도 몽룡은 가늘게 코만 골며 잘 뿐 인기척을 전
혀 느끼지 못했다. 월매는 몽룡의 벗은 몸에서 그 옛날 성 참판의 어린 모습을 보았다. 사실 자신의
몸은 열여섯 청춘의 사내를 맞아본 적이 없었다. 방자는 몽룡이 해가 중천이 되도록 일어나지
를 않자 관아로 혼자 뛰어들어갔다. 그새 안채에서 책방 도령을 찾기라도 하면 낭패이기 때문이
었다. 다행히 다른 통인도 몽룡이 외박을 한 걸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방자는 몽룡 대신 책방으로 들어가 글 읽는 시늉을 했것다.



올려본께 높디높은
하늘천에 앉아본께
밑으로다 푹꺼져분
따지로다 남진겨집
얼싸안고 등나무에
칡넝쿨에 친친감은
감을현에 뜨거운몸
그대로라 누리끼리
노릇노릇 샛노란황
집있다고 좋아하니
집우집주 세상넓고
거칠어서 할일많다
홍황홍황 쿵쾅쿵쾅

다행히 책방 문을 열어보는 이가 없어서 방자는 얼추 엉터리 천자문을 읊어 책방에 글 읽는
소리를 채워놓았것다.
점심 때가 지나자 방자는 다시 춘향이 집으로 뛰어갔다. 그때까지도 두 어린것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향단이는 부엌과 춘향이 방 앞을 오가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방자는 춘향이 방문 앞
에 서서 소리쳤다.

“되련님! 인자 일어나시오! 그깟 하룻밤 쪼깐 놀았다고 하루 종일 잠만 잘라요?”
몽룡은 일어나자마자 당황스러웠다. 춘향이와 자신이 알몸으로 홑이불을 덮고 있는 것이 아닌
가. 엊저녁 일이 아슴푸레 기억이 났다. 술도 마셨고, 사랑의 다짐 노래도 불렀다. 무엇보다도 춘향
이랑 난생 처음 사랑 놀이를 했다. 새벽닭이 울고도 한참을 그러고 놀았으니, 몸이 천근만근이다.
“방자야, 책방에 가봐야지.”

“내가 책방 되령이우? 되련님이 가야제?”
“나 인제 관아 들어가면 경치겠구나!”
“그랄 줄 몰라서 외박을 했슈?”

“그런 소리 마라. 춘향이한테 장가 드느라고 그랬다.”
소란스런 소리에 춘향이가 부스스 일어난다.
“오메! 시방 이것이 뭔 일이다냐?”
춘향이는 자신이 알몸인데다 옆에 몽룡이도 알몸인 채로 누워 있는 걸 보자 소스라치게 놀라
자빠졌다.

“뭘 그리 놀라느냐?”
“도련님…….”
춘향이는 엊저녁 일이 떠올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몽룡이 살송곳으로 자신의 살을 쑤셔
댄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그 뒤론 캄캄했다. 언제 어떻게 잠들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
이었다.

“어머니 아시믄 어쩐디야.”
“이미 다 알고 있을 텐데, 뭘.”
몽룡은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자신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마냥 누워만 있을
수 없어 바지저고리를 찾아 입었것다.

“어?”
몽룡이 춘향이 방에서 나오며 코를 손으로 감싸며 비명을 질렀것다. 기다리고 있던 방자가 흘
끗 쳐다보더니 혀를 찬다.
“쯧쯧, 춘향이 방 구들장이라도 뜯고 다시 놓았소? 그깟 방 안 공사 쪼깐 했다고 넘사시럽게
코피를 다 흘리고 그러우? 나는 이날 이때까지 밤새 맷돌을 돌리고 난 날도 그런 일 없었슈. 시원
찮긴!”

방자가 뭐라 놀리든 몽룡은 대꾸할 기력이 없었것다. 향단이 급히 떠온 물로 세수를 하고 월
매가 뜯어온 쑥으로 코를 막은 몽룡. 하룻밤 사이에 몰골이 볼만하게 축나버렸구나. 몽룡은 숙취
로 아픈 속과 머리를 가라앉힐 겨를도 없이 춘향이 집을 나섰다. 관아 형편이 어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어 불안했던 것이다.

간밤에 무릉도원에서 놀 땐 세상 근심 걱정 하나 없었건만 지금 당장은 아버지의 불호령이 겁
이 나는지 바짓가랑이에서 비파 소리가 나게 부지런히 걷는구나. 그런 몽룡 뒤에서 방자가 깐죽
거렸것다.
“사또 영감이 무서운가비요? 고로코롬 겁나는디 뭣헌다고 코피까정 쏟아감시롱 외박을 하
고 그래유?”

“말 마라.”
“말 하라고 뚫어진 입구녘인디 말을 마라고라?”
“허 참, 잔말 말고 어서 들어나 가자.”
“들어가긴 어딜 들어가유. 들어갈 구녘은 엊저녁에 다 드나들었음시롱.”
“햐, 나 방자 너 때문에 미친다!”

“내가 할 소릴 되련님이 하네유.”
“너는 왜 미치는데?”
“내가 되련님 오입 티 안 낼라고 새벽 댓바람에 책방에 가서 되련님 대신 소리 내서 글을 읽
었지 않았겄소. 햐, 미치겠더구만! 방자가 다른 건 다 혀도 글공부는 취미가 아니란 말이유.”
“네가 글을 읽었어? 소리 내서?”
“그라믄요. 진서로 천자 쪼깐 읊어부렀소.”
“그랬더니?”

“아, 그렇게 하고 있은께 다들 되련님이 방에 있는 줄로 알고 아무도 의심을 안 허드만유.”
“그랬으면 아까 바로 그랬다고 얘길 해주었어야지. 이렇게 바쁘게 서둘러 들어갈 필요도 없
잖아.”
몽룡이 발걸음을 멈추더니 다시 춘향이 집으로 가려 한다.
“왜유?”

“굳이 관아 갈 필요 없잖아.”
“그라믄 아침부터 춘향이 집에 가서 또 오입할라구유?”
“자꾸 오입, 오입 할래?”
“장가도 안 든 총각이 넘들 눈 피해감시롱 처녀 집에 밤으로 아침으로 들락거리믄 그것이 오
입이제 뭐유?”
“나 엊저녁에 장가 들었다. 그러니까 오입이 아니라 제 구녘 제대로 찾아서 한 거다. 진서 전문
용어로 말하자면 정입했다 이 말이야.”

“정입이고 오입이고 그만 둘러대시오. 도둑장가 든 건 사실이잖이유.”
“장가 드는 게 별것이냐. 좋아하는 계집이랑 함께 합환주 마시고 같이 가랑이 나란히 하고 하
룻밤 보내믄 그것이 바로 장가 든 것이제.”
“되련님은 장가도 참 간편하게 들어부네유잉. 그런 쪽으론 머리가 참 잘 도는디, 으짜까, 과거
엔 고런 것은 안 나올 것인디.”

“과거만 보기 위해서 하는 것만이 공부의 전부는 아니다. 장가 드는 법 연구하는 것도 공부다.”
“말씀 하난 잘하셔. 그라믄 나 같은 사람은 그런 공부는 타고 났구만유.”
“그래서 그런 쪽 얘기만 나오면 바로 방자 왈왈 하잖아.”
“내가 언제?”
“내가 이러고 다닐 수 있는 게 다 방자 왈왈대로 했기 때문이야.”
방자, 더 할 말이 없었지만 몽룡이 춘향이 집으로 다시 가는 건 싫었다.

“기왕 나선 걸음인께 관아로 들어가고 춘향이한틴 나중에 또 기회 봐서 가든지 말든지 허세유.”
방자 앞서서 걸음을 재촉하니 몽룡도 하는 수 없이 방자를 따라 관아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몽룡은 며칠을 골골하며 책방에 처박혀 있었것다. 마음이야 당장 춘향이 집으로 가고 싶은데
몸이 안 따라주었다. 몸으로 사랑을 나누는 일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런 일은
남을 시킬 수도 없어 어떡하든지 혼자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방자야, 춘향이 잘 있더냐?”
“나도 모르지유. 되련님이 꽉 붙들어 매서 나도 꼼짝 못하는 신세 아니유.”
“아 참, 그렇지.”
몽룡은 춘향이가 어찌 지내는지 궁금했지만 방자를 보내 알아보기도 꺼림칙해서 같이 책방
에서 죽치고 있는 것이었다.

“내 참, 되련님이야 공부해야 한께 책방에 죽치고 있는 건 당연하지만 나는 무슨 죄요? 어쩌다
천하의 방자가 책방 죽돌이가 되었는고!”
“책방 방자는 본디 책방에서 사는 거야.”
몽룡은 책을 펼치면 춘향이 얼굴이 떠오르고 잠을 자려고 눈을 감으면 춘향이 속살이 떠올라
미칠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책방에서 글 읽는 소리가 나지 않으면 그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을 것
같아 억지로 책을 읊어대는 것도 못할 짓이었다.

“방자야, 네가 내 대신 책 좀 읽어라.”
“일 없소이다. 참말로 웃겨. 춘향이랑 노는 일은 넘 못 시키면서 책 읽는 일은 넘 시키려고 하
는 맘보는 또 뭐유?”
“그야 내가 몸소 할 일, 남이 할 일이 따로 있어서지.”
“글 읽는 일도 넘이 할 일은 아닌께 되련님이 몸소 허시유.”
몽룡은 어찌할 수 없어 책을 펼쳐 놓고 글을 읽는구나.

하늘높이 날아오른
춘향계집 속곳치마
솟구친다 하늘하늘
하늘천자 땅거미가
어둑어둑 내려앉아
땅지자라 도령속이
검게타서 검을현자
얼굴까지 노래져서
누르황자 에이몰라
에이몰라 춘향이야

기껏 책 읽는다는 게 천자문을 읊고 있는데, 그것도 방자 자신이 읊던 것보다 더 엉터리다. 방
자, 기가 막혀 혀를 끌끌 찰 수밖에 없으니.

“역시 중증이시네유.”
“다 방자 때문이야.”
“내 탓은 왜 하시유?”
“네가 나를 감시하면서 춘향이 집에 못 가게 하잖아!”
“뭣이라고라? 허 참, 방자가 기가 막혀!”

몽룡은 낮이면 책방에서 엉터리 글 읽기로 시간을 보내고 밤이면 춘향이 집에 갔것다. 구메혼
인을 한 까닭에 내놓고 당당하게 드나들 처지가 아니어서 사또 자제 체면 차릴 염도 없이 개구멍
서방 노릇을 해야만 했으니, 춘향에 대한 몽룡의 사랑도 어지간한 것이렷다. 몽룡은 이제 굳이 방
자를 달고 다닐 필요도 없어졌다. 혼자서도 잘하는 의젓한 청년이 된 것이렷다. 어쩌면 방자를 달
고 다니는 일이 되레 귀찮은 일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까닭에 방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몽룡이 대신 책방을 지키며 무슨 일이 있으면 얼른 조치를
취하기도 하고 몽룡을 급히 부르기도 했것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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