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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만화 [게으른 사서의 띄엄띄엄 책 읽기]띵동~! 모닝시가 배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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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5-07-20 15:33 조회 6,97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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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 서울 연가초 사서교사
 
한 2년간 매일 아침(휴일, 방학 제외) 카톡으로 모닝시를 돌렸다. 처음엔 친구 몇 명에게 보내다가, 나중에는 가족, 친척, 단체 카톡방에서 학교 전체에 메신저로까지 돌리게 되었다. 몇몇 좋아하는 시는 있었지만 시를 많이 읽는 편은 아니었다. 어쩌다 충동적으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일과로 굳어졌다. 처음에는 내가 좋아하는 시를 보냈었는데 금방 밑천이 동났고, 그때부터 시집을 찾아 읽어가며 마음에 와 닿는 시들을 보내게 되었다. 그렇게 시와 가까워졌다. 시는 매일 아침 다채로운 빛깔로 경이로움이라는 꽃을 양 팔 가득 안겨 주었다. 마음이 늘 산만하고 복잡하고 여유가 없다. 아이들조차. 시를 읽는 다는 건 여유를 찾는 것이다. 시는 고요하고 단순하고 여백으로 가득 차 있다.
시를 보낸 지 몇 달이 지나고 부터 적지 않은 친구나 선생님들께 격려의 말을 많이 들었다.
“진짜 사서 같다, 야~” 모닝시를 배달하는 일이 사서로서 적합성을 따지는 일은 아니기 때문에 적절한 말은 아닐 수 있지만 힘이 되고 들뜨게 하는 말이었다.
도서관 활용수업을 하거나 프로그램을 할 때보다 시를 나누었을 때 더 ‘사서답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사람들이 도서관에, 사서에게 바라는 건 어쩌면 그런건가 보다. 물이 솜에 스며들 듯 자연스럽게 의무감 없이 글에 젖어들 수 있게 하는 것.
 
두고두고 펼쳐 보는 시집
2년 동안 많은 시집들을 만났다. ‘이런 시도 있구나.’ ‘이것도 시구나.’ ‘이렇게 좋은 시를 이제야 만나다니.’ 그 만남의 감흥들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어떤 시집들은 어디를 펼쳐도 읽기도 전에 어려운 단어들에 질려 바로 덮어버렸는데, 어떤 시집들은 두고두고 펼치게 되었다.
시집 한 권을 보면 마음 가는 시가 몇 편 안되는 경우가 많은 편인데, 서정홍 시인의 시집들은 놀랍게도 모두 좋았다. 그렇게 쉽고 단순한 단어들로 매 편마다 배시시 웃음이 돌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이런 착한 시들을 써내다니… 단박에 그의 팬이 되었다. 서정홍 시인의 시는 착하다. 이렇게 착한 시를 읽고 있는 동안은 내 마음도 저절로 순해지고 착해지는 것이다.
 
기다리는 시간
 
 

나는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이 좋다.
(중략)
3-1.jpg

만나기로 한 사람이 오지 않으면
여러 가지 까닭이 있겠지 생각한다.

내가 사람들에게
마음 놓고 베풀 수 있는 것은
 

사람을 기다려 주는 일
(후략)

                                               –서정홍, 『58년 개띠』
 
내가 가장 착해질 때
 
이랑을 만들고
흙을 만지며
씨를 뿌릴 때
나는 저절로 착해진다
 
 
 
 

                                      –서정홍, 『내가 가장 착해질 때』
 
일본의 하이쿠처럼 짧은 시도 좋아한다. 짧지만 강렬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특히 고은의 시가 그렇다.
 
함박눈이 내립니다                                                                 3-2.jpg
함박눈이 내립니다 모두 무죄입니다
                                        –고은, 『순간의 꽃』 중에서             
 
고은의 『순간의 꽃』이라는 찰나를 포착한 짧은 시 모음집에 실린 시이다. 고은의 짧은 시는 마치 우주라는 거대한 공간을 들판의 작은 꽃봉오리 속에 압축해 넣은 듯하다. 꽃봉오리가 터질 때 거대한 우주가 튀어나올 것만 같다.
또 특별한 시집은 일본의 시바타 도요의 『약해지지 마』라는 시집이다. 시바타 도요는 90세에 처음으로 시를 쓰기 시작하고 장례 비용으로 모은 100만 엔을 털어 시집을 출간한 할머니 시인이다.
 
바람과 햇살과 나
 
바람이
유리문을 두드려
문을 열어 주었지
그랬더니
 
햇살까지 따라와
셋이서 수다를 떠네
 
할머니
혼자서 외롭지 않아?
바람과 햇살이 묻기에
사람은 어차피 다 혼자야
나는 대답했네
 
그만 고집부리고 편히 가자는 말에
다 같이 웃었던 오후
                                           – 시바타 도요, 『약해지지 마』
 
고단한 삶을 고스란히 겪어 내고 살아 낸 100세 할머니가 쓴 순박한 시가 마음의 때를 씻겨 준다. 요즘은 요양원이나 어르신들 단체에서 이런 시 쓰기 교육을 하기도 해서 뒤늦게 한글을 배우신 어르신들이 삐뚤빼뚤 쓴 시들을 인터넷으로 만날 때마다 이렇게 여린 아이 같은 마음으로 험난하고 고단한 인생을 굳세게 살아내 줘서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곤 했다.
가장 좋아하는 시는 아이들이 직접 쓴 시이다. ‘어린이들은 모두 시인이다’라는 말은 사실이다. 『아버지 월급 콩알만 하네』, 『침 튀기지 마세요』, 『일하는 아이들』 등 어린이들이 쓴 시 모음집은 학교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큰 감동이었다.
 
3-3.jpg
 

『맨날 내만 갖고 그런다』 등 이주영 선생님이 꾸준히 학급문집을 펴내며 고른어린이 시모음집들도 시 자체도 좋지만 꾸준히 어린이 시 쓰기 교육활동을 해 오신 선생님에 대해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리고 『넉 점 반』처럼 한 편의 시를 한 편의 그림동화책으로 엮은 책들도 참 반갑고, 『딱지 따먹기』,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등 ‘백창우’ 시리즈를 통해 시를 노래로 만날 수 있는 요즘 아이들이 부러웠다.
나처럼 이런 어린이 시의 세계를 모르던 어른들이 모닝시를 통해 이런 동시들을 받고 무척 놀라워했다.
 
딱지 따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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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지 따먹기 할 때
딴 아이가 내 것을 치려고 할 때
가슴이 조마조마 한다
나는 내가 넘어가는 것 같다

                                    –강원식, 『딱지 따먹기』
 
좋아하는 시들을 모아 놓으니 공통점이 있다. 쉽고 단순하다는 거다. 학구적이지 않고. 이런 시들은 해방감을 준다. 뭔가 갇혀 있던 마음을 탁 풀어 준다. 어느 작가가 시를 ‘나의 가장 가난한 사치’라고 표현했듯이 나에게도 시는 매일 아침을 귀하게 열어 주는 하늘에서 떨어진 선물이었다.
내 마음을 채워 주었던 시들은 우연찮게 선물로 받거나 만나게 된 시들이었다. 학창시절 교과서로 본, 쪼개고 분석했던 시들은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어른이 되어서 교과서에 실렸던 시들을 보니 이제야 그 시들이 울컥하며 와 닿는다. 어쩌다가 사랑에 빠진 것처럼 어쩌다가 시를 나누게 되었는데 내가 받은 건 말할 수 없이 많다. 시에 대한 이론적 배경도 거창하게 설명할 능력도 지식이 없어도 좋은 시들을 만날 수 있고 또 전할 수는 있다.
 
 
도서관에서 시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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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우리의 일상을 얼마나 아름답게 가꾸어 주는지 직접 겪으면서, 우리 학교 아이들에게도 시를 많이 접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에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시를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1. 도서실 소식지
매달 도서실 소식지를 학생용과 학부모용 두 가지
로 발간하고 있는데, 고정 코너로 ‘밑줄 긋는 아이(어
른)’와 ‘동시 따먹기’가 있다. 아이들이 동시집에서
베껴 쓴 시들인데, 어쩜 그렇게 재미있는 시들이 숨
어 있는지, 또한 아이들은 그런 시들을 보물 찾듯 잘
도 찾아내는지 놀랍다.
 
 
 
 
 
 
 
 
 
 
 
 
 
 
2. 벌글 정책 3-6.jpg
우리 도서실에서는 규칙을 어겼을 때 ‘벌글’을 받는
다. 도서관에서 떠들거나 뛰거나 연체하거나 대출증
을 분실해서 재발급해야 하거나 하는 상황에 벌글
을 내야 한다. ‘돈’으로 받지 않고 ‘글’로 받는다. 바로
‘동시 베껴 쓰기’나 ‘밑줄 긋는 아이’를 써서 내면 된다. 이렇게 2년간 모은 시가 한 박스나 된다. 이 벌글 정책을 거의 10년째 해 오고 있다.
 
 
 

3. 환경 미화
이렇게 아이들이 써낸 시 중 일부를 선정해서 도서실 소식지에 싣고, 환경미화에 사용한다. ‘이달의 시’ 코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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