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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잡이 길잡이 [기획자・편집자가 독자에게] 이해와 공감의 첫발자국 / 이 이야기 자체가 101번째 세계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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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5-06-14 16:40 조회 5,45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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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어렸을 때 전국을 많이 돌아다녔다. 다니다 보니 그냥 다닐 게 아니라 계획적으로 여행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한 번은 서울에서 서쪽으로, 한 번은 동쪽으로, 하는 식으로 다니게 되었다. 그런 길의 탐구 중에 중앙 노선이 있었다. 여주 신륵사를 시작으로 양양 낙산사를 보고 단양, 풍기 제천, 안동, 경주까지 일주일 여정이었다. 신륵사, 낙산사, 도산서원, 병산서원, 안동 하회마을을 거쳐 경주국립박물관에 이르렀을 때다. 박물관 입구에 이르렀을 때, 아이들이 문 앞에 딱 버티고 서서 이렇게 말했다.
“엄마, 아빠, 기와집은 이제 안 보고 싶어. 토할 것 같아!”
아이들의 절규에 가까운 비명에 웃음이 빵 터졌다. 거의 나흘 동안 사찰과 서원을 다녔으니 그럴 만도 했다. 결국 우리는 박물관을 들어서지 못했다. 대신 숙소로 돌아갔는데, 아이들이 박물관에서 얻어온 자료를 따라 그림을 그리면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나름 책에서 읽은 역사 상식을 어찌나 잘 갖다 붙이던지 그동안 아이들을 끌고 다닌 것이 헛되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어떤 동화작가로부터 영국박물관의 체험학습 프로그램에 대해 듣게 되었다. 박물관에 오는 아이들은 문화재를 따라 그리며 논다는 것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런 교육이 바탕이 되어 자국 문화재에 대한 자긍심도 높이고, 역사 이해도 돕는다는 것이었다.
아이에게 아무거나 그려보라고 하면 열에 아홉은 만화주인공을 그린다. 그만큼 친숙하다는 것이다. 고구려 수렵도에 그려진 사람이나 사슴, 민화에 등장하는 익살스러운 호랑이를 그리는 아이는 없을까? 단청의 우리 문양들을 안 보고도 그릴 수 있는 아이라면 자라서 디자이너나 건축가가 되었을 때 그 문화적 바탕이 힘이 되어보다 창조적이고 세계적인 직업 세계를 이루어 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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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억들이 바탕이 되어 『따라 그리며 배우는 한국사』, 『따라 그리며 배우는 세계사』는 역사와 문화를 자연스럽게 손으로 눈으로 체득하자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따라 그리려면 꼼꼼히 살펴야 한다. 직선인 거 같으면서도 구부러진 선을 봐야 하고, 타원형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연꽃잎이었다는 것을, 궁궐이나 사찰의 문양도 일정한 규칙이 있다는 것을 그리면서 알게 될 것이다. 아이는 이런 경험이 녹아들어 자연스럽게 역사를 공부하게 될 것이다. 국어가 그렇듯이 역사 역시 암기가 아니라 이해와 공감의 공부이다. 친밀감을 느끼게 되면 공부는 이미 반은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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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저희 편집부는 메일 한 통을 받았습니다. 선데이 타임스, 텔레그래프, 아마존, 뉴욕타임스, 옵서버, 가디언, 이코노미스트등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로 해외의 거의 모든 언론이 극찬한 『100대 유물로 보는 세계사』를 국내에 번역 출간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서였습니다.
저희 편집자들은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현 대영박물관 관장인 닐 맥그리거와 영국의 국영방송인 BBC가 4년간 진행한 전대미문의 프로젝트였기 때문입니다. 대영박물관이 소장한 세계의 유물중 딱 100개를 선정하여, 이를 통해 2백만 년 인류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100부작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대영박물관의 전문 큐레이터 100명이 꼬박 4년간 이 프로젝트에 매달렸고, 2010년부터 매주 5일씩 20주간 전 세계에 방송된 이 프로그램은 무려1,250만 다운로드가 될 만큼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어떤 편집자가 이 책을 욕심내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출간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우선은 저작권료가 워낙 높다는것, 원고의 분량과 책의 성격상 번역도 아주 힘든 작업이 될 거라는 것이었습니다. 경험적으로 볼 때 이 책은 출간하면 무조건 손해보는 책이었습니다.
여러 어려움에도 이 책을 국내에 출간을 해야겠다고 결단을 내리기까지 2개의 뜨거운 감정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이미 해외 여러 나라에서 출간을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높은 선인세와 번역비를 감당 못해 아무도 이 책을 국내에 출간하지 않는다면, 아주 슬플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영국이라는 필터링을 통해 바라본 세계사임에도 불구하고, 선정된 유물 중 신라의 기와가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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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대영박물관이 직접 번역을 체크하고 일부 번역에 문제를 제기해, 번역이 다 끝난 원고를 처음부터 다시 번역하고, 번역 감수까지 추가로 진행하는 등 정말로 엄청난 난관을 헤치며 장장 4년에 걸친 작업 끝에 2014년 12월에 국내에 출간되었습니다. 출간된 후 국내의 여러 언론의 호평을 받았지만, 역시나 판매량은 저조했습니다. 판매량은 적어도 좋습니다. 어차피 손익분기를 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시작한 책이니까요. 하지만 많은 분들이 도서관 같은 곳에서 빌려서라도 ‘101번째 유물이 되고자 하는 역사의 숨결’을 느끼실 수 있다면, 책을 만든 편집자로서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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