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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히어로에 관한 '사소한' 이야기] 슈퍼맨, 불완전한 삶에서 완전함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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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4-06-29 19:02 조회 5,60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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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나이는 기억나지 않지만 소싯적에 빨간 보자기를 목에 두르고 높은 곳에서 뛰어 내린 적이 있다. 부러지지 않은 것만도 다행인데, 엄마는 며칠 동안 다리를 저는 막내아 들에게 “그놈의 슈퍼맨 타령 그만해라.”를 연발하셨다. 그 시절 천방지축 소리 듣던 아 이들 중에 슈퍼맨 따라서 빨간 보자기 목에 두르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지 않은 아이 가 몇이나 될까. 슈퍼히어로들의 능력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슈퍼맨이 세다, 배트 맨이 세다 목소리를 높였던 적은 또 얼마였던가. 돌아보면 우리는 슈퍼맨을 통해 추억 을 쌓았고, 오늘을 살게 해 주는 귀한 경험을 한 셈이다.
 

<맨 오브 스틸>
잭 스나이더 감독|헨리카빌 외 출연|2013
 

슈퍼맨의 가능성, 정체성 푸는 열쇠
‘슈퍼히어로’ 하면 누가 뭐래도 ‘슈퍼맨(Superman)’이다. ‘파란 타이즈에 빨간 팬티’를 입은 패션은 다소 민망하지만, 슈퍼맨만 한 능력을 가진 슈 퍼히어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능력에 얼마나 자신이 있으면 다른 슈퍼히어로들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슈퍼’라는 단어를 버젓이 이름에 붙였겠는가. 이름은 곧 그 사람의 정체성인데, 슈퍼맨은 그만큼 위풍당당 하고 자신감 넘치는 캐릭터가 분명하다.
흔히 슈퍼맨으로 알고 있지만, 슈퍼맨을 부르는 다른 이름이 제법 여러 가지다. 영화 <맨 오브 스틸>로 잘 알려진 것처럼 ‘맨 오브 스틸’도 슈퍼맨 의 별명이고 ‘크립톤의 마지막 아들’, ‘맨 오브 투모로우’, 자주 쓰이지는 않지만 ‘빅 블루 보이스카우트’라고 불리기도 했다. 고향 크립톤에서의 이름은 칼 엘(Kal El)이고, 지구에서는 스몰빌 농부인 조나단 켄트에게 발견되어 키워지면서 클라크 켄트(Clark Kent)라 불렸다.
불리는 이름이 많은 만큼 슈퍼맨의 정체성은 사실상 하나가 아니 다. 지구인으로 살았던 세월, 하지만 남다른 능력을 가진 스스로의 모 습을 발견하고 어린 슈퍼맨은 방황한다. 대개의 슈퍼히어로가 그렇듯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또 어디로 가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슈퍼히 어로 미국을 말하다』(잠)에서 미국의 만화작가 마크 웨이드는 슈퍼맨 의 능력과 거기서 오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얻을 수 있는 아주 독특한 개인이 있 다. 그런 그가 무엇 때문에 자기 시간은 모두 써가면서 다른 사람을 도 우려 하겠는가”
슈퍼맨의 정체성과 그것에 대한 혼란은 남다른 능력에서 시작된다. 슈퍼맨은 1초에 1조 마일, 지구를 3,750만 바퀴나 돌 수 있는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다. 마음만 먹으면 세상 모든 일을 할 수 있고, 세상에서 귀하다는 것을 언제든 가질 수 있다. 그런 인물이 뭐가 아쉬워서 제 몸 상해가며 사람들을 돕는단 말인가.
쟁점은 여기서 비롯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슈퍼맨은 시종일관 지구 인에게 헌신적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누군가 “슈퍼맨 도와줘요.”라고 말하는 순간 슈퍼맨은 빨간 망토들 두르고 현장에 도착해 있다. 다소 뜬금없지만 성선설(性善說)과 성악설(性惡說)의 잣대로 슈퍼맨을 구분 하자면 분명 슈퍼맨은 성선설을 대변하는 캐릭터다. 한 점의 악도 없 는, 오직 선을 위해 몸을 불사르는 인물이 바로 슈퍼맨이다.
맹자의 성선설을 간단히 정리하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착한 성품 을 지니고 있지만 후천적인 욕심으로 인해 악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순자의 성악설은 한마디로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는 것 으로, 악한 본성을 방치하면 사회질서가 혼란해지기 때문에 교육을 통해 악한 본성을 교화시켜야 한다 고 주장한다. 악한 인간을 교육하면 바른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있 다는 것이다. 두 가지 입장에서 공히 주목해야 할 것은 인간이 악하다, 선 하다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바로 ‘가능성’이다.
 

『슈퍼히어로미국을 말하다』
마크 웨이드 외 지음
허윤숙 옮김|잠|2010
 

절대악, 절대선 없는 세상
성악설과 성선설이라는 극단의 논리 로 슈퍼맨을 살펴보는 이유는 악한 선택을 버리고 선한 선택만을 했던 슈퍼맨의 지향 때문이다. 4편까지 나 온 <슈퍼맨> 시리즈와 <슈퍼맨–리턴 즈> <맨 오브 스틸>은 물론 TV 시리 즈였던 <스몰빌>로 이어지는 동안 슈 퍼맨은 악한 가능성이 아닌 선한 가 능성을 한사코 고집한다. (선한 선택을 해야만 하는 필연적 이유는 잠시 뒤로 밀어 두자.)
그렇다고 슈퍼맨의 선택이 모두 선 한 의도에 기인한 것은 아니다. 모든 이타적인 마음에도 이기적인 부분이 있으며, 모든 이기적인 마음에도 이 타적인 부분이 조금은 섞여 있기 때 문이다. 다시 말하면 이타심은 이기 심에서 비롯된다. 남을 돕고자 하는 이타적인 마음은 결국 스스로를 만 족시키고자 하는 이기심에서 시작된 다. 슈퍼맨의 이타심은 결국 슈퍼히 어로로서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특 히 <맨 오브 스틸>에서 보듯 동족인 조드 장군의 침략에 맞서 싸워야 할 사람은 오직 자신밖에 없다는 자부 심은 일종의 이기심에 기인한다.
또 하나, 슈퍼맨은 동료 기자인 로 이스 레인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로 이스 레인이 위험에 처하면 슈퍼맨 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든다. 1978년 개봉한 영화 <슈퍼맨>에서 슈퍼맨은 악당 렉스 루터가 발사한 미사일의 여파로 지진이 발생하고, 로이스 레인이 흙더미에 깔려 죽자 지구를 거꾸로 날아 시간을 뒤로 돌려놓는다. (과학적으로 가능하냐는 논외다.) 시간을 되돌리면 모든 사람 이 살아날 수 있으니 이타심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지구를 거꾸로 돌 린 사건 자체는 순전히 이기심의 발로였다. 시간의 흐름을 묵묵히 견 뎌내며, 하루의 삶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수많은 사람들의 바람과 기대에는 위배되는 행위인 셈이다.
슈퍼맨 개인적인 차원뿐 아니라 성선설과 성악설의 이분법을 대입 할 수 있는 구조는 또 있다. 바로 슈퍼히어로와 악당의 대결 양상이다. 영화 <슈퍼맨> 시리즈에 등장하는 악당은 천재적 악당 렉스 루터(1편, 4편, 리턴즈)와 조드 장군(2편, 맨 오브 스틸) 그리고 곁가지로 대기업 총 수(3편) 등이다. 물론 악당들은 시종일관 악랄하다. 크립토나이트에 약한 슈퍼맨의 약점을 잡고 물고 늘어지는가 하면, 또 다른 약점인 연 인 로이스 레인을 납치하기도 한다. 선량한(?) 시민을 무차별 공격하는 건 예삿일이다.
그런데 가만, 혹시 이런 생각해 본 적 없는가. 슈퍼맨을 괴롭히는 악 당이 없었다면 과연 슈퍼맨은 존재했을까, 라는 생각 말이다. 결과론 이지만 악당의 존재로 인해 슈퍼맨의 역할이 부각된다. 아니, 악당들 의 짓거리가 악해지면 악해질수록 슈퍼맨의 존재 가치는 더욱 빛난 다. 당연한 말이지만, 악당 없는 세상에는 슈퍼맨이 있을 이유가 없다. 슈퍼히어로의 영웅적 행동에 열광할 일이 없어 다소 따분하겠지만, 악당 없는 세상이 더 좋은 것 아닐까.
우리 사회를 한번 둘러보자. 지금 세상은 슈퍼히어로와 악당의 이 분법적 구조로 설명이 가능한가. 악당은 악당의 모습으로만 드러나는 가. 만약 그렇게 드러난다고 해도 악당들을 한 주먹에 해결하는 슈퍼 맨은 지금 우리 사회 어딘가에 존재하는가. 세상의 모든 가난을 해결 하고 모두를 잘 살게 해 줄 거라 믿었던 자본주의는 과거에는 (아주 잠깐) 선한 영향력을 미쳤는지 몰라도 지금은 1%만을 위해 존재하는 제 도로 전락했다. 그렇다고 자본주의가 마냥 나쁜 것이라고 할 수도 없 다.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일거에 타개할 수 있는 슈퍼맨은 어디 있을 까. 혹자는 마르크스의 이념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이겨내는 슈퍼맨 으로 생각하지만, 자본주의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이야기다. 자본주 의는 지금 상황에 따라 천변만화(千變萬化)하고 있다. 물론 마르크스의 이념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예로 든 것은 아니다. 세상은 지금 악당 으로 대변되는 ‘악’과 슈퍼맨으로 대표되는 ‘선’의 구분이 사라진 시대 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절대 선도 없으며, 절대 악도 없는 세계, 우리 사회의 모순을 일거에 없앨 슈퍼맨은 더더욱 없다. 영화 속 슈퍼 맨이 주는 교훈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 슈퍼맨은 없다 는 사실을 도드라지게 한다.
 


 
『슈퍼 히어로』
한창완 지음
커뮤니케이션북스|2013
 

슈퍼맨, 경찰국가 미국의 아바타?
슈퍼맨이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이유는 사실 태생적 한계에서 비롯 된다. 그것은 슈퍼맨이 선한 선택을 해야만 하는 필연적 이유와도 잇 닿아 있다. 알다시피 슈퍼맨은 1938년 6월 만화(<ACTION COMICS> 1 호)로 먼저 태어났다. 슈퍼히어로의 첫 탄생을 알린 슈퍼맨은 당대 최 고의 인기 만화로 수많은 시리즈는 물론 아류작과 패러디 등으로 이 어졌다. 한창완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는 『슈퍼 히어로』(커 뮤니케이션북스)에서 슈퍼맨의 탄생과 그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1930년대 대공황은 사악한 악당을 물리칠 수 있는 강철 같은 슈퍼 히어로를 필요로 했다. 미국 내에서도 본격적인 민주화와 격렬한 경제 적 혼돈이 혼재되어 일반 서민들의 삶이 피폐해지고, 문화적 서비스 는 거의 전무하던 시대였다. 높은 실업률과 마피아들을 중심으로 한 갱스터들의 불법 행위들은 공권력의 부패와 더불어 사회 전반에 만연 해 있었고, 일반 대중의 비상구는 판타지 소설과 코믹스 시장으로 한 정된다.”
대공황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지만 미국은 1930년대부터 세 계 최강자 자리에 올라섰다. 두 차례 세계대전과 미소 냉전을 거듭하 는 사이 미국은 세계의 경찰국가로 자리매김했으며 그 과정에서 탄생, 분화, 발전한 슈퍼맨은 사실상 미국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영화가 만들어진 1978년이라는 시기도 공교롭다. 카터 행정부가 집 권하고 있었지만 대중의 지지도는 바닥이었다. 경제도 바닥이었지만, 세계 여러 나라에서 미국의 위상도 예전만 못했다. 이란은 친미정부가 무너지고 호메이니가 이끄는 반미정부가 들어섰다. 이 과정에서 미국 대사관이 무려 444일 동안 점거되었고, 66명의 인질을 구출하기 위한 특수부대의 작전은 처절한 실패로 돌아갔다. 카터는 재선에 실패했 고, 영화배우 출신 레이건이 뒤이어 대통령이 되었다.
미국인들은 은연중에 힘을 숭상했는데,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시작은 그렇게 슈퍼맨의 탄생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세상 도처에 악이 창궐하고 있지만 슈퍼맨(미국)이 한 번 날아오 르면 악은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다. 슈퍼맨이 지금까지 미국 사람들 에게 특별한 슈퍼히어로로 인식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수많은 슈퍼히어로들이 한꺼번에 능력을 뽐내는 영화, 예를 들면 <어벤져스> 같은 영화가 개봉하는데, 슈퍼맨만은 독야청청 홀로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않는가. 슈퍼맨은 곧 미국이다. 한창완 교 수의 설명을 더 들어보자.
“슈퍼맨은 경찰국가로서 20세기 새로운 세계열강으로 떠오른 미국 의 대표적 아바타였다. 할리우드 슈퍼히어로 대부분이 팍스 아메리카 나의 변형된 브랜드라면, 그 출발은 슈퍼맨이다. 슈퍼맨은 1930년대 세계의 새로운 강자로 부각되기 시작한 미국 자존심의 출판이었으며, 그로부터 TV 시리 즈, 영화 등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을 통해 미국의 발전과 그 맥을 함께한다.”
 

고뇌하는 인간의 오롯한 의미
슈퍼맨은 만화와 영화 속에나 존재하는 것을 알면서도 어쩌면 우리 모두는 현실 세계에 서 슈퍼맨의 등장을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또한 그토록 기다리던 슈퍼맨을 철저히 외면 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우리 자신이다. 제아무리 슈퍼히어로라도 잠시 잠깐 마음이 요동 치는 순간이 있게 마련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모든 이타심의 시작은 이기심이기에, 슈퍼 히어로 역시 스스로의 만족과 유익을 구할 수 있다. 절대 선을 가진 신이 아니라면 누구 나의 삶은 항상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중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슈퍼히어로를 원한다. 그렇게 살지 못하는 내 삶을 투영하고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래야만 보고 즐기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슈퍼맨의 존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사실 거창하지 않다. 지나치게 철학적으로 혹 은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조차 현학의 허세일 수 있다. 단지 슈퍼맨도 고뇌하듯, 일 개(?) 인간도 고뇌할 수 있고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슈퍼맨 이 악당을 물리치면 완전한 세상이 도래할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 <슈퍼맨>이 여섯 번의 시리즈로 이어진 것처럼 불완전함도 시리즈처럼 계속될 것이다. 불완전한 세계와 불완 전한 인간의 조합, 거기서부터 우리가 찾아가야 할 ‘완전함’의 자리를 모색하면 될 일이 다. 시작은 거창할 필요없다. 작은 것에서 우리 삶의 완전함을 찾는 모색, 그것이 시행착 오의 거듭이라 할지라도 가야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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