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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이 함께 [사서샘의 테마수필] 책의 날과 독서의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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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9-29 15:25 조회 7,24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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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효숙 동두천 송내중앙중 사서. 수필가

사서는 기획가
책과 관계를 맺고 길들여진 채 지구별에서 살고 있다. 어린왕자를 생각하면 마음속 어린애가 고개를 내민다. 도서실에서 아이들은 꿈을 꾼다. 책과 꿈이 관계를 맺고 길들여지는 곳에서 일한다니.

4.23 세계 책의 날과 9월 독서의 달이 반복된다. 반복되는 게 어디 한두 가지일까. 인생 자체가 반복인 것을.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사는 사람과 책의 바퀴를 돌리며 사는 인생은 다르다. 책에 길들여져서 책 얘기만 나오면 반응을 한다.

아침독서로 시작해 베갯머리에서 잠들 때까지 날과 달이 책과 더불어 열리고 닫힌다면 그 하루가 책의 날이요 독서의 달일 것이다. 아들과 함께 있을 때 매일 책의 날로 만들었고 그 매일이 스티커처럼 31개 모아지면 독서의 달로 넘겨졌다. 십 년 같이 살고 십 개월을 떨어져 살고 있는학교도서관저널데, 시도 때도 없이 녀석 인생이 통째로 다가와 읽힌다. 아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읽는 게 어느 날은 그림동화처럼 맑다가 어느 날은 미스터리 소설이 되기도 한다.

훼손된 책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책도 생로병사를 겪는다. 흥부가 부러진 제비 다리를 싸매주듯이 보수용 테이프로 찢긴 부위를 감싼다. 제 몫을 다하고 돌아온 것들에게 말을 건넨다. 책의 날 폐기도서를 모아놓고 책의 장례식이라도 치러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누군가의 손을 타고 돌고 돌아 너덜거리는 책의 유언이라도 들어보는 시간, 그 책과 동일한 새 책을 구입해 소개하는 시간을 상상하니 그럴 듯하다. 출판기념회와 다른 뭔가 있을 것이다. 책 장례식에 초대장까지 만들면 주책일까. 책도 책 바퀴 돌리며 살다 그렇게 돌아가는 것인데.

학교도서실 운영과 행사도 때가 되면 가속도가 붙는다. 4년차인 내 근무연수도 연륜과 함께 발효되어 색다른 맛을 낸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는데 뭔가 몫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게 있다. 적시 적소에 적서를 제공하듯이 때에 맞는 맞춤 서비스가 필요하다.

연중 프로그램을 품고 살다보니 헌팅 작업의 연속이다. 핸드백은 책가방이 된지 오래다. 3월부터 시작되는 도서실 프로그램은 학교마다 거기서 거기다. 처음엔 거기서 거기의 거리가 거리감으로 다가왔다가 점점 좁혀진다. 타성에 젖지 않고 뭔가 다르게 도서실을 바라보면 자구책이 생긴다.

교육청 연수 때 공감대를 넓히며 관심분야를 확장하기도 한다. 동두천양주교육지원청에서 10주 동안 독서논술지도사 과정을 연수중이다. 북아트와 신문활용교육, 토론과 논술, 스토리텔링 등 관심분야를 아우르는 시간이다. 매주 화요일 퇴근 후 6시에서 9시까지 진행된다. 배운 것을 언제 어떻게 써먹을지 머릿속에서 궁리하기 바쁘다. 학교상황과 아이들의 처지를 감안해서 접목시킬 필요가 있다.

사서 샘들 모임과 연수를 통해 얻은 지식을 활용하는 것도 좋지만 평소 책을 읽는 가운데 창의적인 발상을 할 때가 많다. 나만의 차별화 전략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번 책의 날 행사도 그렇게 시작됐다. 신문을 보면서 책 제목이 브레인스토밍을 일으켰다.


세계 책의 날, 14행시 짓기
2013 송내중앙중 세계 책의 날 행사는 ‘28자로 이룬 문자혁명 훈민정음과 놀자!’였다. 1학기 중간고사가 있어 아이들에게 부담되지 않는 가운데 진행해야 했다. 공감하며 즐길 수 있겠다는 느낌이 왔다. 보통 삼행시나 사행시 짓기는 많이 해봤을 것이다. 많이 해봤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통 크게 14행시 짓기를 했다.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인데 반드시 가로 시작해 하로 끝나야 하는 규칙을 지켜야 한다. 제목 짓기와 더불어 한편의 글로서 완성도를 지녀야 한다.

처음 아이들의 표정은 대략 난감했다. 14행시 견본이 필요했기에 자작한 예시문을 게시했다. 모방의 달인들이 하나 둘 감을 잡기 시작하면서 도전하는 분위기로 급변했다. 우르르 떼를 지어 도서실로 몰려들었다. 학교장상과 문화상품권을 여느 때처럼 내걸었다. 제출자에겐 초콜릿이나 사탕을 줬다. 책의 날 대출자에게 뽑기 기회를 주고 사탕이나 초콜릿, 과자와 학용품을 줬는데 학용품을 뽑은 아이가 초콜릿 하나와 바꾸자고 할 만큼 달콤한 유혹은 힘이 셌다. 먼저 써서 제출하는 아이들 작품을 교실에서 미리 읽어보고 자가 비평하는 안목도 형성됐다. 그 안목은 도전의식으로 연결됐다. 비치해뒀던 A4용지를 복사하기 바빴다. 시험 공부하면서 머리 아플 때 써보라고 부추겼다. 10일 정도의 기간을 주며 도서실에서 작품을 받았다.

1학년 봄이라는 아이에게로 시선이 갔다. 한 편을 완성해 보더니 머릿속에서 실타래처럼 생각이 풀려 나온다고 계속 쓰면 안 되냐고 했다. 굳이 1인 1편으로 제한을 두지 않고 맘껏 써보라 했다. 12편까지 써 왔고 그때서야 멈췄다. 12편 안에는 다양한 장르 도전이 있었다. 시적으로만 읊조린 게 아니라 동화나 소설의 한 장면을 써 보는 걸로 진일보했다. 쉬는 시간마다 달려오고 용지를 가져다 쓰는 모습을 같은 반 아이들이 지켜본 모양이다. 말없는 파급효과가 일어나 97편이 모아졌다.

심사는 도서관담당 샘과 함께 했다. 심사 전에 도서관 마니아인 교감 샘에게도 보여줬다. 작품 보는 눈은 비슷했다. 이성간의 사랑을 노래한 시가 대부분인 가운데 부모와 친구 사랑으로 눈을 돌린 작품들에 시선이 모아졌다. 학교폭력을 주제로 쓴 아이에게 최우수를 줬고 최다 편수 제출과 함께 책의 날 전체 분위기를 이끌었던 봄이에게 우수상을 줬다.

작품성 있는 작품 12편을 추려 코팅한 후 도서관 테이블에 붙였다. 게시 장소를 마땅하게 찾지 못한 까닭으로 붙여 봤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길을 밟고 가는 곳에 광고지를 붙여 놓은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나 할까.
창가에 세워둔 수상작과 테이블에 붙여놓은 작품 간의 작품성을 아이들이 돌아다니며 평가했다. 이렇게 글쓰기를 재미나게 할 줄 몰랐다며 새로운 자기 발견에 대한 고백을 한다. 독서의 달 행사로 14행시 짓기를 권해본다. 학교마다 제2의 봄이와 만날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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