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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만화 [읽어볼 만화면] 락을 이야기하는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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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7-24 18:01 조회 7,15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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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호 만화연구가

락이라는 음악장르는 늘 양가적 위치에 놓여있다. 오늘날은 확고한 주류 인기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항적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소위 ‘락 정신’이라는 규범론의 대상이 되어 있다. 격렬하게 흔들며 춤추기 좋다는 의미로 탄생한 용어이면서도, 어느덧 ‘댄스음악’과 대립각을 세우는 듯한 말이 되어버렸다. 시끄러운 굉음을 특기로 내세우면서도, 정작 가장 널리 대중적으로 인기를 끄는 것은 말랑함을 강조한 락발라드다. 쿨한 이미지와 구린 이미지(락 팬들마저 락의 전성시대를 70년대 명밴드들에서 찾다보니 어쩔 수 없다)가 공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락에 있어서 느슨하게 항상 공유되는 이미지는 바로 격렬한 자유로움이다. 음악으로서, 생활 자세로서 무언가 옭아매는 구속을 끊고 시끄러운 음악을 통해 해방감을 맛보는 것 말이다. 몇몇 댄스 장르나 힙합 등과도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춤동작의 정교함이나 게토적 연대감보다는 좀 더 폭넓은 적용 범위를 두고 있기에 아무래도 이런 이미지의 대표적 장르로 먼저 떠오르곤 한다.
락이 표현하는 젊음과 분출의 코드는 결국 성장이나 돌아봄 현실과 일탈의 주제에도 썩 잘 어울린다. 락 자체의 이미지를 살려서 경쾌하거나 격렬하게, 혹은 락과 대비되는 현실을 보며 역설적 회색빛 우울함을 강조하는 방식으로든 말이다. 이어폰을 꼽고, 한번 락으로 만들어내는 작품 세계에 빠져보자.


락과 성장 스토리
락은 젊음의 이미지가 있다. 나이든 락커가 락을 하면 마음의 젊음이 표현되고, 젊은 락커가 락을 하면 젊음의 혈기로 보인다. 젊음과 필연적으로 연결되는 소재가 바로 성장인데, 락을 잃어버림으로써 성장하기보다는 락을 친구삼아 성장 과정의 난관들을 위로받거나 용기를 얻어 앞으로 나아간다.
『BECK』(전 34권, 해롤드 사쿠이시, 학산문화사)은 아예 락밴드의 성공 과정을 담아내는 소년만화다. 평범한 고교생 주인공 유키오가 몇 가지 인연을 통해
은둔 생활 중인 락 기타리스트를 만나고, 이런저런 소동을 거치며 천부적인 락 보컬리스트의 재능이 발견된다. 그리고 동료들을 모아서 난관을 극복해가며 세계적인 락밴드로 성장해나간다는 줄거리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소년만화의 정석이라고 할 만한 코드들이 빼곡하게 배치되어 있다. 성장을 가로막는 적수, 크고 작은 라이벌들과 벌이는 경합, 하나의 성공 뒤에 더 강한 도전이 기다리는 에스컬레이션 구조, 그 모든 것을 함께 하는 주인공 팀의 우정 등이 그렇다. 그런데 주먹질이나 초능력이 아니라, 음악의 탁월함을 성장시키고 음악으로 승부를 한다. 그런데 소년만화적 재미의 핵심 중 하나가 바로 점점 더 강력해지는 힘의 묘사가 주는 쾌감임을 상기할 때, 음악에서 그런 것을 어떻게 구현하는가가 흥미진진한 관심거리다. 이런 것은 이 작품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실제 락밴드 음악으로 사운드트랙을 입힌다고 해서 재현될 수 있는 성질의 성장성 재미가 아니다.

소년만화적 호쾌한 성장 코드 말고, 인디만화들의 섬세한 성장드라마의 감성을 원한다면 『창고 라이브 - 다섯 개의 청춘 송가』(지피, 세미콜론)가 제격이다. 드라마틱한 대결 서사나 미형 캐릭터들이 즐비한 작품은 전혀 아니지만, 거칠고 개성적인 수채풍 그림 속에 십대 청소년들이 만든 아마추어 락 밴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주인공들은 그냥 동네 소년들이고, 각자 청춘의 고민이 있고 가족 사정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성장 중이다. 하지만 그 친구들이 함께 한 명의 아버지 창고에서 모여 합주를 하고, 별로 대단할 것 없는 실력에 관객도 없지만 고민을 날려 보낸다. 자기들의 연주로 데모 테이프를 제작하다가 문제가 생겨서 결국 쫓겨나는 이야기지만(극적 재미가 중심이 아니기에, 결말을 미리 안다고 해서 재미에 지장이 오지 않는다), 락을 통해서 해소하고픈 것이 무엇인지 진솔하게 성장의 고민들을 담아낸다.



현실의 고민들을 논하기 위해 무조건 현실을 묘사할 필요는 없다. 판타지적 설정을 통해서라도 성장통의 고뇌와 그것을 락으로 해소하는 과정을 은유해가며 풀어내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고, 잘 하면 상당히 재미있어진다. 『도로시 밴드』(전 3권, 홍작가, 미들하우스)는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 틀을 모티브로 비틀어, 도로시와 동료들이 락밴드를 만들어 락음악으로 그 세상을 구원하는 이야기다. 원래 오즈의 마법사라는 소설 자체가 소녀가 이상한 나라에서 모험을 겪으며 마법사 오즈가 드러내게 되는 ‘어른의 사정’을 받아들이고 넘어서며 좀 더 성장한 모습으로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내용이다 보니, 이미 다양한 소재와 장르로 변주된 바 있다. 그런데 마법 대신 락음악으로 자신과 세상을 구원하는 버전은 역시 신선하다. 락정신으로 충만하다보니 동료 간의 우정은 끈끈하기보다는 쿨하고 헐렁하며, 낙천적 에너지가 넘친다.


락으로 무엇을 해방시키는가
락은 젊음의 분출을 통해서 해방감을 준다. 틀에 박힌 사회, 이성의 구속, 그 안에서 적응하느라 받은 스트레스를 부수고 어떤 즉흥적 자유의 느낌을 만든다. 뒤집어 말하면, 락이 해방구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어떤 갑갑하고 꽉 막힌 세상사의 스트레스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전복의 쾌감은 전복할 만한 강고한 무언가를 필요로 하고, 전복의 방식은 전통적 무언가에 대한 전면적 반기의 모습이다(예를 들어 70년대 이후 ‘쇼크 락’이 필요 이상으로 악마숭배적 이미지를 차용한 것은 그들이 딱히 악마교도들이어서가 아니라, 당대 서구의 전통적인 기독교적 사회 미덕에 대한 강요를 전복하는 방식이기 때문이었다 - 그쪽 용어로 하자면, “우리 엄마가 싫어하는 것을 한다.”).
『스콧 필그림』(전 6권, 브라이언 리 오말리, 세미콜론)은 캐나다의 청년 백수가 주인공이다. 그는 ‘번듯한’ 직장을 찾지 않고 백수로 지내며, 실력도 뛰어나지 않고 유명하지도 않은 인디 락밴드에서 연주한다. 그가 락을 하면서 반항하는 것은 성숙해질 것을 강요하는 세상 그 자체다. 그런 그가 한눈에 반하게 된 여성은 일곱 명의 사악한 전 남친들이 있어서, 그들의 저돌적인 공격을 물리쳐야 한다. 컴퓨터 게임의 문법을 차용한 대결 과정이 주는 재미가 깊숙하고 락정신 충만한 헐렁함이 작품을 지배하지만, 그 이면에는 사랑을 하고 이별을 받아들이고 노력을 하고 결국 어떤 생활을 찾아나서는, 그러면서도 여전히 미성숙한 쿨함을 잃지 않는 멋스러운 주제들이 담겨 있다.


하지만 세상이 흔히 락정신으로 돌파되는 것은 아니어서, 대부분은 그냥 그저 그런 어른이자 사회의 부품으로 변모한다. 『스멜스 라이크 30 스피릿』(전 2권, 고리타, 애니북스)은 권태에 빠진 직장인 주인공이, 어느 날 운명의 계시로 인해 최고의 락 음악을 만들어 달나라로 가야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사내 밴드를 만들어 그간 완전히 없어져버린 줄 알았던 락정신을 되찾아가는 이야기다. 열심히 하면 최고의 락커가 되는 것이 아니고, 락으로 좋았던 한 때를 회상하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남루한 현실이라 할지라도 황당한 꿈 하나쯤 세우고 락 음악을 하다 보면 좀 더 잘 버틸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러다보면 달나라도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격려의 메시지다. 향수 어린 대리만족이 아닌, 현재형으로서의 공감대 말이다. 가장 황당한 개그 코드 속에서 가장 현실적인 위로를 만들어내는 묘한 작품이다.
일상의 생활과 꿈을 함께 추구하면서 삶을 버티고 조금씩 성장도 이뤄낸다. 그중 락은 꿈의 영역에 가깝고, 그것을 꽤 즐겁고 쾌활한 방식으로 - 심지어 이중정체성 코미디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전 10권, 와카스기 키미노리, 서울문화사)가 소재로 다루는 가장 우울하고 시끄러운 데스메탈이라고 할지라도–추구하도록 만든다. 스트레스 높기로 치자면 어떤 시대 어떤 사회에 비견해도 강력한 경쟁력을 자랑할 만한 오늘날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락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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