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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방방곡곡 사서人 인터뷰] 문다정 경북대사범대학부설중 사서교사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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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4-04-02 09:58 조회 13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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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후 책 쓰기의

무림 고수들

문다정 사서교사와의 만남


인터뷰·사진 최문희 편집장





재미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 문다정 선생님이 인터뷰 끄트머리에 들려준 소원이다. 누군가에게 재미를 주려면 타인의 행간을 살피는 센스가 필요한데, 그는 이미 센스가 넘쳤다. 유쾌했다. 몇 해 전부터 IB교육으로 뜨거워진 대구에서 사서교사의 역할을 다져 온 그는 최근 동료들과 한 권의 책을 냈다. 그 책 역시 센스와 재미가 넘친다. 열두 달 숨가쁜 도서관 한해살이 사이사이 동료 교사와 협업하고, 도서부와 동고동락하며 학생들의 감정을 살뜰히 돌본 생활이 가히 스릴 만점이다. 그들이 통과한 사계를 읽다 보면 진지하다가도 유쾌해지고 ‘웃프’다가도 든든해진다. 밤샘 캠프와 작가와의 만남은 기본, 책 쓰기와 활용수업 등 해마다 치밀하게 독서교육을 연구해 온 8인. 사서교사의 생이 곡진해서 ‘남는 건 사람뿐’이라지만 덩달아 알곡찬 학교도서관을 채웠다. 여덟 사람 가운데 실로 이름대로 다정한 그의 이야기를 소개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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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서 대구로 발령받아 교직 생활을 시작하신 지 20년 차가 되셨죠. 나고 자란 지역으로 이동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지역에 터를 진하게 잡으신 것 같아요. 

대구 달성군으로 첫 발령을 받았는데, 광역시에도 군이 딸려 있다는 걸 당시 처음 알았어요. 처음 근무하게 된 달성중학교는 노란 벽돌로 이뤄진 오래된 건물이었는데, 솔직히 도서관을 보자마자 한숨이 나왔어요. 대학을 갓 졸업한 뒤 낯선 지역에 도착했는데 시골이었고 학교도서관도 거의 창고였거든요. 교실 반 크기 남짓이었고 매립형 컴퓨터 책상 한 대와 서가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죠. 당시 전남에서 같이 대구로 발령받으셨던 양향숙 선생님도 인터뷰에서 비슷하게 말씀하셨던 것 같아요. (웃음) 발령받은 그해 여름, 학교도서관 리모델링을 시작했어요. 교실 옆 칸을 터서 두 칸 반 정도의 공간을 내었는데, 당시만 해도 전산화가 전혀 안 돼 있었거든요. 옆 교실도 리모델링 중이어서 도서관 주변이 공사장을 방불케 했는데, 방학에 책을 이고 지고 다니며 전산화 작업을 홀로 했어요. 라벨링도 새로 하고요. 그러던 어느 날, 교장선생님께서 전화가 와서 도서관 리모델링 중인데 왜 한 번도 나오질 않냐고 화를 내시더라고요. 방학에 출근을 하더라도 윗분들한테 인사를 해야 했던 걸 몰랐던 거죠. 사회생활이 처음이고 어렸던 때라, 순진하게 매일 일만 했던 것 같아요. 


고생하는 새내기 선생님을 교장선생님이 오히려 챙겨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네요. 선생님처럼 발령지로부터 먼 지역에 살다가 일을 시작하는 경우 집은 어떻게 구하시나요? 

지금은 달성중학교 근처에 아파트가 많이 생겨났지만, 그땐 지하철도 여러 호선으로 개통이 안 됐던 무렵이에요. 집을 구하려고 학교 근처에서 지하철이 개통된 구역까지 굽이굽이 걷다 보니 상인역까지 닿았고, 근처에서 배회를 했어요. 발령 동기랑 우연히 연락이 닿아 집을 어떻게 구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놓으니, 고맙게도 같이 주변을 다니면서 집을 알아봐 줬어요. 그렇게 원룸을 구했는데, 제가 입주한 곳이 아파트 재개발이 이뤄질 예정이라며 살기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방을 빼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어요. 다행히 옆집에 살던 세입자 분이 자기는 이주 비용을 받고 나가는데, 알고 있냐며 알려 주셨어요. 솔직히 대구에 도착해서 부동산으로 인해 지역 이미지가 안 좋게 느껴진 건 사실이지만, 고비가 올 때마다 저를 도와줬던 사람들도 대구 분들이셨던 것 같아요. 학교에서 같이 일하는 여성 동료들이랑 집밥 먹기 프로젝트를 하며 각자의 집을 돌며 음식을 나누기도 했고요. 그렇게 보금자리를 만들고, 리모델링을 마치고 나니 도서관에 아이들이 오기 시작하더라고요. 리모델링 전엔 하루에 서너 명 올까 말까 했는데 이용자가 눈에 띄게 늘어나 기뻤어요. 


대구는 인문학 책 쓰기 프로젝트 등 여러 융합 수업을 해 온 걸로 정평이 나 있는데, 사서교사 인원은 40명이에요. 대구 지역 학교도서관만 해도 906실(교육통계서비스)인데, 적은 인원으로 지역 독서교육 네트워크를 어떻게 꾸리고 계시나요? 

함께 대구로 발령받았던 선생님이 열한 명이었는데, 정보를 교환하려고 자주 모였어요. 발령 당시 저는 스물셋이었는데 학생들이 종종 “아줌마, 여기서 뭐 하세요?” 하고 묻곤 해서 어안이 벙벙해지던 순간이 많았거든요. 같이 눈물 콧물 다 빼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임에서 조언을 구하기도 했어요. (웃음) 대구에 처음으로 발령받은 ‘1호 사서교사’인 안현정 선생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하소연도 많이 했고요. 훗날 도서관 이용교육을 하고 나니 학생들이 더 이상 ‘아줌마’ 소리를 안 하더라고요. 사실 2003년만 해도 학생들이 사서선생님을 학교에서 못 만났던 세대예요. 낯설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하고 나니까 ‘학생들이 나의 존재를 모른다면 지금부터 기억할 수 있도록 바꿔 가야겠다’라는 다짐이 들더라고요. ‘대구사서교사협의회(이하 대사협)’는 열한 명 인원으로 출발한 모임이에요. 대사협 인원이 스무 명 이상이 되면서 협의회 내 회칙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어요. 교육청과 논의할 때도 단체 이름이 있어야겠더라고요. 대외활동부, 연수부, 장학자료 제작부 등 부서를 나눴고 돌아가면서 회장직을 맡는 체계로 개편했어요. 협의회가 열심히 해서 독서교육의 질을 올리는 건 물론, 성과를 내면 교육청에서도 우호적으로 여기고 임용 인원의 수를 늘리는 데 기여할 거라고 생각했죠. 디베이트 독서토론, 학교도서관 활용수업도 몇 년에 걸쳐 같이 연구했어요. 대구에 계시는 교사 약 이백명가량을 모아다가 연수도 했고요. 사서교사가 강사로 나서 활용수업의 개념을 알려 주고, 어떻게 수업을 갖춰 갈 수 있는지 안내했어요. 2015년부터는 책 쓰기 열풍이 일었는데, 실제로 대구 지역 선생님들이 학생 글쓰기에 많이 매진하고 교사로서도 책을 많이 내는 추세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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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책방이나 출판사와 연계한 글쓰기 프로젝트도 꽤 많은 선생님들이 하고 계시죠? 
프로젝트 초반에는 우리 지역 출판사 위주로 알아보고 협업을 했는데, 각자 한계를 느끼는 분위기였어요. 원하는 편집과 디자인, 홍보의 방향을 더욱 잘 잡아 줄 다른 출판사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전국 단위의 출판사로 연락을 취하는 분위기로 자리 잡혔어요. 그래도 지역 서점에 학생들을 데리고 가는 선생님들은 여전히 많아요. 독립출판물을 판매하는 더폴락(중구 경상감영1길 62-5), 그리고 고스트북스(중구 경상감영길 212)에 책 쓰기에 참여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강의를 듣기도 했고요. 특히 고스트북스 책방지기께서 원고의 콘셉트 잡는 방법과 독자의 시선을 끄는 글쓰기 비법을 학생들에게 안내해 주셔서 인상에 남아요. 그분은 공공도서관에서 인디자인 강의를 열기도 했던 분이거든요. 아이들이랑 지역 서점에 같이 가서 독립출판물을 눈으로 보고, 출판 주제 강의를 듣는 게 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학교도서관 활용수업 연구회 등 선생님께선 특히 독서 수업 개발에 매진해 오셨어요. 임용 초기(2003년)와 최근을 비교했을 때 협력수업 분위기는 어떻게 달라지고 있나요? 

이천년대 초반만 해도 기초적인 수준이었어요. 교사들 역시 책을 어떻게 검색하는지 몰랐던 시절이고요. 그때가 협력수업을 이해하고 수업의 방법을 알려 드리는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밀접형이 되어 가는 듯해요. 책을 기반으로 한 활동 방식에서 다양한 정보원을 바탕으로 한 방식으로 바뀌었어요. 사실 요즘 아이들이 어른보다 정보 검색을 잘해요. 그런데 찾아낸 정보를 정리하고 지식으로 습득하는 방법을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자기 것으로 만드는 방법을 사서교사가 더욱 긴밀하게 길잡이하는 방법들이 필요한 셈이죠. 자신이 탐색한 정보가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별하는 방법을 안내하는 것에 주력해야 하고요. 예전만 해도 정보를 일정하게 탐색하고 학습하는 방식의 수업을 진행했다면, 지금은 방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질적인 가치를 추릴 수 있게끔 안내하는 방식의 수업이 주요해졌어요. 전보라 선생님께서 그런 일을 정말 잘하고 계시는데, 저도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협력수업에서 긴요해진 미디어 리터러시를 주제로 대사협과 교육청이 협력해서 장학자료를 제작한 적 있어요. 학생들이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환경, 인권 등 다양한 주제별 수업을 실천하고 자료로도 제작해 왔어요. 대사협은 정기적으로 교육 트렌드를 파악하고 찾아내 사서교사가 어떤 방법으로 지원할 수 있는지 논의해 왔어요. 최근엔 ‘마음학기제(편집자 주: 심리·정서적 변화가 많은 초6 학생, 중2 시기를 대비해 초5, 중1 학생을 대상으로 마음교육 15차시를 집중적으로 실시하는 학기)’가 도입됐는데요. 올해 대구에서 시범으로 진행하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학기가 시작될 거예요. 작년엔 마음학기제를 주제로 학생들에게 책을 추천하는 장학자료도 만들었어요. 


제주와 함께 대구는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교육의 시범지로 교육 모델을 꾸리는 바, 서술형 시험과 활동형 수업 중심이어서 학교도서관의 역할이 주목을 받고 있어요. 관련 공부는 어떻게 하고 계시나요? 

현재 IB 학교에 속하는 경북대사대부중은 재인증을 앞두고 있어요. IB 본부에서 내세우는 기준과 목표에 합당한지, 각 교과들이 이를 충족하고 있는지 검증하는 단계를 거칠 예정이에요. 학생들에게 자료 정보원을 잘 제공할 수 있는지, 즐거운 독서가 가능한지 도서관 분야의 기능도 면밀하게 살피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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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IB 본부는 학교도서관의 역할로 ‘학문적 진실성(Academic integrity)’을 중요하게 여겨요. 저작권과 자료 출처를 익히는 교육을 뜻하는데, 표절이나 오독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서가 그 기능을 다할 것을 요구해요. 학생들에게 제공한 자료 정보원이 질적으로 가치 있는 것인지도 함께 살펴보도록 당부하고 있고요. 전자책이나 전자잡지 등 정보원을 다양하게 갖추고 확대하라고도 하는데, 요즘 학생들은 인터넷에서 정보를 손쉽게 ‘채집’하는 습관이 있다 보니까 DB피아 등 논문 사이트를 잘 이용케 하는 방법이 현실적으로 어렵긴 해요. 이 부분은 계속 고민하며 일선 교사들과 협의를 해 나가야 할 부분이에요. 저는 온라인으로 IB교육을 이수했는데, ‘Role of Librarian’이라는 사서교사가 이수하는 코스가 있어요. 그 과정도 질문의 연속이에요. (웃음) IB교육에 있어서 도서관이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지 알려 달라는 질문에 의견을 밝히면 거기서 파생된 질문을 다시 해 오는데, 모두 영어로 작성해야 해요. 예전에는 현장 연수조차 영어로 하는 분위기였는데, 최근 들어선 한국어로도 이뤄지는 것 같더라고요. 사서교사의 이수과정은 온라인 과정만 있는 터라, 타 선진지 방문을 해야겠다는 논의를 대구 사서선생님들과 하고 있어요.


IB교육은 의견을 서술형으로 밝히는 수업이 많은 특성을 띠고 있는데, 도입 후 학생의 학습 능력이 실제로 향상됐다고 보시나요?

저는 IB교육을 2년 정도 경험했는데, 확실히 예전에 비해 학생들이 글쓰기 능력이 향상됐고, 발표할 때 어려워하는 모습이 많이 사라진 것 같아요. 거의 전 교과에서 글쓰기를 과제로 제시하고 발표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에요(편집자 주: IB교육은 언어, 과학계열 등 총 6개의 필수과목과 3개의 교양과목으로 이뤄져 있다). IB 교육과정은 학생들이 ‘지적인 도전’을 할 수 있도록 개인과 사회 등 세계적인 맥락을 주제로 한 학습을 중점적으로 해요. 중등과정에서 통합교육을 강조하는 편이라, 교과와 연결해 융합 학습을 위주로 해요.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기보다 역량 중심 교육과정을 기반으로 학생이 주도성을 기를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IB교육을 받기 전 학생들과 받은 학생들을 비교하자면, 표현 능력이 우수해졌다는 걸 절감해요. 과학 과목이든 수학 과목이든 수업에서 글쓰기를 주요하게 다루며 평가하기에, 전 과목에서 학생들이 쓰기 훈련을 두텁게 배우거든요. IB교육을 실천하는 사서교사는 교과교사와 정기적인 협력에 매진해야 한다고 봐요. 제가 연수차 강의를 가서도 말씀 드린 바, 도서관 내부에만 있기보다 바깥으로 나가서 교과교사들을 만나 긴밀한 협의를 해야 교육의 방법을 적극 논할 수 있거든요. 이곳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이 교과별 협의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는데, 도와드릴 게 무엇이 있는지 적극적으로 묻고 듣는 순간을 견디고 즐길 줄 알아야 해요. 


최근 일곱 선생님과 『사서교사의 하루』를 내셨는데, “사서 고생하는” 선생님들의 일하는 사계와 보람이 곡진해서 예비 사서샘의 필독서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탈고하기까지 스릴러물(?)과 흡사했을 텐데, 챕터별로 어떤 서스펜스가 있었나요?



첫 번째 챕터를 논하자면, 우선 저희가 원고를 써서 매달 정기적으로 만났거든요. 원고를 돌려보기 전에 일단 맛있는 걸 먹어서 즐거웠어요. (웃음) 그다음 카페에 가서 가져온 원고를 서로 돌려보면서 이런 부분은 이런 방향으로 수정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나누곤 했어요. 문장들을 고통스럽게 뽑아내어 열심히 쓰고 선생님들에게 보여 주는 순간들이 두근거렸죠. 학교 일이 밀리다 보면 원고를 못 쓸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땐 부끄러운 마음이 들잖아요. 도망가려고 할 때마다 너무 잘할 필요 없다고 괜찮다고 해 주셨던 동료의 말이 위로가 되어 줬어요. 사실 연차가 오래되면 모든 면에서 잘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부담감이 생기거든요. 그러던 와중에 그냥 하자, 잘할 필요 없다며 어깨를 다독이는 선생님들의 응원에 힘이 났고, 동료들이 디딤돌을 놔 주는 대로 따라 걷다 보니까 책이 완성되었어요.

『사서교사의 하루』를 내신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책을 출판하셨던 경험자들이에요. ‘우리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자.’라는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출판을 결심했어요. 박미진 선생님께서 책을 써 보자고 처음 제안하셨고, 대구에서 돈독하게 모여 연구했던 선생님들과 신규 선생님들이 합류해 본격적으로 책을 썼어요. 출판 막바지에 부족한 원고를 더 메꾸기도 했고, 추천사를 받아 오거나 머리말을 쓰고 가제본을 제출하는 일들을 일사천리에 분담해서 진행했어요. 저는 원고는 많이 못 썼지만, 전체 원고의 오탈자를 확인하는 등 편집을 맡았어요. 막상 책이 나오고 나니까 선생님들 곁에서 또 하나를 이뤘구나,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남는 건 ‘사람’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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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교사의 하루』를 가장 선물하고 싶은 한 사람을 꼽는다면요?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한 제자에게 선물하고 싶어요. 하교하고 학원에 따로 가지 않았던 아이인데, 제가 일하는 동안에 옆에서 공부도 하고 수다도 떨고 간식도 나눠 먹는 등 매일 같이 있던 아이였거든요. 도서부장이었는데, 꿈이 사서였어요. 고등학교 가면서 연락이 끊겼는데, 시간이 흘러 어느 날 연락이 와서 문정과에 진학했다면서 선생님 생각이 났다고 하더라고요. 자신이 이 길을 가려고 선생님 생각을 많이 했나 보다 하고 말했는데, 감동이었어요. 당시 개인적으로 힘들던 시기였어요.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가 있고, 지금은 좀 더뎌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도서관에서 내가 무엇을 남겼는지 깊이 고민하던 무렵이었어요. 그 아이와 통화하고 돌이켜보니 사람을 남겼구나, 싶더라고요. 제자에게 씨앗을 심어 줬고, 필요한 순간에 발화가 됐고, 자기 미래로 연결이 됐구나 싶어서 즐거웠어요. 둘다 각자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을 무렵 연락이 닿았는데, 근처에서 밥도 먹으면서 마음을 나눴어요. 선생님이 앞으로도 이 직업을 유지하고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는 걸 알게 해 줘서 고맙다고 전한 게 기억이 나네요. 그 친구에게 『사서교사의 하루』를 전해 주고 싶습니다.


선생님께서 쓰신 에피소드 「도서부라는 기적」이 인상적이었어요. 매사에 부정적이던 학생이 도서부 활동을 하면서 진취적으로 변화한 과정에 ‘숨은 오른손’들이 있었을 텐데요.

생뚱맞은 얘기가 될 수도 있는데요. 학교 내 권력의 크기가 교사가 가진 공간의 크기와 같다는 말이 있어요. 제가 꾸리는 넓은 도서관이 공간의 핵심이구나 싶을 때가 있거든요. (웃음) 저는 학생들이 교실에서 마음이 힘들고 복잡할 때, 도서관에서 쉬고 에너지를 충전하길 바라요. 도서관이 아이들한테 주는 힘이 있거든요. 책에 언급한 그 아이와 처음엔 힘들었고 제가 구박도 많이 했어요. 그래도 지속적으로 곁에서 지켜봐 주는 데 집중했던 것 같아요. 학생과의 관계는 잠깐 보고 끝나는 관계가 아니기에, 한마디 말을 전하더라도 아이가 힘을 얻기를 바랐어요. 옆에서 챙겨 주는 도서부원도 그 아이에게 큰 힘이 됐을 테고요. 작년에 『열다섯에 곰이라니』(추정경)를 주제도서로 아이들과 토론을 한 적 있어요. 사춘기가 되면 곰이나 고라니로 바뀌는 등 다양한 신체 변화를 겪는 인물들이 나오는 청소년소설이에요. 얘들한테 사춘기가 도대체 뭔지, 언제 끝나냐고 물어 봤어요.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오면 사춘기가 끝난 거라고 얘기하더라고요. 즉 자기 안에 갇혀 있다가 비로소 타인의 입장을 헤아려보는 마음이 드는 시기라는 말일 텐데, 아이들이 제가 생각하지도 못한 지점에 도달하는 걸 보고 기뻤어요. 그때 그 아이도 있었어요. 한 달에 한두 번씩 만나 방과후에 소규모로 독서토론을 해 왔는데, 책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스쳐갈 법한 생각이 그렇게 아이들 마음이 무언가로 남지 않았을까 싶어요. 주위를 힘들게 했던 그 아이가 한 가지 상황으로 긍정적으로 변화하진 않았을 거예요. 도서관이라는 공간, 저와 도서부, 책을 읽고 나누던 순간들이 묘하게 겹치며 아이를 건강하게 끌어 주었던 듯싶어요. 학교도 싫고, 몸도 아프고, 아무것도 안 하고 싶었던 아이조차 능동적으로 이끄는 기적이 일어나는 공간이 저는 도서관이라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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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중반부, 자신을 한 음절로 표현하는 아이스 브레이킹 시간을 언급한 대목이 있어요. 나 자신 그리고 계속 지켜 가고 싶은 학교도서관을 한 음절씩 표현해 본다면요?

빤할 수 있지만 저를 표현하는 단어는 ‘정’인 것 같아요. 사실 제 별명 중 하나가 ‘안다정’인데요. 이름만 다정하고 성격은 다정하지 않을 때 주변에서 놀리는 별명이에요. 그럼에도 저는 늘 베풀며 살고자 해요. 누군가에게 베푼 마음이 돌아오지 않을 수 있지만, 끊임없이 주는 마음을 지키고 싶어요. 제가 되고 싶은 사람이기도 하고요. 함께 책을 쓴 선생님들도 제가 정이 많다고 느끼지 않으실까요? 자신 있게 전화해서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웃음) 또 하나, 저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고’예요. 사서 고생하는 사서교사이자 ‘못 먹어도 고!’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가지 말라는 길을 가고 하지 말라는 일을 하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은 바람이 있어요. 그렇게 제가 이끄는 학교도서관이 언제나 ‘통’하는 장소이길 바라요. 정보도 몸도 마음도 잘 통해서 모든 것이 윤활하게 모이는 공간이 되면 좋지 않을까요? 곧잘 통하는 학교도서관에서 학생들이 책으로도 잘 통해서 자기를 챙길 수 있고, 타인도 챙기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요. 내가 지켜야 할 사람도 있지만, 나를 지켜주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배우고 헤아리길 바라요. 나와 네가 언제나 이어져 있으니 힘들 때면 언제든지 지켜주는 사서선생님으로 남아 든든히 학생들 곁이 되어 주는 학교도서관을 만들고자 합니다. 제 자신에게 내심 건네고 싶은 말이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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