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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저자 [팬심과 펜심]『우렁이 각시는 당신이 아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심조원 작가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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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3-04-06 10:02 조회 59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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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옛이야기를 사랑하는 출판 편집자 


생태 그림책, 식물 세밀화 도감 등 자연을 소재로 한 어린이책을 20여 년간 집필하시고, 편집하셨어요. 일을 정리하고 나오며 그간의 편집 노동이 주마등처럼 지나가셨을 것 같아요. 

이십 대 중반에 출판 편집자로 취직해서 평생 출판계에서 일했어요. 어린이책 편집은 무엇보다 직업으로서의 일이었고, 넉넉하진 않지만 생계를 책임져 주는 경제활동이었어요. 을지로에 있었던 인쇄 골목에서 잠깐 일을 했을 때부터 책 만드는 게 좋아서 20년 넘게 재밌게 일해 왔던 것 같아요. ‘워커홀릭’이란 말을 많이 들었어요.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열심히 일했다기보단 어린이책을 편집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는 게 정말 재밌어서 푹 빠졌던 것 같아요. 젊은 시절을 모두 투자해 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고요. 어린이책은 작가와 편집자의 영역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꽤 많아요. 1990년대부터 창작을 해 왔기에 자연스레 어린이책 집필도 꾸준히 했어요. 저는 작가의 원고를 받아서 적합한 그림작가를 섭외하는 방식보다는 기획을 끝내 놓고 작가를 찾는 형태를 더 선호했어요. 그렇다 보니 기획 단계에서 이미 글의 얼개가 상당히 완성된 경우가 많았죠. 다양한 어린이책 중에서 생태 분야에 특별히 관심이 많았는데요. 어렸을 때 농촌에서 자랐던 경험이 평생 저와 동행하며 영향을 줬기 때문인 것 같아요. 생태, 동식물, 농촌 관련 책에 특별히 더 관심을 가지다 보니 그쪽으로 작업을 많이 하게 되었고, 어느새 생태 어린이책 전문가라는 별명이 생겼어요. 학술적인 접근 방식과 더불어 옛이야기와 설화 속에서 자연 현상에 대한 재밌는 해석을 찾는 방식으로 생태 그림책도 쓰고, 도감 작업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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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일을 하며 “나의 짧은 언어 능력이 한문에 대한 무지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사서삼경』을 완독하셨다고요. 고전과 한문의 매력을 알려 주신다면요?

제가 글을 읽을 때 집중을 못 하고, 산만한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무언가 찾을 게 있어서 백과사전을 보는데, 자꾸 딴 길로 빠져서 애초에 찾으려고 했던 정보가 무엇인지 잊어버리는 거예요. 뜻글자인 한문으로 이루어진 고전은 단 한 글자로 빠뜨리지 않고 자세히 읽어야 내용을 이해할 수 있어요. 뛰어난 석학들이 수백 년에 걸쳐 정리한 문서잖아요? 한 자도 허투루 들어간 게 없어요. 집중해서 보다 보면 숨겨진 그림이 보이는 ‘매직 아(편집자 주: Magic Eye, 2차원 이미지에 깊이감을 주어 마치 3차원 입체물처럼 보이게 하는 기법을 적용한 착시 이미지)처럼 한문 고전도 한 글자씩 차례대로 읽다 보면 글쓴이의 메시지가 조금씩 보여요. 한문은 표음문자처럼 품사가 정해져 있지도 않고, 쭉 나열되어 있을 뿐이어서 처음에는 낯설어요. 하지만 한 글자씩 집중해서 뜻을 생각하다 보면 어느 순간 전체적인 그림이 떠오르는 순간이 있어요. 세밀화 도감을 작업할 때 있었던 일화가 떠오르네요. 동식물의 실제 모습을 보고 세밀화를 그려야 할 텐데, 누구나 대상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서 있는 그대로 그리기가 어려울 때가 많았어요. 보이는 그대로 옮겨 그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좋은 그림은 화가가 대상에게 완전히 이입할 때 비로소 그려지는 경우가 많아요. 한문도 온전히 집중하여 대상에게 이입되었을 때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문장이 있더라고요. 조금 이상한 이야기지요? 한문은 한국어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문자이기도 해요. 예를 들어 ‘문장’을 이루는 ‘文(글월 문)’이 왜 ‘明(밝을 명)’과 붙어서 ‘문명’이라는 단어가 되었을까요? 일상어를 이루는 한자들의 조합이 왜 그렇게 되었을지 사유해 보세요. ‘明’은 ‘日(해 일)’과 ‘月(달 월)’로 이루어졌는데, 저는 옛이야기 「해와 달이 된 오누이」가 ‘문명’이란 글자와 연관이 있다고 해석해요. 그 해석으로부터 ‘문명’이란 글자의 이미지, 포괄하는 의미의 범위, 느낌 들을 찾아보는 과정이 무척 재밌어요.


또래 여성들이 모여 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팥죽 할머니' 모임 활동이 『우렁이 각시는 당신이 아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의 토대가 되었다고요.
팥죽 할머니 모임은 옛이야기를 좋아하는 어린이도서연구회 소속 선생님들이 모여서 수다를 떠는 모임이에요. 20년 이상 꾸준히 만난 장수 모임이고요. 제가 중간에 끼워 달라고 졸라서 들어갔죠. (웃음) 함께 옛이야기를 읽고, 토론하면서 공부하다가 ‘이야기만 하고 끝나는 게 아쉽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글을 한 편씩 써 오는 숙제를 만들었어요. 그렇게 써 온 글이 모여서 책의 토대가 되었어요. 이야기만 하는 것보다는 글을 쓰는 게 내용을 정리할 때 확실히 도움이 돼요. 옛이야기는 읽는 사람에 따라, 보는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져요. 책에 담긴 제 해석은 다양한 해석의 갈래 중 하나이고, 정답은 아니에요. ‘팥죽 할머니’ 모임에서도 각자의 다양한 해석과 옛이야기를 즐기는 방식을 공유하면서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팥죽 할머니」를 대상 텍스트로 선택했다면 지게, 호랑이 같은 다양한 단어를 검색하면서 자료를 찾아요. 「지게가 져다 버린 범」도 팥죽 할머니 이야기이고, 「해와 달이 된 오누이」도 팥죽 할머니 이야기라고 하는 경우도 있어요. 저는 ‘한국구비문학대계(https://gubi.aks.ac.kr/web/)’ 사이트와 임석재 선생님께서 집필하신 『한국구전설화』 전집을 즐겨 참고해요. 좋은 자료를 찾으면 모임원들과 즉시 공유해요. 이렇게 공부하고 이야기 나눌 소재를 정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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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들의 숨겨진 욕망과 생각을 더듬는 일


한국구비문학대계 사이트를 참고하여 구수한 말맛과 정겨운 사투리가 살아 있는 구술 기록을 일일이 발췌하셨어요. 44년 동안 채록된 수만 편의 이야기 바다를 톺아보는 일, 어렵진 않으셨나요?

온 바다를 전부 돌아다니려고 한다면 정말 힘들 거예요. 종이책과 달리 인터넷은 검색 기능을 제공하잖아요? 자료를 찾을 때 아무래도 좀더 효율적일 수밖에 없어요. 『한국구비문학대계』 전집을 마련하는 게 오랫동안 소원이었는데 가격이 너무 비싸서 구매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인터넷으로 서비스된다고 했을 때 반가웠어요. 옛이야기 채록본을 꾸준히 검색을 통해 찾다 보면 다양한 요령이 생겨요. 채록본을 보면 중간에 이야기가 끊기는 경우도 많고, 갑자기 다른 이야기로 바뀌는 경우도 많아요. 똑같은 옛이야기라도 말하는 사람에 따라, 지역에 따라 이야기가 모두 다르고요.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면서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변화하는 과정이 눈에 보이는 거예요. 일본의 잡화점 ‘돈키호테’처럼 어수선하고 재밌는 이야기들의 묶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자료를 찾아봐요. 똑같은 이야기라도 말하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지만,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핵심 화소(話素)를 찾는 일도 중요해요. 예를 들어 「연이와 버들 도령」을 보면 계모가 연이에게 산나물을 뜯어 오라고 엄동설한에 내쫓을 때 입덧 중이었다는 표현이 나와요. 저는 입덧이라는 화소가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어떤 이야기에는 입덧 화소가 빠져 있고, 어린이책으로 각색할 때도 삭제하더라고요. 정해진 원본은 없지만 여러 이야기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화소 중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스스로 판별하는 능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한국구비문학대계에서 한동안 자료 업데이트가 뜸했는데, 최근에 다시 활발하게 자료가 올라오고 있어요. 다만 임석재 선생님의 『한국구전설화』 전집에는 평안도 이야기가 두 권이 나와 있는데, 사이트에는 남한의 이야기만 있다는 게 아쉽긴 해요. 앞으로 더욱 다양한 이야기를 접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누추하고 하찮은 것들”이 호랑이를 무찌르는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 “가부장제의 방임과 학대를 딛고” 살아남은 여성의 이야기인 「콩쥐 팥쥐」 등 익숙한 이야기의 이면을 바라보는 시선이 날카롭고 신선했어요.

옛이야기를 좋아하는 분들과 만나다 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어요. 이야기에게 잡아먹혀 본 적이 있다는 점이요. 저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도 그렇고 「콩쥐 팥쥐」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저는 콩쥐가 불편했는데요. 콩쥐는 누군가 해코지를 해도 참아야 하고, 착하게만 살아야 하잖아요? 그러면서 모든 시련을 딛고 이겨 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난 콩쥐처럼 못 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어요. 착한 어린이 콤플렉스 생각도 나면서 인물에게 감정을 이입하는 거예요. 그리고 「여우 누이 이야기」(편집자 주: 여우가 딸로 태어나 가족을 해치지만 오빠가 나타나 여우 누이를 물리쳤다는 옛이야기)를 채록본으로 듣다 보면 이야기의 끝에 “그러니까 딸은 왜 낳아서 고생이야~ 아들만 있으면 되는데.”라고 토를 다는 할머니가 여럿 있어요. 할머니들이 어렸을 때 남아를 선호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라셨겠지요. 옛이야기가 현재의 저를 옭아매고 조이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에요. 본받을 만한 전형적인 상(狀)을 만들어 놓고, 독자들을 그곳에 가두는 거예요. 이야기가 독자들을 억압하고 가두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게 신기하지 않나요? 나의 사상과 생각과 감정을 규정하는 데 있어서 옛이야기는 외면할 수 없는 지대한 영향을 끼쳐요. 저는 옛이야기를 읽을 때 내가 어디에 갇혀 있었는지 의심하면서 봐요. 「콩쥐 팥쥐」의 콩쥐 아버지는 상처(喪妻)하고, 팥쥐와 계모를 들이는데 그 뒤로는 이야기에 등장하지 않아요. 아내를 떠나보낸 애 딸린 남자와 결혼한 팥쥐 엄마는 사회적 약자가 아니었을까요? 옛날에는 여성이 홀로 자식을 키우면서 산다는 게 불가능했으니까요. 그렇다면 혹시 팥쥐 엄마는 콩쥐에게 자신의 처지를 오버랩해서 보았던 게 아니었을까요? 팥쥐 엄마는 콩쥐가 꼴 보기 싫었을 테지요. 그렇게 방임, 학대가 대물림되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었겠죠. 아버지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다른 여성에게 양육이 떠넘겨지는 콩쥐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전형적인 딸들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어요. 가부장제 사회의 기본값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고, 콩쥐의 성장기로 이야기의 관점을 바꿔 볼 수도 있겠지요.


가부장제의 억압 아래 자유롭지 못했던 당대 여성들은 안방과 우물가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을 것 같아요. 그들에게 이야기의 효용은 무엇이었을까요?

요즘 아이들이 인터넷에서 팬픽(fan fiction)이나 웹소설을 보는 것과 당시 여성들이 옛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비슷한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인터넷 공간에서 글로 쓰는 모습과도 비슷하고요. 당시에는 구술이었다는 점만 다를 뿐이죠. 옛이야기는 밝은 대낮에 하기보단 어스름한 저녁에 나눠야 제맛이에요. 「도깨비방망이」에서도 눈이 먼 동생 도깨비가 서까래에 숨어 있다가 보물 이야기를 들어요. ‘어둠 속에서 들리는 이야기’가 옛이야기이고, 다른 감각보다 청각이 두드러질 때 이야기가 실감 나지요. 

이런저런 얘기를 실컷 하는 중에 나름대로 기승전결이 있고,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독특한 관점이 살아 있는 옛이야기가 나와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붙잡히지 않고, ‘너는 이래야 해.’라는 이야기 속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야 해요. 옛이야기를 흔히 ‘잔혹 동화’라고 말하지만 사실 우리가 사는 현실이 훨씬 더 잔혹하잖아요? 잔뜩 날이 서 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한다면 너무 날카로울 거예요. 반면 옛이야기는 풍부한 은유와 상징을 통해서 부드럽게 세상을 이야기해 줘요. 아이들이 날 선 세상에 나가기 전에 옛이야기를 많이 접하는 건 백신을 맞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간접경험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좀더 깊고 넓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요. 예를 들어 우리 옛이야기에는 호랑이가 숱하게 등장하는데요. 무섭고 난폭한 호랑이도 있지만 ‘아범’, ‘시아버지’ 등 호칭에 들어가는 호랑이도 있고, 「토끼와 호랑이」에 나오는 귀엽고 순진한 호랑이도 있어요. 아이들은 옛이야기를 통해 하나의 대상에는 다양한 모습이 있고, 다채롭게 바라볼 수 있다는 걸 배울 수 있겠지요. 문자를 몰랐던 옛날 어른들이 타인을 받아들이고, 함께 어울려 잘 살 수 있었던 까닭도 옛이야기를 통해 인간과 세상을 배웠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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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들의 욕망과 당대의 폭력적인 사회상을 감추고, “주류 사회의 교훈”으로만 옛이야기를 독해하는 것을 경계하셨어요. 오늘날의 어린이들과 함께 어떻게 고전을 읽으면 좋을까요?

옛이야기를 교과서적으로 읽는 것만은 피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읽으면 좋아하는 아이들이 한 명도 없을 것 같아요. 잔혹하거나 긴 서사를 가지고 있는 옛이야기는 축약해서 들려주는 게 좋을 것 같고요. 옛이야기는 들려주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한 편의 공연이에요. 듣는 사람의 반응을 수시로 지켜보면서 추임새도 넣고, 이야기를 생략하기도 하고, 즉석에서 다른 이야기로 잇기도 하면서 벌이는 공연이요.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틀어 주거나,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읽어 주기만 한다면 옛이야기의 진정한 묘미를 맛보기 어려워요. 「팥이 영감과 토끼」(한국구비문학대계, 1982년 경북 봉화 정익원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아이들을 삶아 먹는 팥이 영감은 얼핏 보면 잔인하지만 한국구비문학대계에서 녹음본을 들어 보면 현장의 분위기는 자못 유쾌해요. 할머니들이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더니 재밌어하더라.”라고 말하기도 하고요. 이야기가 잔인해서 어른들은 걱정할지 몰라도 아이들은 이야기가 허구라는 점을 분명하게 알아요. 오히려 어른보다 상징과 은유를 이해하는 능력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어요. 이야기의 잔인한 화소를 자꾸 삭제하다 보면, 차 떼고 포 떼면서 이야기가 맹맹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말하는 사람이 이야기 속에 먼저 풍덩 빠져야겠고, 윤리의 잣대를 들이대기보단 이야기의 상징과 은유를 존중하며 재미나게 들려주었으면 좋겠어요.




고전을 살아 있는 이야기로 다시 읽자 


다양한 옛이야기 중에서 작가님의 삶과 연관이 깊어서 마음을 잡아끌었던 작품이 있다면요? 

그런 이야기는 정말 많아요. (웃음) 그중에서 골라 보자면 최근에는 「숯 굽는 총각과 결혼한 처녀」가 마음에 와닿았어요. 저는 결혼적령기인 딸에게 숯 굽는 총각 같은 남자를 만나야 한다고 자주 이야기해요. 지위가 매우 높은 묘령의 여인이 비천한 신분의 남자를 찾아와서 함께 살자고 하는데, 그 총각은 여인을 방에서 재우고 본인은 밖에서 잠을 자요. 상남자 이미지와는 완전히 반대의 모습이잖아요? 그러고선 숯을 만들러 가면서 험한 일이니 따라오지 말라고 하는데, 여인은 따라가죠. 그런데 여인이 가마를 자세히 보니 검댕 때문에 까맣게 보이지만 큰 황금 덩어리임을 눈치채고 총각에게 파 보자고 이야기해요. 총각 입장에서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로 취급할 수도 있었을 텐데, 여인의 말을 믿고 황금을 캐지요. 가마가 없으면 숯을 만들 수 없을 테니 생계 수단을 자신의 손으로 허는 일이지만 아내를 믿고 행해요. 이야기를 읽으면서 스팩 좋은 남자를 찾기보다는 숯 굽는 총각처럼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남자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처럼 「숯 굽는 총각과 결혼한 처녀」, 「우렁이 각시」 같은 다양한 옛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순간들이 있어요.


옛이야기, 고전 작품을 깊고 넓게 읽는 독서 수업을 기획하는 사서선생님들께 전하고 싶은 꿀팁이 있다면요?

언젠가 옛이야기 낭독공연을 가 본 적이 있어요. 드라마 촬영 전에 하는 단체 리딩처럼 최소한의 설비만 놓고 진행하는 공연이었어요. 옛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의 목소리에 집중할 수 있게끔 해 놓은 세팅이었는데요. 학교에서도 낭독을 잘 활용하면 재밌게 수업을 꾸릴 수 있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호랑이, 할머니, 토끼 등등의 옛이야기 캐릭터들을 한 명씩 맡아서 돌아가며 대사를 낭독하게 한다면 인물의 감정에 더더욱 몰입할 수 있을 거예요. 인물의 감정과 성격을 적절히 파악해야 제대로 낭독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야기 속으로 완전히 들어갔다가 나오는 경험을 할 수 있겠지요. 공연을 꾸리는 게 부담스럽다면 간단한 낭독극도 좋겠고요. 저는 「도깨비방망이」를 읽으면서 칠흑 속에서 들리는 도깨비들의 목소리는 어떤 소리일지 궁금하더라고요. 낭독을 한다면 그런 다양한 소리들을 표현하고 묘사하기 위해 이야기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겠죠. 국어책 읽듯 이야기를 읽으면 딱딱하고 재미가 없겠지만 마치 그림책 『프레드릭』에 나오는 프레드릭처럼 “내가 이야기해 줄게.” 하면서 이야기를 실감 나게 들려준다면 정말 재밌을 거예요.


「이야기 주머니」에는 이야기를 글로 적어 주머니에 담아 놨는데, 이야기가 사(邪)가 되어 죽을 뻔한 총각이 나와요. 이야기는 서로 나눠야 풍성해지고 복이 되는데요. 작가님께서 꿈꾸는 이야기 세상은 어떤 곳일까요?  

「훨훨 간다」라는 옛이야기가 있어요. 할머니가 심심해서 할아버지에게 이야기 좀 사 오라고 떡과 술을 빚어서 쥐어 줘요. 할아버지가 길을 가다가 만난 농부에게 음식을 주곤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해요. 농부가 기어가는 황새를 보고, “엉금엉금 기어간다.” 말하자, 할아버지가 “얼쑤!”, 황새가 우렁이를 부리로 찍자, 농부가 “콕 찍는다.” 하고, 황새가 날아가자 농부가 “훨훨 간다.” 해요. 할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와서 할머니에게 농부의 이야기를 그대로 들려주는데, 마침 그때 도둑이 든 거예요. 이야기와 도둑의 행동이 교묘하게 일치해서 도둑을 쫓아내게 되지요. 저는 이게 이야기를 나누는 세상의 모범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듣는다.’라는 격언처럼 서로 친밀하고 내밀한 관계에서 이야기를 재밌게 살려서 하는 모습이 제가 바라는 이야기 세상이에요. 마치 재즈처럼 적절한 추임새를 넣어 주고, 상대방이 실수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살려서 이어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재밌겠어요? 현장의 분위기와 청자의 태도에 따라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고 하더라도 매번 크게 달라져요. 탁구를 치면서 상대방과 공을 주거니 받거니 하기 위해 노력하듯 이야기하는 상대방에게 호응해 주고, 존중하면서 이야기를 들을 때 대화가 훨씬 더 풍성해져요. 재밌는 얘기를 중간에 끊으려고 하는 선생님에게 아이들이 “선생님, 더 이야기해 주세요!”라고 말하면서 한껏 분위기를 고조시킨다면 말하는 사람도 덩달아 신이 나지 않을까요? ‘이야기꽃을 피운다.’라는 말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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