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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교실풍경]거절과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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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10-06 17:57 조회 5,75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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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까닭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날 무렵, 현경이가 상담을 하러왔다. 여고 1학년인 현경이는 중간고사 성적이 중학교에 비하여 많이 떨어진 것에 충격을 받아 엄마와 함께 상담실에 왔었다. 자퇴마저도 생각하고 있는 현경이와 3주에 걸친 상담을 하고 난 후 기말고사이후에 모든 것을 의논하기로 하고 1차 상담을 종결지은 상태였다.
“선생님. 저 축구를 하기로 결심했어요.”
“그래? 선생님이 조금 당황스러운 걸. 조금만 더 선생님에게 설명해줄 수 있겠니?”

“예. 이번 기말고사는 중간고사에 비해서 성적이 좋게 나올 것 같아요. 하지만 중학교 때 전교 10등 정도 했던 성적과는 너무 거리가 멀어요. 사실 저는 중학교 때부터 운동을 무척 좋아했거든요. 특히 축구를 잘했어요. 남자애들하고 축구를 해도 별로 밀리지가 않았어요. 여자 국가대표 선수들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마음껏 뛰어다니며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어요. 그래서 다음 주 토요일에 축구 선수로 소질이 있는지 테스트를 받으러 가기로 했어요.”
“음. 그랬구나. 현경이가 축구에 소질이 있었구나. 그래서 축구를 선택했구나.”

나는 현경이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지난번 상담을 할 때는 화가 나 있어서 불편한 표정이긴 해도 자신감이 넘쳐 보이던 현경이가 이번에는 자꾸 나의 눈길을 피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저 묵묵히 현경이를 바라보았다. 현경이가 자신의 속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 마음에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한참을 망설이던 현경이는 한숨과 함께 이야기를 꺼냈다.
“근데요. 선생님, 불안해요. 테스트를 받고 축구에 소질이 없다고 할까봐 겁이 나요. 그렇게 되면 정말 견디기 힘들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 왔구나. 축구에 소질이 없다는 말을 들을까봐 불안해서 선생님을 만나러 왔구나. 현경이가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위로하고 싶어서 왔구나. 그랬구나.”
현경이가 입술을 깨물고 깍지를 끼고 고개를 숙였다. 또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시험 공부도 하고, 축구 연습도 하고, 고민도 하고, 그렇게 여러 가지를 하다보니까 현경이의 몸이 힘들었나보다. 살이 많이 빠졌네.”
“그게 아니구요.”

거절당할까봐
지난 6월에 현경이는 소개팅으로 한 남학생을 만났다. 고민이 많아서 힘든 상황이지만 평소 쾌활한 성격과 통통한 외모 덕분에 현경이는 남자 친구들에게 인기가 있는 여학생이었다. 그리고 그날 만난 친구는 현경이가 보기에 꽤 괜찮은 남학생이었다. 그런데 한 번 만난 뒤 남학생은 연락이 없었다. 적극적인 성격의 현경이가 몇 번의 문자를 보냈고, 돌아온 대답은 ‘넌 너무 살이 쪄서 내 스타일이 아니야’라는 매몰찬 대답이었다. 충격을 받은 현경이는 그날부터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달에 7kg을 감량했다. 그러나 살이 빠진 대신 현경이는 주위의 눈치를 많이 보게 되었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흉보는 것 같고, 치마를 입으면 자신의 다리를 보면서 비웃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더 운동을 열심히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축구 선수로서의 길도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는 현경이 앞에 두 장의 단어 카드를 꺼내 놓았다. 한 장에는 ‘거절’이라고 적혀 있었고 다른 한 장에는 ‘선택’이라고 적혀 있는 카드였다.

“현경아. 그 남학생이 너에게 보인 카드는 이 두 개 중 어느 것일까?”
현경이는 아무 말없이 카드를 바라보기만 하였다. 나는 다시 질문하였다.
“방금 네가 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남학생은 현경이가 자기 스타일이 아니라고 했잖아. 그렇다면 그 남학생은 현경이를 ‘거절’한 것일까? 아니면 ‘선택’하지 않은 것일까?”
“제가 잘못이 없다고 말씀하시려는 선생님 마음은 고맙습니다. 근데요, 저는 자꾸 그 남자애가 저를 거절한 것이라 생각이 들어요.”

“그래. 그게 현경이 생각이라면 현경이에게는 정답일 수도 있겠다. 그럼 축구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볼까? 너의 축구 실력을 심사하는 분들이 너를 축구에 소질이 없다고 말씀하시면 그건 너를 ‘거절’한 것일까? 아니면 ‘선택’한 것일까?”
현경이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거절이요.”
“그렇구나. 현경이를 제일 힘들게 하는 것은 남으로부터 거절당하는 것이었구나.”
현경이는 내가 녹차 한 잔을 다 마실 때까지 눈물을 흘렸다.

선택하는 삶
나는 현경이에게 지나간 시간 중에서 거절감을 크게 느꼈을 때가 언제인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현경이가 여섯 살 때 부모님은 이혼의 위기가 있었다고 했다. 그때 자기는 엄마랑 지내고 싶다고 말했는데 거절당하고 아빠랑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여섯 달을 아빠랑 보내면서 엄마가 보고 싶어 많이 울었다고 했다. 아빠가 잘해주시고, 이혼을 하지 않고 다시 한집에서 잘 지내고 있지만 그때 엄마에게 가고 싶다고 말했다가 아빠에게 혼났을 때 기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현경이는 그때 자기 때문에 엄마 아빠가 헤어지는 것이고, 그 벌로 엄마와 지내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그랬구나. 그래서 현경이는 그렇게 열심히 공부도 하고, 운동도 했구나. 엄마 아빠에게 잘못하지 않으려고 그랬구나. 그리고 어떤 일을 할 때마다 거절당하는 것을 못견뎌하고 있었구나. 어렸을 때 기억이 지금도 모든 것에서 완벽하게 인정받아야 편안해지는 현경이를 만들었구나. 어쩌냐. 우리 현경이 힘들어서 어쩌냐.”
나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이 올라와서 한참을 현경이를 바라보았다. 현경이는 뭔가 복잡한 생각이 머리를 지나가는 듯,찡그리는 표정을 지으면서 젖어 있는 나의 눈을 바라보았다.

“현경아. 선생님은 말이야. 세상이 너를 ‘거절’해도 너는 세상을 ‘선택’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너의 ‘선택’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예를 들어 남학생이 너를 거절한 것처럼 느껴도 너는 그 남학생의 ‘선택’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 굳이 네가 노력해서 그 남학생과 가까이하려고 버둥대지 않았으면 좋겠어. 왜 다른 사람 때문에 네가 음식을 먹으면서 눈치를 보고, 옷 하나 마음대로 입지 못해야 할까?

사실 다른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너를 비난한 일도 없는데 말이야. 또 그 남학생도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좋은 여자 친구를 사귈 수 있을 것이라고 넉넉하게 생각해줄 수 있지 않을까? 현경이가 괜찮다고 판단한 남학생이라면 멋진 인생을 살 자격이 충분하다고 나는 생각해. 축구 심사도 마찬가지야. 지금 너는 모든 것에서 완벽해야 한다는 ‘완벽주의’에 얽매여서 축구 심사결과에 무조건 통과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렇지 않으면 세상이 다 끝난 것처럼 판단하고 있어. 축구심사위원들이 너를 ‘거절’한 것이 아니라 축구 선수로서 적합하지 않다고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떨까? 현경아. 세상이 너를 ‘거절’한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 너는 다시는 그 일을 시작조차 할 수 없을 수도 있단다.

이성을 사귀는 일도 힘들어지고, 어떤 시험을 보는 일조차 못하게 될 수도 있단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그들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면 너는 많은 일들을 다시 시도해볼 수 있게 된단다. 이런저런 일들을 시도해보다가 어느 날 너와 잘 어울리는 정말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단다. 멋진 남자, 멋진 직업, 멋진 현경이와 만날 수 있게 되는 거야. 현경아. 너는 ‘최고’의 존재가 될 필요 없어. ‘유일’한 존재가 되었으면 선생님은 좋겠다. ‘김현경’다운 ‘김현경’이었으면 좋겠어. 열심히해서 최고가 되어서 누군가에게 거절을 당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꿈꾸는 것을 행복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네가 선택한 세상과 어울리며 살아가줬으면 좋겠어. 그러다보면 너를 선택한 세상이나 선택하지 않은 세상이나 모두 존중해주는 넉넉한 사람이 될 수 있거든.”

참 좋은 선물
현경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질문을 했다.

“선생님. 한 가지만 더 여쭤볼게요. 아까 선생님께서 ‘완벽주의’란 말씀을 하실 때 제 가슴이 찌릿했어요. 왜 그럴까요?”
나는 현경이의 마음이 이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만큼 편안해진 것을 보고 나도 함께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현경이에게 ‘완벽주의’에 대해 말했다. 공부를 해도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아서 축구로 방향을 바꾼 것도 완벽주의에서 빚어진 행동으로 볼 수 있고, 축구 심사에서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을까봐 걱정했던 것도 완벽주의에서 나온 것이라 말했다. 그리고 그 완벽주의 아래에는 ‘거절’에 대한 불안감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단순히 공부와 축구만이 아니라 앞으로 살아가면서 만날 수많은 일들에서 현경이의 완벽주의가 튀어나와 자신을 괴롭힐지 모른다고 말했다. 곰곰 생각에 잠긴 현경이가 꽤 긴 시간이 지난 후에 말했다.

“우선 부모님하고 대화를 해서 과거에 힘들었던 기억을 이겨내야겠어요. 그동안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이 마음 아프실까봐 못했어요. 지금 선생님 말씀 듣고 보니 그 이야기를 꺼내면 제가 불편해질까봐 못한 것 같아요.”
나는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그래. 맞다. 선생님 도움이 필요하면 요청해도 괜찮아. 현경이 부모님이랑 현경이랑 함께 대화할 용의가 있으니까 말이야.”
“선생님. 그것도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거죠?”
“물론!‘

나는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한 달 후 조금은 어두운 표정으로 그러나 차분한 표정으로 다시 나를 만나러 온 현경이는 축구 테스트에 불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부모님, 그리고 축구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스포츠 마케팅’이라는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현경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책을 선물했다. 나는 그 책에 ‘참 좋은 선물’이라고 적어서 현경이에게 주었다. 그 책의 이름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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