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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교사 책읽기와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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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14 22:05 조회 5,38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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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읽어야 한다
대학에서 강의 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책읽기는 어려서부터 몸에 익히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누
가 하라고 해서가 아니라, 어릴 적 주변 환경이 책을 읽도록 이끌어주어 자연스럽게 책을 가까이
하게 되는 경우이지요. 대부분 대학에서는 1학년 교양필수로 ‘사고와 표현’이라는 과목을 강의
한답니다. 논증적 글쓰기와 토론을 주로 배우지요. 이 수업을 하다 보면 눈에 띄는 학생들이 있는
데, 대체로 책을 즐겨 읽고, 글쓰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책읽기를 싫어하는 풍토에서 어떻게 책을 읽게 되었나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캐물어 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학원에 다녔거나 특
별한 교육 때문에 책을 읽게 된 것이 아니더군요. 오히려 지나치게 일찍 학원을 다녀 억지로 책
읽고 글 쓰는 훈련을 한 학생들은 나이가 들면서 책을 멀리하게 되었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책 좋아하는 친구들은 대체로 부모님께서 책을 가까이 하시는 분들이었습니다. 전업주부인 어
머니는 아무래도 짬이 나니, 책 읽으실 시간이 더 있겠지요. 그런데 직장일로 바쁜 아버지가 집
에서 책을 읽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회사일로 정신없이 일상을 보냈으니 피곤할 만하지요.
거기다 회식으로 술이라도 드시고 오시면 책 읽을 짬을 내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그래도 주
변에 보면 어떡하든 시간을 내어 책 읽는 아버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부모님을 둔 학생들이
저절로 책 읽는 청소년으로 성장하는 일이 많더군요,

다음으로는, 학교에서 책읽기의 가치를 강조해주고 여러모로 지도해주신 선생님을 만나
는 행운 덕에 책을 읽었더군요. 학교에서는 아무래도 학과 진도 나가야 하고, 학력이나 입시 중
심으로 수업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수업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선생님들이 계신지라 그나
마 책을 읽었던 거지요. 이런 친구들을 보노라면 수업태도도 진지하고, 가르치는 사람의 지도
에 따라 열심히 하면서도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참으
로 훌륭한 학생들이지요. 당연히 이런 학생들은 ‘사고와 표현’ 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둡니
다. 이 과목 점수가 좋다는 것은 앞으로 다른 과목에서도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합
니다. 대학 수업에는 토론식 수업도 여럿 있고, 리포트나 시험은 글을 써야 하는지라 그러합니
다. 책을 열심히 읽어온 친구들이 대학에서 동료보다 더 뛰어난 성과를 거두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참으로 흐뭇한 일입니다.

물론 책 읽는 것이 이처럼 살아가면서 어떤 이익을 얻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책을 읽으면
두루 도움이 되고 여러모로 쓸모가 있지만, 꼭 그래서 책 읽자고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책을 읽어야 하는 걸까요? 옛사람들이 책 읽어야 사람 된다고 하던 말을 기
억하는지요? 나는 오랫동안 어른들이 해온 이 말씀에 책읽기의 고갱이가 담겨 있다고 봅니다.
사람이 되어야 한다니? 그럼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인가, 라고 의아해 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참사람, 그러니까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을 뜻합니다.

무한한 세계와의 접 속 , 책읽기
책을 열심히 읽다 보면, 놀라운 경험을 할 적이 왕왕 있습니다. 사고방식이 동과 서로 나뉘어 있
고 살았던 시대가 옛날과 지금으로 구분되더라도 진리를 말하고 있다는 책은 마침내 똑같은 말
을 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치열하게 우리네 삶의 문제를 고민하다가 이른 결론이
같다는 점에서 놀랍기도 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살아야 마땅하다는 깨달음을 안겨주기도 합니
다. 그분들이 뜻을 같이한 것이라면 그대로 따라서 살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기 때문
이지요. 공부한 사람들은 결국에는 다 이런 말을 하더라, 에 해당하는 것을 일러 황금률이라 합
니다. 특별히 서로 다른 종교들을 비교해본 결과, 공통점이라 여겨지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
다. 그게 뭐냐고요? 한마디로 ‘네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하라’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이 말을 달리 표현하면,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한 이해와 배려라 할 수 있지요. 현인들은 세
상의 진리가 결국 우리가 서로를 배려하지 않으면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깨
닫는 데 있다고 본 것입니다. 허탈하다고요? 궁극의 진리라는 말이 주는 무게감 때문에 거창한
말이 있을까 기대해서 그런가요? 어느 면에서 참된 것은 단순합니다. 그런 점에서 종교나 철학
이 추구하는 바가 과학의 그것과 놀랍도록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과학도 우주와 생명의 원리
를 지배하는, 세상에서 가장 간단한 공식을 찾아내려고 하잖아요. 어찌하였던 유교의 인仁, 기
독교의 사랑, 불교의 자비慈悲라는 낱말로 대표되는 궁극의 진리는 사실 같은 뜻이지요.

누구나 다 동의하는 내용이라 해도 실천하기가 쉬운 것은 아닙니다. 얼마나 어려웠으면 현
인들이 꼭 그렇게 살자고 힘주어 말했겠습니까. 너무 에돌았나요. 나는 책읽기의 가치가 바로
이 황금률이 왜 중요하며 어떤 가치가 있으며, 어떻게 해야 실천할 수 있느냐를 고민하고 깨닫
게 하는 데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책을 읽지 않는다면, 이런 말씀이 있는지조차 모
를 터이고, 이것이 왜 중요한지 모르고 살아갈 가능성이 크겠지요.

잘 알다시피, 우리의 경험은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대체로 살아가는 공간이 제한되어 있
게 마련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어떤 사람은 태어난 곳에서 한 번도 벗어나지 않고 죽을 때까
지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깊이 생각하고 명상하더라도 참된 진리에 이를 수 있다는 보
장은 없습니다. 아무래도 한 사람이 이룰 수 있는 성취의 가능성은 제한될 수밖에 없지요. 그러
나 책은 읽으려고 노력만 하면 우리를 거의 무한한 세계와 ‘접속’할 수 있도록 이끌어줍니다.
비록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공부해 깨달은 결과물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지
요. 정말, 책을 읽는다는 것은 지식의 은행을 하나 가지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겁니다.

상상력이란 다른 이의 고통을 이해하는 능력
그런데 여기서 제일 중요한 지식이 무엇일까요. 공자가 무슨 말을 하고, 소크라테스가 이렇게
살았다는 것일까요? 그것 자체를 알고자 하는 것이 잘못될 리는 없습니다. 그런 것을 모르고서
는 다른 것을 알 수 없는 때도 잦습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이 분들이 한입으로 하신 말
씀, 즉 나와 다른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하라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우
리가 책을 읽는 진정한 이유라고 나는 보는 겁니다.

『야생초 편지』의 황대권 선생이 쓴 책 가운데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라는 책이 있습
니다. 이 책은 황 선생이 양심범으로 오랜 옥중 생활을 하고 있을 때, 그이를 후원해주었던 유럽
의 시민을 만나러 간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70년대 유럽 사람들은 우리
나라를 잘 몰랐을 겁니다, 전쟁을 겪고 분단 상황이며 몹시 가난한 나라 정도로 알고 있었겠지
요. 그런데 그 작은 나라의 감옥에 갇힌 황대권이라는 사람을 그들은 어떻게 알았을까요. 물론
엠네스티라는 국제기구의 역할이 컸습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권력을 고발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운동을 펼치는 곳이지요. 엠네스티가 양심범으로 선정하면, 세계
의 많은 시민들이 그를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서지요. 그 나라 대사관 앞에 가서 데모하기는 기본
이고, 유력한 정치인에게 항의 편지를 보내거나 후원금을 보내는 일까지 합니다.

정말 놀라운 일 아닌가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에게, 얼굴 한번 보지도 못한 사람에
게 돈을 보내주고, 그의 석방을 위해 데모까지 한다는 사실이요. 더욱이 유럽은 경제적으로 풍
요로울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변
에 양심범으로 고난을 겪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연히 일반시민들이 정치적
인 이유로 감옥에 가는 경험을 할 일은 없지요. 겪어보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낯모르는 동양의 한 남성을 위해 유럽의 시민들이 나섰던 것일까요.

그게 바로 상상력의 힘입니다. 상상력이라는 게 뭐던가요. 겪어보지 않고도 미루어 생각하
는 힘을 가리키지요. 내가 정치 문제로 억눌려 본 적은 없지만, 그런 문제로 고난을 겪는 사람이
얼마나 억울하고 고통스러울까 이해할 수 있는 능력, 부당하고 올바르지 못한 일을 저지르는
세력에게는 항의해야 한다는 의식, 생각만 하지 않고 깜냥대로 할 수 있는 일을 해서 상황을 고
쳐나가려는 의지. 이것이 바로 진정한 상상력이지요.

황대권 선생의 책을 보면, 그를 도와준 유럽 시민 가운데 평범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명해서, 돈이 많아서, 젠체하려고 그를 도와준 것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재미있
는 것은 엠네스티가 선정한 양심범 가운데 감옥에서 나온 이가 별로 없다는 점입니다. 우리나
라는 민주화가 빠른 속도로 이루어져 황대권 같은 분들이 풀려났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여전
히 양심수가 감옥에 갇혀 있거나 여전히 잡혀 들어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라는 말이 있잖아요. 해도 안 될 일을 우직하게 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일컫는 말입니다. 유럽 사
람들은 해도 안 되는 일인지 알면서도 왜 했을까요? 바보라서 그랬던 건 아니지요. 그게 옳은 일
이니까, 세상에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모른 척하고 살 수는 없어서 그랬던 거겠죠.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상상력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만 알지 않고 남도 배려하는 가장 기본적인 정신은 ‘차마 ~ 하지 못해서’
라는 마음이 드는 때입니다. 이것저것 재보고 무엇이 더 이익인가만을 생각한다면 문제를 풀
어나가기 쉽습니다. 그러나 불현듯 그 일로 누군가 겪을 고통을 떠올리고, 이를 모른 척할 수 없
을 때 우리의 행동은 달라지게 마련이지요. 동네 가게보다 피자나 치킨을 싸게 파는 것은 그 유
통업체에는 이익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적은 돈으로 피자가게나 치킨가게를 운영하는 주인
들은 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할 수 없지요. 이미 너무나 많은 것을 팔고, 이익을
많이 내면서 자꾸 동네 가게에서 팔 것까지 욕심내는 것은 결코 적절하다고 말할 수 없지요.

책을 읽으면 상상력을 키울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가보지 않은 해저를 탐사하고 우주여행을
할 수 있는 것도 상상력 덕입니다. 이런 상상력이 잘못되었다거나 필요 없다는 말은 절대 아닙
니다. 단,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상상력의 의미에 더 강조할 것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
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어린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부자는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이
는 더 가난해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직장을 구하지 못해 고통스러운 세
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남의 일이라 여기면 해결할 수 없습니다.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데다 좋은
직장을 다니더라도 그러지 못한 사람들이 겪을 아픔을 공감할 때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현인들이 우리에게 말해준 황금률을 우리 삶 속에서 실천하는 방법, 그것은 책읽기로 상상
력을 키우는 것이라는 말을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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