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엄마가 필요해 ① 만남, 소통, 그리고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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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6-10 17:05 조회 6,089회 댓글 0건본문
학교에서 사서교사만큼이나 일인 다역을 소화해내야 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 도서관을 운영하는 도서관장, 학부모 명예사서를 이끌어가는 수장, 자투리 시간이 생기면 휴식을 빙자한 사랑방 역할까지….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나면 제대로 일을 잘하고 있는 건지 돌아볼 여유조차 없을 때도 있다. 누군가 도서관 일은 해도 표 안 나고, 안 하면 표시 나는 집안일하고 똑같다고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의 경우 학부모 명예사서의 활동 정도에 따라 도서관 운영의 빛깔이 달라질 수 있기에 학부모 명예사서 운영을 힘들어하는 선생님들께 조금의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연재를 시작한다.
만남, 그 시작
모임에 가보면 젊은 선생님들일수록 학부모 명예사서와의 교감이 힘들다고 토로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학부형이라는 부담감과 연령대로도 이모나 고모, 심지어는 엄마뻘 되는 분들도 계실 테니 정서적인 공감이 어려워 서로가 부담일 수밖에 없다. 흔히들 ‘뜨거운 감자’라고 불리는 명예사서,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늦게 교직에 들어온 탓에 이제 7년차에 접어들지만 돌이켜보면 학교 생활이 가장 빛난 것은 명예사서와의 활동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어차피 함께 공존해가야 한다면 의무감보다는 끈끈한 의리로 달려가는 것이 어떨까?
3월 한 달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서 한 해가 좌우된다고 할 정도로 3월은 계획해야 할 일들이 많다. 학부모님들 역시 학부모회, 녹색어머니회, 학부모 명예사서, 급식 모니터링 등 참여해야 할 단체 및 활동으로 가정통신문이 넘쳐나는 달이다. 다른 단체들은 신청 인원이 미달되면 반별로 인원을 할당해서 충원하는 경우도 있지만 명예사서만큼은 강제성을 띠어서는 안 된다. 만약 신청자가 예상보다 너무 적더라도 그대로 진행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명예사서는 어쩔 수 없는 의무감에 1년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학교의 독서교육을 함께 이끌어가야 할 활동으로 우리 아이가 졸업할 때까지, 둘째가 있으면 둘째 졸업할 때까지 지속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본인의 의지 없이 머릿수 채우기로 들어오신 분들은 대부분 1년 안에 손을 들고 만다.
지금 학교에 처음 왔을 때 나름 자신감을 가지고 모집 안내장을 발송했는데 일주일이 지나도 신청자가 다섯 명에 불과했다. 전에 근무하던 학교에서 활발한 명예사서 활동으로 표창도 받았었기 때문에 막막하기도 하고 왠지 자존심에 상처가 생긴 것 같았지만 소수정예로 열심히 시작해보자 마음을 먹었다. 다행히도 몇 분이 더 신청을 하셔서 열두 명으로 출발했다. 올해 5년째에 접어드는데 처음 황무지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쭉 함께하는 학부모님이 열 명이 넘는다. 실제로 활동해보면 얼마나 열의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지 인원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소통, 책과 함께
올해 활동할 인원이 정해졌으면 첫 번째 공식적인 만남을 준비하게 된다. 가장 긴장되기도 하면서 책임감도 느끼게 되는 시간으로, 나를 믿고 1년을 함께할 분들에게 첫 번째 만남에서 신뢰감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대분분의 발대식 순서가 1.개회사 2.국민의례 3.학교장 격려사 4.명예사서 연수 및 활동계획 5.회장단 선출 6.질의・응답 순으로 진행된다고 보면 발대식이라는 것이 어감 자체가 딱딱해서 부담감을 줄 수 있으므로 공식적인 순서 외에는 좀 느슨해져도 좋다. 식전에는 도서관 관련 동영상을 틀어 분위기를 너무 무겁지 않게 하고 다과는 꼭 준비하도록 한다. ‘차’라는 의미가 단순히 마시는 데 있지 않고 어색한 관계일수록 한층 더 친밀하게 만들어주는 존재이므로 처음에는 다양하게 준비해 놓는 것이 좋다. 연수는 가장 기본이 되는 책 분류와 서가 배치 및 도서 정리, DLS 사용 방법 등이 끝나면 마지막에 꼭 그림책을 읽어주고 있다.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책으로만 생각했던 어머니들이 누군가 읽어주는 그림책을 듣고 있는 모습은 초롱초롱한 아이의 눈빛을 보는 듯하다.
어머니들께 읽어줄 그림책으로는 『돼지책』과 『너 왜 울어?』를 추천하고 싶다. 『돼지책』(웅진주니어)은 주부라면 누구나 공감할 내용이다.
엄마를 가족들의 뒤치닥거리나 하는 사람으로 여기는 너무나 무관심한 가족에게 마침내 폭발해버린 엄마의 가출. 남아 있는 가족들은 엄마의 존재가 얼마나 고마운지 느끼게 되고,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엄마만의 홀로서기를 하게 된다. 이 내용은 모두 내 얘기인 것 같은 생각에 더 공감하게 만드는 위력이 있다. 거기에 중간 중간 앤서니 브라운 특유의 숨어 있는 그림 찾는 재미는 더 빠져들게 만든다. 『너 왜 울어?』(북하우스)는 ‘자녀교육 그림책’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만큼 엄마로서 반성하게 만드는 책이다. 엄마의 기분에 따라 무심코 내뱉는 말이 우리 아이들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되짚어볼 수 있어서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발대식에서 그림책을 읽어주는 의도는 두 가지다. 하나는, 그림책을 통해 낯선 긴장감을 느슨하게 만들고 모두 비슷하다는 동질감을 주고 싶었다. 같은 학교 학부모라는 공통점은 미묘하게 서로를 관찰하게 만드는데 이제 함께라는 마음을 가지도록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동질감’을 갖게 만드는 데는 교사의 능력이 필요하다. 능력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이 아니라 나를 낮추고 주종의 관계가 아닌 ‘함께’라는 동지 의식이다. 또 하나는, 아침독서시간 책 읽어주기의 맛보기 의미이다. 아침독서시간 책 읽어주기에 관한 계획을 얘기하면 굉장한 부담감을 갖는다. 책 선정에서부터 50개의 눈동자가 쳐다보는 부담스러움, 동화구연처럼 멋들어지게 해야 되는 것은 아닌지 등. 책 읽어주기가 절대 힘든 것이 아니구나, 집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읽어 주듯이 하면 되는구나, 저 정도는 나도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심어주고자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다.
마지막으로 1년 활동계획 발표 때에는 도서관에서의 활동계획뿐 아니라 학교의 독서교육 방향, 가정에서 함께 참여해야 할 것 등을 미리 얘기해서 자녀 지도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한다. 학교마다 상황이 다른데 필자 학교의 경우 부서를 구분하지 않고 모든 명예사서들이 금요일 아침 1~3학년 책 읽어주기, 오후 도서관 봉사, 방학 중 봉사, 월별 독서행사 지원, 가을 독서페스티벌, 월 1회 독서토론 등 거의 매일 학교에 나와야 될 정도로 쉼 없이 돌아간다. 부서를 나누어 활동했을 때보다 몸은 더 바쁘지만 완벽한 조합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탄탄하게 다져지고 있다.
문턱 없는 도서관 만들기
모든 학부모에게 학교는 발걸음하기 어려운 존재다. 거기에 도서관의 문턱까지 높으면 도서관은 아이들에게나 학부모님들에게 그저 책만 모아 놓은 공간에 그칠 수 있다. 3월 안에 명예사서 어머니들 자녀의 얼굴과 학년 반, 그 아이의 특성을 빨리 잘 기억해 두는 것이 좋다. 학부모님이 방문했을 때 윤활유가 될 수 있는 대화가 바로 자녀 얘기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아이의 독서 성향이나 칭찬거리 등을 꺼내면 학부모는 내 아이에 대한 관심에 아주 기뻐하신다. 아이가 너무 책을 안 읽어 엄마가 명예사서라도 하면 좀 읽을까 싶어 신청했다는 분들도 계신데, 그럴 때는 더욱더 관심을 가지고 부모님이 읽어주면 좋은 책이나 아이가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책을 골라줘 한 번이라도 더 도서관에 올 수 있도록 배려한다.
교사가 무게만 잡고 뭔가 알아서 도와주기만을 바란다면 어떤 학부모가 따라주겠는가! 때로는 허술한 모습도 보여야 되고, 하기 싫은 수다도 떨어야 되고, 맛있는 간식이 있으면 함께 나눠 먹고, 고개 숙이고 아쉬운 소리도 할 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기본적인 경계선은 확실히 해야 되겠지만.
우리 학교 도서관에서 1년에 쓰는 커피와 종이컵만 해도 엄청나다. 종이컵 천개들이 세 박스, 커피도 열 박스 이상은 소비하는 것 같다. 아침 녹색어머니회 활동이 끝나면 8시 40분 정도 된다. 자연스럽게 차 한잔 마시자고 세수도 제대로 안한 얼굴로 오신다. 아무리 바빠도 미안하지 않도록 같이 티타임 하고, 오전에 리딩맘 활동이 있는 날은 절대로 그냥 못 가시게 한다. 꼭 얼굴도장 찍고 가시게 하고, 독서회 모임이 있거나 각종 연수 때에도 그냥 지나치면 안 될 것 같아서 오시고, 오후에는 도서실 봉사, 아이들 하교시키러 들리시고, 이제는 오시는 시간에 안 오시면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이 될 정도지만…. 이렇게 문턱을 없애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왔다고 볼 수 있다.
공존, 함께 걸어가는 길
올해 졸업하는 학생 중에 저학년 때는 반에서 왕따당하고, 말도 없고, 적응도 잘못해서 매일 울며 학교에 보냈던 어머니가 명예사서 하시면서 독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며 매일 도서관에 오셔서 방과 후에는 아이랑 함께 책도 고르고, 읽어주고 같이 얘기하는 모습을 지켜봐왔다. 독서라는 것이 단기간에 달라짐을 느낄 수는 없지만 1년, 2년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가 적극적이고 당당하게 변하면서 고학년이 된 지금은 학교에서 각종 대회를 휩쓰는 학생이 되었다. 가끔 그 학생과 어머니를 보면 나도 모르게 뭉클해질 때가 있다.
이렇게 책과 함께 아이가 성장하고 어머니 스스로가 성장하는 모습을 느끼신 분들은 책 읽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한발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신다. 3년 전부터 필자의 학교에서는 가을 독서페스티벌에 학부모들이 전교생을 대상으로 연극 공연을 하신다. 처음에는 인형극으로 시작했던 공연이 책 내용을 각색해서 대본, 녹음, 연출은 물론 무대 장식, 의상 준비, 분장까지 모든 것을 직접 준비해서 무대에 오른다. 두 달 가까이 준비해야 되는 힘든 일이지만 기뻐하는 아이들 모습에 두 달의 노고를 잊어버린곤 한다고 하신다.
모든 관계가 잘 지속되려면 어느 한쪽의 일방통행이 되어서는 어렵다. 학부모들의 열정으로 도서관이 풍성한 빛깔을 낸다면 거기에 빛을 더해 드리고 싶었다. 교육청에서 공모한 학교시설을 활용한 평생교육 프로그램 지원을 받아 1학기에는 한지공예, 2학기에는 리본공예 등을 실시하고, 공공도서관과 연계하여 독서교육 연수, 명사초청 특강, 또한 학교도서관 우수 동아리에 선정되어 받은 지원금으로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관계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도 않지만 지속되는 것은 더 어렵다. 내가 먼저 열의를 가지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 마음은 저절로 전달되리라고 본다. 어느 학부모님이 아침 일찍 도서관에 와서 했던 얘기가 생각난다. “선생님, 오늘 너무 기운이 없어요. 선생님의 에너지가 필요해요.” 에너자이저! 도전해보시지 않겠습니까?
만남, 그 시작
모임에 가보면 젊은 선생님들일수록 학부모 명예사서와의 교감이 힘들다고 토로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학부형이라는 부담감과 연령대로도 이모나 고모, 심지어는 엄마뻘 되는 분들도 계실 테니 정서적인 공감이 어려워 서로가 부담일 수밖에 없다. 흔히들 ‘뜨거운 감자’라고 불리는 명예사서,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늦게 교직에 들어온 탓에 이제 7년차에 접어들지만 돌이켜보면 학교 생활이 가장 빛난 것은 명예사서와의 활동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어차피 함께 공존해가야 한다면 의무감보다는 끈끈한 의리로 달려가는 것이 어떨까?
3월 한 달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서 한 해가 좌우된다고 할 정도로 3월은 계획해야 할 일들이 많다. 학부모님들 역시 학부모회, 녹색어머니회, 학부모 명예사서, 급식 모니터링 등 참여해야 할 단체 및 활동으로 가정통신문이 넘쳐나는 달이다. 다른 단체들은 신청 인원이 미달되면 반별로 인원을 할당해서 충원하는 경우도 있지만 명예사서만큼은 강제성을 띠어서는 안 된다. 만약 신청자가 예상보다 너무 적더라도 그대로 진행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명예사서는 어쩔 수 없는 의무감에 1년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학교의 독서교육을 함께 이끌어가야 할 활동으로 우리 아이가 졸업할 때까지, 둘째가 있으면 둘째 졸업할 때까지 지속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본인의 의지 없이 머릿수 채우기로 들어오신 분들은 대부분 1년 안에 손을 들고 만다.
지금 학교에 처음 왔을 때 나름 자신감을 가지고 모집 안내장을 발송했는데 일주일이 지나도 신청자가 다섯 명에 불과했다. 전에 근무하던 학교에서 활발한 명예사서 활동으로 표창도 받았었기 때문에 막막하기도 하고 왠지 자존심에 상처가 생긴 것 같았지만 소수정예로 열심히 시작해보자 마음을 먹었다. 다행히도 몇 분이 더 신청을 하셔서 열두 명으로 출발했다. 올해 5년째에 접어드는데 처음 황무지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쭉 함께하는 학부모님이 열 명이 넘는다. 실제로 활동해보면 얼마나 열의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지 인원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소통, 책과 함께
올해 활동할 인원이 정해졌으면 첫 번째 공식적인 만남을 준비하게 된다. 가장 긴장되기도 하면서 책임감도 느끼게 되는 시간으로, 나를 믿고 1년을 함께할 분들에게 첫 번째 만남에서 신뢰감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대분분의 발대식 순서가 1.개회사 2.국민의례 3.학교장 격려사 4.명예사서 연수 및 활동계획 5.회장단 선출 6.질의・응답 순으로 진행된다고 보면 발대식이라는 것이 어감 자체가 딱딱해서 부담감을 줄 수 있으므로 공식적인 순서 외에는 좀 느슨해져도 좋다. 식전에는 도서관 관련 동영상을 틀어 분위기를 너무 무겁지 않게 하고 다과는 꼭 준비하도록 한다. ‘차’라는 의미가 단순히 마시는 데 있지 않고 어색한 관계일수록 한층 더 친밀하게 만들어주는 존재이므로 처음에는 다양하게 준비해 놓는 것이 좋다. 연수는 가장 기본이 되는 책 분류와 서가 배치 및 도서 정리, DLS 사용 방법 등이 끝나면 마지막에 꼭 그림책을 읽어주고 있다.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책으로만 생각했던 어머니들이 누군가 읽어주는 그림책을 듣고 있는 모습은 초롱초롱한 아이의 눈빛을 보는 듯하다.
어머니들께 읽어줄 그림책으로는 『돼지책』과 『너 왜 울어?』를 추천하고 싶다. 『돼지책』(웅진주니어)은 주부라면 누구나 공감할 내용이다.
엄마를 가족들의 뒤치닥거리나 하는 사람으로 여기는 너무나 무관심한 가족에게 마침내 폭발해버린 엄마의 가출. 남아 있는 가족들은 엄마의 존재가 얼마나 고마운지 느끼게 되고,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엄마만의 홀로서기를 하게 된다. 이 내용은 모두 내 얘기인 것 같은 생각에 더 공감하게 만드는 위력이 있다. 거기에 중간 중간 앤서니 브라운 특유의 숨어 있는 그림 찾는 재미는 더 빠져들게 만든다. 『너 왜 울어?』(북하우스)는 ‘자녀교육 그림책’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만큼 엄마로서 반성하게 만드는 책이다. 엄마의 기분에 따라 무심코 내뱉는 말이 우리 아이들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되짚어볼 수 있어서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발대식에서 그림책을 읽어주는 의도는 두 가지다. 하나는, 그림책을 통해 낯선 긴장감을 느슨하게 만들고 모두 비슷하다는 동질감을 주고 싶었다. 같은 학교 학부모라는 공통점은 미묘하게 서로를 관찰하게 만드는데 이제 함께라는 마음을 가지도록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동질감’을 갖게 만드는 데는 교사의 능력이 필요하다. 능력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이 아니라 나를 낮추고 주종의 관계가 아닌 ‘함께’라는 동지 의식이다. 또 하나는, 아침독서시간 책 읽어주기의 맛보기 의미이다. 아침독서시간 책 읽어주기에 관한 계획을 얘기하면 굉장한 부담감을 갖는다. 책 선정에서부터 50개의 눈동자가 쳐다보는 부담스러움, 동화구연처럼 멋들어지게 해야 되는 것은 아닌지 등. 책 읽어주기가 절대 힘든 것이 아니구나, 집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읽어 주듯이 하면 되는구나, 저 정도는 나도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심어주고자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다.
마지막으로 1년 활동계획 발표 때에는 도서관에서의 활동계획뿐 아니라 학교의 독서교육 방향, 가정에서 함께 참여해야 할 것 등을 미리 얘기해서 자녀 지도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한다. 학교마다 상황이 다른데 필자 학교의 경우 부서를 구분하지 않고 모든 명예사서들이 금요일 아침 1~3학년 책 읽어주기, 오후 도서관 봉사, 방학 중 봉사, 월별 독서행사 지원, 가을 독서페스티벌, 월 1회 독서토론 등 거의 매일 학교에 나와야 될 정도로 쉼 없이 돌아간다. 부서를 나누어 활동했을 때보다 몸은 더 바쁘지만 완벽한 조합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탄탄하게 다져지고 있다.
문턱 없는 도서관 만들기
모든 학부모에게 학교는 발걸음하기 어려운 존재다. 거기에 도서관의 문턱까지 높으면 도서관은 아이들에게나 학부모님들에게 그저 책만 모아 놓은 공간에 그칠 수 있다. 3월 안에 명예사서 어머니들 자녀의 얼굴과 학년 반, 그 아이의 특성을 빨리 잘 기억해 두는 것이 좋다. 학부모님이 방문했을 때 윤활유가 될 수 있는 대화가 바로 자녀 얘기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아이의 독서 성향이나 칭찬거리 등을 꺼내면 학부모는 내 아이에 대한 관심에 아주 기뻐하신다. 아이가 너무 책을 안 읽어 엄마가 명예사서라도 하면 좀 읽을까 싶어 신청했다는 분들도 계신데, 그럴 때는 더욱더 관심을 가지고 부모님이 읽어주면 좋은 책이나 아이가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책을 골라줘 한 번이라도 더 도서관에 올 수 있도록 배려한다.
교사가 무게만 잡고 뭔가 알아서 도와주기만을 바란다면 어떤 학부모가 따라주겠는가! 때로는 허술한 모습도 보여야 되고, 하기 싫은 수다도 떨어야 되고, 맛있는 간식이 있으면 함께 나눠 먹고, 고개 숙이고 아쉬운 소리도 할 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기본적인 경계선은 확실히 해야 되겠지만.
우리 학교 도서관에서 1년에 쓰는 커피와 종이컵만 해도 엄청나다. 종이컵 천개들이 세 박스, 커피도 열 박스 이상은 소비하는 것 같다. 아침 녹색어머니회 활동이 끝나면 8시 40분 정도 된다. 자연스럽게 차 한잔 마시자고 세수도 제대로 안한 얼굴로 오신다. 아무리 바빠도 미안하지 않도록 같이 티타임 하고, 오전에 리딩맘 활동이 있는 날은 절대로 그냥 못 가시게 한다. 꼭 얼굴도장 찍고 가시게 하고, 독서회 모임이 있거나 각종 연수 때에도 그냥 지나치면 안 될 것 같아서 오시고, 오후에는 도서실 봉사, 아이들 하교시키러 들리시고, 이제는 오시는 시간에 안 오시면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이 될 정도지만…. 이렇게 문턱을 없애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왔다고 볼 수 있다.
공존, 함께 걸어가는 길
올해 졸업하는 학생 중에 저학년 때는 반에서 왕따당하고, 말도 없고, 적응도 잘못해서 매일 울며 학교에 보냈던 어머니가 명예사서 하시면서 독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며 매일 도서관에 오셔서 방과 후에는 아이랑 함께 책도 고르고, 읽어주고 같이 얘기하는 모습을 지켜봐왔다. 독서라는 것이 단기간에 달라짐을 느낄 수는 없지만 1년, 2년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가 적극적이고 당당하게 변하면서 고학년이 된 지금은 학교에서 각종 대회를 휩쓰는 학생이 되었다. 가끔 그 학생과 어머니를 보면 나도 모르게 뭉클해질 때가 있다.
이렇게 책과 함께 아이가 성장하고 어머니 스스로가 성장하는 모습을 느끼신 분들은 책 읽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한발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신다. 3년 전부터 필자의 학교에서는 가을 독서페스티벌에 학부모들이 전교생을 대상으로 연극 공연을 하신다. 처음에는 인형극으로 시작했던 공연이 책 내용을 각색해서 대본, 녹음, 연출은 물론 무대 장식, 의상 준비, 분장까지 모든 것을 직접 준비해서 무대에 오른다. 두 달 가까이 준비해야 되는 힘든 일이지만 기뻐하는 아이들 모습에 두 달의 노고를 잊어버린곤 한다고 하신다.
모든 관계가 잘 지속되려면 어느 한쪽의 일방통행이 되어서는 어렵다. 학부모들의 열정으로 도서관이 풍성한 빛깔을 낸다면 거기에 빛을 더해 드리고 싶었다. 교육청에서 공모한 학교시설을 활용한 평생교육 프로그램 지원을 받아 1학기에는 한지공예, 2학기에는 리본공예 등을 실시하고, 공공도서관과 연계하여 독서교육 연수, 명사초청 특강, 또한 학교도서관 우수 동아리에 선정되어 받은 지원금으로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관계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도 않지만 지속되는 것은 더 어렵다. 내가 먼저 열의를 가지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 마음은 저절로 전달되리라고 본다. 어느 학부모님이 아침 일찍 도서관에 와서 했던 얘기가 생각난다. “선생님, 오늘 너무 기운이 없어요. 선생님의 에너지가 필요해요.” 에너자이저! 도전해보시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