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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은하의 현장에서 만난 질문들] 아이의 수준에 맞는 책은 어떻게 아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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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12-20 03:47 조회 7,36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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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하
독서교육 강사 및 프로그래머, 『영국의 독서교육』 저자


– 요즘 책에는 유아용, 저학년용, 고학년을 위한 시리즈 등을 표지에 적어 놓는데요, 이대로 읽히는 게 맞나요?
– 영어처럼 레벨 테스트를 보는 것도 아니라서, 어떤 수준의 우리말 책이 우리 아이에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 우리 반 아이들의 읽기 수준이 천차만별이네요. 책을 읽어 줄 때나 추천할 때 어떤 책이 적절할지 알고 싶어요.


아이 입에서 나오는 말이 “엄마”, “아빠”, “맘마”인 수준에서, 아이가 이해하고 표현하는 언어의 수준을 판단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이후 아이의 언어가 폭발적으로 늘더라도 읽어 주는 글을 듣고 이해하는 단계라면, 아이가 어떤 책을 이해할 수 있는지 쉽게 감이 옵니다. 스스로 읽지 못하는 아이는 글을 받아들이는 매개, 즉 누군가 읽어 줄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학부모 강의에서 아이가 요즘 어떤 책을 읽는지 5권만 적어보라고 하면, 듣자마자 책 제목을 착착 적어가는 분들은 대부분 학령 전 아동의 부모입니다. 매일 생활에서 부대끼며 글과 아이 사이를 소리 내어 매개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초등 고학년 학부모만 되어도 책 제목을 떠올리느라 천장에 눈동자가 한참 머물고, 중학생 부모쯤 되면, “날더러 어쩌라고” 하는 표정으로 그저 웃습니다.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글을 소리로 매개할 때, 어른들은 아이가 어려움에 노출이 된 즉시 알아차릴 수 있고 즉각적인 피드백을 줄 수 있으며 되물을 수도 있습니다. 모르는 단어나 표현에 대한 질문을 긍정적으로 받아주는 분위기만 된다면, 어린 아이들은 큰 아이들보다는 훨씬 솔직하게 자신이 잘 모르는 단어나 표현을 묻습니다. 그래서 읽어 주기를 많이 하는 부모는 자녀가 알고 있는 어휘를 정확히 알고, 그 어휘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까지 파악하고 있기도 합니다.

아이가 대부분의 책을 스스로 읽게 되면, 어떤 책을 얼마나 소화하느냐는 전적으로 아이의 머릿속 일이 됩니다. 글자를 읽고, 어휘를 이해하고, 새로운 정보를 얻고, 이미 알고 있던 것과 연결 짓고, 모르는 단어를 유추하고, 뒷이야기를 예측하고, 감동을 받고, 저자의 설명과 주장을 비판적으로 읽고, 문체를 감상하는 등의 과정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요. 우리는 단지 빨리 페이지를 휙휙 넘긴다든가, 더디 읽는다든가, 읽다가 만다든가, 오랜 시간 집중하고 있다거나 하는 등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들을 볼 수 있을 뿐입니다.


글의 난도 측정을 통해
아이의 읽기 수준 판단

읽기 능력이 발달해가는 아이들에게 어떤 수준의 글이 적절한지를 판단하려면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합니다. 우선 아이의 읽기 수준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준은 글이 얼마나 어려운가 즉, 글 자체가 가지고 있는 난도겠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글의 난도를 측정하는 척도가 아직 개발 중에 있지만, 양적 평가가 발달된 미국에서는 글의 난도를 평가하는 척도가 다양하게 만들어져 왔습니다. 가장 단순하면서도 오래된 방식은 단어의 길이와 문장의 길이에 따라 글이 얼마나 읽을 만한가를 수치화하는 겁니다. 이를 독이성(讀易性, readability)이라고도 합니다. 대표적인 독이성 측정공식은 플레쉬 킨케이드(Flesch Kincaid) 읽기등급으로, 한 문장에 단어의 수가 얼마나 많으냐, 그리고 한 단어에 음절이 얼마나 많으냐에 따라 점수를 매깁니다.

플레쉬 읽기등급=0.39 ×(총 단어 수/총 문장 수) +
11.8×(총 음절 수/총 단어 수) - 15.59

갑자기 수학공식이 나오니 복잡해보이지요? 하지만 원리는 간단합니다. 문장이 길수록, 단어가 길수록 읽기가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다는 상식을 공식으로 만들어 놓은 겁니다. 여기에서 나온 등급의 숫자는 각 학년을 뜻합니다. 그래서 6이 나오면 6학년 수준의 글, 8이 나오면 우리의 중학교 2학년 수준의 글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 공식을 가장 충실하게 따르는 글은 교과서와 읽기용 교재입니다. 미국의 교과서를 만드는 대형 출판사들은 대부분 독이성 공식에 맞추어 책을 고르고 글을 씁니다. 이 공식은 기계적이어서 때로는 단어와 문장이 짧더라도 친숙하지 않은 단어가 많거나 내용이 어렵거나 문장구조가 복잡한 글도 쉬운 글로 오판할 위험이 있습니다.1)

1)
이외에도 The Dale–Chall formula, The Gunning Fog formula,
Fry Readability Graph, McLaughlin’s SMOG formula, The FORCAST formula 등의 독이성 측정 공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단어와 문장의 길이를 기준으로 난도를 재던 방식에서 좀 더 나아가, 단어가 얼마나 친숙한지 문장구조가 얼마나 복잡한지도 따져 글의 어려움을 나눈 척도가 등장합니다. 대표적으로 렉사일 지수(Lexile measure)를 들 수 있는데, 미국의 독서교육현장에서 아이의 읽기 수준에 맞는 책을 골라줄 때 가장 애용되는 척도입니다. 교육평가 회사인 메타메트릭스사(Metametrics Inc)에서 만든 렉사일 지수는 막 읽기를 시작한 0L부터 대학원 수준의 2000L까지 숫자로 표기됩니다. 글의 경우 렉사일 지수2)가 낮을수록 이해가 쉬우며, 지수가 높을수록 복잡하고 이해가 어렵습니다. 읽기 능력 또한 렉사일 지수가 낮을수록 초기 독자이며 높을수록 유능한 독자로 분류됩니다.

교사나 사서, 부모들은 아이와 책의 렉사일 지수를 맞추어 읽도록 지도합니다. 예를 들어, 읽기 능력이 300L인 아이에게 렉사일 지수가 880L인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조앤 롤링 지음, 김혜원 옮김, 문학수첩)을 권한다면 모르는 단어와 문장이 많아서 이해가 좀 어렵겠지요. 300L인 아이는 300L 전후의 책들을 추천해줍니다. 300L에서, 아래로는 100L정도 낮은 책이나 위로는 50L정도 수준이 높은 책을 권장합니다. 즉 200L~350L정도로, 예를 들어 260L인 『윌리와 휴』(앤서니 브라운 지음, 허은미 옮김, 웅진주니어)나 340L인 『요 사고뭉치들 내가 돌아왔다(Miss Nelson is back)』(해리 알러드 지음, 김성희 옮김, 문학동네) 등이 되겠지요.

300L의 독자는 도움 없이 혼자 읽었을 때 300L로 분류된 책의 75%를 이해할 수 있다고 예측됩니다. 책의 75%를 이해하는 정도의 난도는 지나치게 쉽지도 혼자 읽기에 너무 어렵지도 않은 적절한 도전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렉사일 지수는 교육자들이 시간에 쫓겨 다수의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거나 추천해 줄 때, 교육자가 다양한 수준의 어린이 책을 잘 모를 때, 아이가 현재 읽고 있는 책을 기준으로 비슷하거나 한 단계 더 어려운 책들을 찾아볼 때, 아이가 자신의 읽기 발달과정을 지수로 확인하면서 동기를 얻고자 할 때 도움이 됩니다.


읽기의 난도를 결정하는 변수
학자들에 따르면, 글을 읽기 쉽게 혹은 어렵게 만드는 요소는 어휘와 문장구조뿐 아니라 훨씬 다양하다고 합니다. 글에서 다루는 개념은 대표적인 예가 됩니다. 문장이 짧고 단어도 쉽지만 『논어』의 구절들은 개념이 쉽지 않습니다.

“배우고 늘 익히면 기쁘지 않은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즐겁지 않은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노여워하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닌가?”

위 문장의 뜻을 저학년 아이에게 물었더니, “수업을 열심히 받고 복습을 꾸준히 하면 시험을 잘 보게 되어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고, 멀리 사는 친구가 찾아와 노니 즐겁고, 남이 나를 못 알아봐도 화를 안내면 ‘군자’라는 사람이 된다.”라고 해석합니다. 문장의 표피적인 뜻은 알아도 문장이 의미하는 개념을 독해하지 못한 셈이지요.

또한 경전들은 짧은 문장 속에 여러 개념들을 매우 촘촘하게 배치해놓습니다. 그래서 한 글자를 가지고 그 개념의 해석에 몰두해야 의미 파악이 가능합니다. ‘학(學), 배운다’는 게 무엇인가, ‘습(習), 익힌다’는 게 무엇인가 등 한 문장에 녹아있는 아이디어의 밀도가 매우 높습니다.

그 밖에도 글의 일관된 구조 또한 읽기의 난도를 결정하는 변수로 작용합니다. 잘 짜인 글, 문장의 연결이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글은 읽기를 돕지요. 글의 장르와 쓰인 시대, 예측가능성도 글의 어려움을 결정하는 변수입니다.

‘글자’가 담고 있는 내용뿐 아니라, ‘글자’를 담는 그릇도 읽기의 난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혼자서 그림책을 잘 읽던 아이들이 글만 있는 동화책을 한번 펼쳐보고 겁을 먹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글자는 많아지는데 작아지고 빽빽해집니다. 글자의 모양이 동일하고 글자의 색도 배치도 변화가 별로 없습니다. 총천연색 화보를 보다가 갑자기 모눈종이를 보는 느낌일 겁니다.

또한 글자의 의미를 돕던 그림들도 사라집니다. 의미 파악의 힌트를 얻을 단서가 없어지는 셈이지요. 글자의 모양이나 크기, 배치, 다이어그램, 그래프, 하이라이트, 글과 그림의 배치는 모두 읽기를 쉽게 만들어줍니다. 어른들의 지식정보책에 비해서 아이들의 지식정보책에 유난히 다양한 시각적인 변화가 많은 까닭은 읽기 이해를 높이는 단서를 많이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글의 시각적 특성은 읽기의 난도에 영향을 줍니다.

단어 및 문장의 길이는 기계적으로 계산할 수 있지만, 개념의 복잡성, 밀도, 글의 구조와 일관성, 시각적 기호 등은 컴퓨터로 자동계산 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전문가가 읽고 판단하는 질적인 평가를 거쳐야 합니다. 이와 같이 글이 가지고 있는 어려움을 분류하는 작업은 양적이고도 질적인 요소가 모두 필요합니다.


어린이 책,
출판사의 임의적 분류에 대한 우려한글 어린이 책은 아직 양적으로든 질적으로든 학술적으로 검증된 척도가 없는 실정입니다. 책 앞에 유치원생용, 저학년용, 고학년용이라고 붙인 표식들은 출판사가 임의적으로 붙인 겁니다. 임의적으로 분류를 하는 것 자체는 책의 타깃 독자와 내용, 난도에 대한 정보를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입니다. 이는 책의 선택을 도와줄 수 있는 정보가 되지요. 그러나 문제는 이 표식을 책의 표지에 붙여놓아서 오히려 선택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고학년을 위한~’ 이라는 딱지가 붙는 순간 중학생은 그 책을 잡기 민망해집니다. 특히 제 학년보다 읽기 수준이 낮은 아이들의 읽을거리가 현저하게 줄어들게 됩니다.

선택을 돕는 게 아니라 아예 배제하는 거지요. 임의적 분류는 교사나 사서, 부모를 위한 참고적 자료로만 제공되는 편이 훨씬 선택에 도움이 됩니다. 윗학년의 학습내용을 아는 것을 마치 우등생의 척도로 받아들이는 우리의 그릇된 문화에서, 윗학년용 딱지를 붙인 책을 읽는 것은 유능한 독자의 훈장처럼 보여집니다. 영화의 연령제한은 청소년 관객의 보호 차원에서 영화의 소재와 주제를 적절히 이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연령을 정해줍니다. 책 읽기는 이와 반대로 자기 학년 이하로 매겨진 책을 읽는 것이 퇴보인 양 여겨집니다. 그래서 유치원생들은 어서 빨리 저학년 문고를 읽는 것으로, 저학년은 고학년 동화를 읽는 것으로, 고학년은 중・고생을 위한 책을 읽는 것으로 ‘발달’을 증명하려 합니다. 이런 잣대로라면, 아직 그림책을 설레는 마음으로 들여다보는 중년의 저는 읽기 퇴행을 거듭하는 셈입니다. 출판사가
임의적 분류를 할 때 위에서 쓴 여러 가지 사항들을 고려했을까를 판단해보면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습니다. 특히 지식정보책의 경우 본문과 해설과의 난이도 차이가 언뜻 읽어봐도 매우 심합니다. 그리고 동화의 경우 주제의 심오함과 복잡성을 단순히 문장을 줄이고 쉬운 단어를 채택하는 것으로 난도를 낮춘 경우도 많습니다. 교과서 외의 도서와 자료를 수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지금, 출판사마다 제 각각인 임의적 분류를 넘어서, 글의 난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양적・질적 척도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책 읽기에 부여하는 의미를
이해할 필요성
읽기 수준을 정하는 데 있어서 이제까지는 단어와 문장의 길이, 개념의 복잡성과 밀도, 예측가능성, 구성의 일관성, 장르, 시대, 시각정보의 제공 등 ‘글 자체가 가진 요소’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아이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책을 고를 때 이러한 글의 객관적 특성만이 중요할까요? 책 읽기의 맥락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어른이든 아이든 책을 읽을 때 독자마다의 개별적인 요인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사람들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글을 읽느냐에 따라서 다양한 난도의 책을 읽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미용실에서 파마를 말 때 읽는 글과 대학 강의를 앞두고 읽는 전공서적은 난도에서 매우 큰 차이가 납니다. 여가로서의 읽기와 학습으로서의 읽기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아이들이 책을 고를 때, 아이들에게 책을 추천할 때, 왜 읽으려고 하는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잠을 청하려고 읽는 책, 등을 꼿꼿이하고 정독할 책, 시험 준비를 위한 책, 시끄러운 지하철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읽는 책 등은 각기 다른 정도의 집중력을 요구하기 때문이지요. 또한 독자가 가진 주제에 대한 흥미와 배경지식 유무에 따라서도 책
의 읽기 수준과 몰입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관심을 두고 있고 관련된 배경지식이 많은 주제의 글은 어려워도 읽고 싶은 동기가 높은 반면, 그렇지 않은 글은 쉬워도 읽으려는 동기가 낮습니다. 글 자체의 어려움 보다 독자의 동기가 글의 수준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독자가 글 읽기에 부여하는 의미에 따라서도 읽기 수준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같은 책이라 할지라도 독자가 읽기에 부여하는 의미에 따라 읽기의 깊이와 초점이 달라집니다. 최근 학교에서 독서퀴즈대회를 치른 제 아이의 예를 들어 보지요. 아이는 평소와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책을 읽었습니다. 독서퀴즈대회라는 맥락, 그리고 아이가 이에 부여하는 의미가 책읽기의 양상을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해당 도서는 평소 같으면 고르지 않았을 책들이었지만 열심히 읽었습니다. 아이는 지난 몇 년간 독서퀴즈대회에서 상 받았던 걸 기억하며 자신은 나름 읽기를 잘하는 독자라는 유능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번 대회가 전학생인 자신의 존재감을 같은 반 친구들에게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졌습니다. 상장과 도서상품권이 걸렸다고 해서 모든 아이들이 독서퀴즈대회에 같은 의미를 둔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아이는 충분히 잘 읽을 수 있는 난도의 도서들인데도 성적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예 읽지
않기도 했습니다.

아이는 독서퀴즈대회 준비형 독서를 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사지선다로 문제가 출제되었기에 아이는 책에 나온 사실과 정보를 충실하게 기억하려 애썼습니다. 저에게 예상문제를 뽑아달라며 읽은 내용을 점검하려고 했지요. 눈치 없는 엄마의 “넌 어떻게 생각해?” “꼭 그래야했을까?” 하는 비판적인 질문은 시간낭비이므로 삼가야 했습니다. 아이는 “뭐라고 부를까요?” “어느 나라일까요?” “어떤 일이 벌어졌나요?”에 최대한 집중했습니다. 준비를 열심히 한 아이는 대회를 원하는 대로 잘 치렀고, 사건이 벌어졌을 때 주인공의 나이가 6살인지 8살인지를 물었던 문제를 틀렸다며 아쉬워했습니다. 사실 확인 위주의 독서퀴즈대회에 대한 이야기는 별도의 장에서 논의하고, 우리가 여기서 주의를 기울
일 부분은 이겁니다. 아이들이 책읽기에 부여하는 의미에 따라서 읽는 책의 수준과 초점이 매우 달라진다는 점이지요. 비슷한 국어 성적을 가진 아이 둘이었지만 제 아이의 경우, 이번 독서에 쏟은 의미는 ‘전학생으로의 존재감 증명’이었고, 어떤 아이에게는 ‘에너지 낭비하고 싶지 않은 학교행사’였습니다.

글 자체에 붙박여 있는 난도는 양적·질적 척도로 어느 정도 객관화 할 수 있지만, 이처럼 독자와 상황에 대한 맥락은 매우 주관적이며 가변적입니다. 컴퓨터가 대신해줄 수 없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지요. 양적・질적 척도만 있다면 아이가 읽어낼 수 있는 수준의 책 목록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지금 여기 이 아이의 상황에서 읽을 수 있는, 읽고 싶은 수준의 책들은 알아내기 어렵습니다. 책의 난도와 아이의 읽기 점수를 매치하는 작업은 컴퓨터를 다루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사람이 없어도 됩니다. 그러나 아이의 감정과 상황으로부터 읽기의 맥락을 알아내고 적절한 의미를 부여하게 만들고 그에 맞는 수준의 책을 권해주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이지요. 교사와 사서가 아이들의 읽기 수준에 맞는 책들을 읽어주고 추천할 때, 아이를 모르는 전문가의 판단에게만 전적으로 의존하지 말아야할 이유는 바로 이 아이들이 가진 개별적인 맥락 때문입니다. 이 책이 고학년용이며, 렉사일 800L의 책이며, ○○ 연구모
임의 5학년 추천도서인 것은 참고 할 사항입니다. “지금 이 상황의 이 아이에게 가장 적절한 수준의 책들은 무엇일까?”를 판단하는 실천적 지혜는 교사와 사서교사가 가질 전문성의 한 축입니다. 책에 대한 앎, 아이에 대한 앎, 그리고 이 둘을 의미 있게 만나게 해줄 맥락에 대한 앎이 여전히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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