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과학자가 ‘매력적인 글쓰기’에 빠진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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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05 15:59 조회 7,088회 댓글 0건본문
과학자는 항상 사람들과 소통을 꿈꾼다. 평소 하는 일이 실험실에 틀어박혀 조용히 기계장치들과 씨름을 하거나, 연구실 책상에서 컴퓨터로 숫자만 들여다보고 있는 터라, 그 갈증은 저윽이 더 깊으리라.
리처드 파인만이나 올리버 색스, 리처드 도킨스처럼 ‘숨막힐 정도로 위대한 과학자들’이 글을 쓴다는 것은 ‘대가들만이 엿본 우주의 진리를 인류와 함께 나누고 음미하기 위함’일 것이다. 자연의 경이로움에 탄복하고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만끽하기 위해 독자들은 그들의 책을 펼칠 것이다.
하지만 평범한 (대부분의) 과학자라고 해서 그들만큼 글쓰기 욕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천체물리학자 제너 레빈이 있다. 제너 레빈은 박사학위를 받은 지 얼마 안 된 캠브리지 대학 응용수학과 연구원. 어느 날 “얘야, 우주는 어떻게 생겼더냐? 은하수가 우주인거냐?”고 묻는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2년간 틈틈이 쓴 편지와 일기를 묶어 펴낸 책이 바로『 우주의 점』(한승, 2003)이다. 미처 보내지 못한 편지들로 이루어진 이 책에는 뉴턴 역학에서부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이 어머니께 설명하듯 부드러운 문체로 정리돼 있고, 블랙홀과 초끈 이론을 거쳐 ‘우주의 모습’을 대담하게 추측하는 천체물리학자들의 다양한 이론들이 정갈하게 소개돼 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나도 이 사람처럼 ‘사람 냄새가 나는 과학책을 써 보고 싶다’는 것이다. 연구소를 옮길 때마다 이사를 해야 하고, 침대 한켠엔 늘 세탁해야할 옷가지들이 널려 있고, 영국 사람들이 자신의 미국식 영어발음을 어떻게 생각할지 노심초사하는, ‘생활인으로서의 물리학자’가 이 책 속엔 고스란히 담겨 있다. 현학적인 학회는 싫어하면서도 학회로 향하는 기차여행은 즐기고, 글을 쓰는 일이 따분한 작업이 아니라 복잡한 일상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는 대목은 나의 일기장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과학책이 전하는 것은 물리적 사실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에 대해 이해한 ‘이야기’이며, 정보가 아니라‘경이로움’과 그것을 탐구한 인간들의 ‘도전정신’이라는 사실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
『우주의 점』처럼 문외한인 어머니까지도 읽을 수 있는 쉽고 재미있는 과학책만이 미덕은 아니다. 과학은 원래 뇌를 고되게 만드는 어려운 학문이다. 허나 그래서 더 도전할 만한 가치 있는 학문임에 틀림없다. 초등학교 6학년이던 1984년 무렵, 그때만 해도 학력고사에서 수석을 차지하면, 뉴스에 나와 인터뷰를 하는 것이 각 방송사의 연말 주요행사였다. 그해도 기자가 수석을 차지한 고3 학생 집에 찾아가 ‘도대체 어떻게 1등을 할 수 있었느냐’는 상투적인 질문을 집요하게 물었고, 그들의 때묻은 책상과 빼곡한 책장에서 ‘수석의 향기’를 맡으려는 안달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나는 그해 남녀 수석합격자들의 책장에서 나란히『처음 3분간』(전파과학사, 1981)이란 책이 꽂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의 꿈은 공히 훌륭한 물리학자가 되는 것. 그들을 물리학자라는 목표로 인도한 책이 바로 스티브 와인버그의『 처음 3분간』이라는 책이라고 한목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 길로 나는 서점으로 달려가 까만색 표지에 손바닥만 한 문고판『 처음 3분간』을 손에 들고, 돌아오는 길에서부터 읽기 시작했다. 전자기력과 약력에 관한 표준모형을 제창한 공로로 1979년 노벨상을 수상한 하버드대 물리학과 교수인 와인버그가 우주 탄생의 시나리오를 설명한 책이었다. 그러나 누렇고 두꺼운 종이와 깨알같은 글씨, 게다가 수식까지. 물리학에 관해 기초지식조차 없는 초등학생이 읽기엔 버거운 책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의 과학책 읽기’는 결국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서 나는 과학자로서 조금씩 성장해 가고 있었다.
바라건대, 독자들이 내 책 속에서 거대한 우주 앞에서 겸손한 나를 발견하기를. 그리고 절망과 의심, 확신사이를 오가며 끝없이 학문적으로 방황하는 과학자로서의 나를 만나기를. 설령 내가 우주와 자연과 생명과 의식에 대한 진리를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평생 그것의 언저리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위안 삼아 다시금 학문에 매진하는 ‘젊고 진지한 물리학자’의 삶이었음을 부디 독자들이 동정할 수 있기를. 누군가 내가 쓴 글을 통해 구질한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우주와 자연과 인간의 기원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길. ‘우리는 시궁창 속에 빠져 있다. 하지만 우리 중엔 별을 올려다보고 있는 이도 있다’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리처드 파인만이나 올리버 색스, 리처드 도킨스처럼 ‘숨막힐 정도로 위대한 과학자들’이 글을 쓴다는 것은 ‘대가들만이 엿본 우주의 진리를 인류와 함께 나누고 음미하기 위함’일 것이다. 자연의 경이로움에 탄복하고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만끽하기 위해 독자들은 그들의 책을 펼칠 것이다.
하지만 평범한 (대부분의) 과학자라고 해서 그들만큼 글쓰기 욕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천체물리학자 제너 레빈이 있다. 제너 레빈은 박사학위를 받은 지 얼마 안 된 캠브리지 대학 응용수학과 연구원. 어느 날 “얘야, 우주는 어떻게 생겼더냐? 은하수가 우주인거냐?”고 묻는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2년간 틈틈이 쓴 편지와 일기를 묶어 펴낸 책이 바로『 우주의 점』(한승, 2003)이다. 미처 보내지 못한 편지들로 이루어진 이 책에는 뉴턴 역학에서부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이 어머니께 설명하듯 부드러운 문체로 정리돼 있고, 블랙홀과 초끈 이론을 거쳐 ‘우주의 모습’을 대담하게 추측하는 천체물리학자들의 다양한 이론들이 정갈하게 소개돼 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나도 이 사람처럼 ‘사람 냄새가 나는 과학책을 써 보고 싶다’는 것이다. 연구소를 옮길 때마다 이사를 해야 하고, 침대 한켠엔 늘 세탁해야할 옷가지들이 널려 있고, 영국 사람들이 자신의 미국식 영어발음을 어떻게 생각할지 노심초사하는, ‘생활인으로서의 물리학자’가 이 책 속엔 고스란히 담겨 있다. 현학적인 학회는 싫어하면서도 학회로 향하는 기차여행은 즐기고, 글을 쓰는 일이 따분한 작업이 아니라 복잡한 일상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는 대목은 나의 일기장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과학책이 전하는 것은 물리적 사실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에 대해 이해한 ‘이야기’이며, 정보가 아니라‘경이로움’과 그것을 탐구한 인간들의 ‘도전정신’이라는 사실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
『우주의 점』처럼 문외한인 어머니까지도 읽을 수 있는 쉽고 재미있는 과학책만이 미덕은 아니다. 과학은 원래 뇌를 고되게 만드는 어려운 학문이다. 허나 그래서 더 도전할 만한 가치 있는 학문임에 틀림없다. 초등학교 6학년이던 1984년 무렵, 그때만 해도 학력고사에서 수석을 차지하면, 뉴스에 나와 인터뷰를 하는 것이 각 방송사의 연말 주요행사였다. 그해도 기자가 수석을 차지한 고3 학생 집에 찾아가 ‘도대체 어떻게 1등을 할 수 있었느냐’는 상투적인 질문을 집요하게 물었고, 그들의 때묻은 책상과 빼곡한 책장에서 ‘수석의 향기’를 맡으려는 안달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나는 그해 남녀 수석합격자들의 책장에서 나란히『처음 3분간』(전파과학사, 1981)이란 책이 꽂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의 꿈은 공히 훌륭한 물리학자가 되는 것. 그들을 물리학자라는 목표로 인도한 책이 바로 스티브 와인버그의『 처음 3분간』이라는 책이라고 한목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 길로 나는 서점으로 달려가 까만색 표지에 손바닥만 한 문고판『 처음 3분간』을 손에 들고, 돌아오는 길에서부터 읽기 시작했다. 전자기력과 약력에 관한 표준모형을 제창한 공로로 1979년 노벨상을 수상한 하버드대 물리학과 교수인 와인버그가 우주 탄생의 시나리오를 설명한 책이었다. 그러나 누렇고 두꺼운 종이와 깨알같은 글씨, 게다가 수식까지. 물리학에 관해 기초지식조차 없는 초등학생이 읽기엔 버거운 책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의 과학책 읽기’는 결국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서 나는 과학자로서 조금씩 성장해 가고 있었다.
바라건대, 독자들이 내 책 속에서 거대한 우주 앞에서 겸손한 나를 발견하기를. 그리고 절망과 의심, 확신사이를 오가며 끝없이 학문적으로 방황하는 과학자로서의 나를 만나기를. 설령 내가 우주와 자연과 생명과 의식에 대한 진리를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평생 그것의 언저리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위안 삼아 다시금 학문에 매진하는 ‘젊고 진지한 물리학자’의 삶이었음을 부디 독자들이 동정할 수 있기를. 누군가 내가 쓴 글을 통해 구질한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우주와 자연과 인간의 기원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길. ‘우리는 시궁창 속에 빠져 있다. 하지만 우리 중엔 별을 올려다보고 있는 이도 있다’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