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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4-04-16 02:58 조회 4,93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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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문 대학강사, 국어국문학
 
 

그림책이 제시하는 주제의 폭이 점점 확장되는 추세이다. 바람직하고 반가운 현상이다. 이는 그림책의 연령층이 두터워졌다는 방증이며, 아이들도 자신이 포함된 삶과 세계의 모습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당위와, 또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감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 책은 우화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적확하게 반영하고, 우리가 되찾아야 할 오래된 미래의 모습을 제시한다. 미어캣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노동, 소비, 게으름, 시간, 경쟁, 공동체 등의 키워드로 설명 가능한 우리 사회의 모순이 쉽고 투명하게 보일 것이다.
평화롭고 풍요로운 사막에서 미어캣들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노동을 하며 살아간다. 어느 날 여행에서 돌아온 미어캣(이후 A라 칭함)이 자신의 빨간 스카프를 가장 똑똑하고 사냥을 잘하는 미어캣만 두를 수 있는 것이라 소개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먹이를 많이 가져오는 미어캣에게 스카프를 줄 거라 약속한다. 스카프를 얻기 위한 미어캣들의 노동 강도는 점점 높아지는데, 스카프의 빛깔과 이름은 자꾸 바뀌며 끝없이 노동을 추동한다. 그 사이 삶의 터전은 황폐해지고, 다수는 떠나고 일부는 남는다. 남은 일부는 버려진 스카프를 가지고 놀며 노래하고 춤을 춘다. 다시 적당히 일하고, 충분히 놀고, 졸리면 자는 삶이 시작된다.
사실, 노동과 관련하여 지금 여기에서 더 절박하게 문제가 되는 건 일을 하고 싶어도 노동시장에 진입조차 못하는 다수의 현실, 혹은 하루 종일 일해도 최소한의 생계조차 유지하기에 벅찬 비정규직의 저임금일지도 모른다.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더욱 ‘적당히 일하고 소비를 줄이자. 함께 놀면서, 좀 더 느리게 살자’는 여전히 우리가 고민해야 할 현재진행형의 화두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읽고 또 읽어서 건져 올린 단상 몇 가지를 적어 본다.
세상에는 모험(멀리 여행을 떠났었다는 데에 착안)과 변화·경쟁·지배를 즐기는 A, 그리고 A와 같은 삶을 선망하고 추종하는 존재도 있으며, A와 같은 지배 계급에 비판적 거리를 두고 윤리적 고민과 투쟁을 하는 존재,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일상이 주는 평온함에 만족하는 존재 등 다양한 존재들이 각자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A에게 있는 듯하지만 “와, 어떻게 하면 우리도 스카프를 가질 수 있어?”로 대변되는 다수의 동조와 복종이 없었더라면 A의 횡포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수가 불행해지고, 삶의 터전이 망가져 버린 것은 전적으로 A의 탓만은 아니다. 선과 악을 명확히 구분하여 각자가 져야 할 윤리적 책임감을 A에게만 떠넘기는 태도는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어캣의 ‘스카프’는 끊임없이 대중을 유혹하고, 그들을 차별적으로 구별 지으며, 지구환경을 훼손시키는 상품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인류는 늘 이러한 상품을 욕망하고 생산·소비해 왔다. 당연한 말이지만 스카프가 문제가 되는 건 작품에서 보듯 ‘압도적인 다수’가 오직 스카프를 위해 ‘온 시간’을 투자하여 ‘노동력의 전부’를 쏟아붓고, 한 존재의 의미가 오직 스카프라는 ‘척도’에 의해 평가될 때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부끄럽고, 약간은 가여운 나의 모습이 보인다. 자기 몫의 윤리적 책임은 간과한 채 이 모든 비극과 황폐함을 자본가 혹은 자본주의 탓으로 뭉뚱그려 돌리던 나, 자발적 불편함과 누추함을 견디지 못한 채 지갑을 열며 약간의 환멸을 느끼던 나, 좀 빈둥거리며 놀라치면 왠지 모를 불안과 죄의식에 휩싸이던 나.
졸리면 잠을 자는 삶! 가능할까?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의외로 간단하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고,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어야 한다.’ 밤을 잊은 채 자기 일에 미쳐 있는 사람은 그렇게 살면 되고, 공동체적이고 예술적이되 여유로운 삶을 즐기려는 자는, 쉽지 않은 선택이겠지만 그렇게 살면 된다. 어렵겠지만 치열함과 열정이 맹목이 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노동과 향유가 한량의 무책임이 되지 않도록 균형을 잘 잡아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춤추고, 노래 부르고, 그림 그리고, 별을 바라보다 졸리면 자는 삶’을 주장하는 건 그러한 삶이 가장 나은 삶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삶을 원하지만 포기하거나 포기당한 자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 아닐까? 모든 노동이 치열할 필요는 없지만 치열한 노동 뒤의 휴식이 훨씬 더 달콤한 것도 사실이다.
아무튼 미어캣의 스카프는 각양각색으로 해체되어 마침내 구별짓기의 상징적 기능을 잃고, 결핍감을 유발하기는커녕 오히려 놀이와 소통의 매개체가 된다. 상품이 놀이와 소통의 도구가 된 것이다! 통쾌하고 환상적인 결론이다. 그리고 실현 가능한 결론이다. 행복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충분히 할 것. 삶의 방식을 윤리적으로 고민하고 주체적으로 선택할 것. 나의 소비가 어떤 효과를 유발할지 미루어 짐작하고 책임감을 지닐 것. 만약 이러한 고민과 실천을 미룬다면 우리는 그림책의 미어캣들처럼 불안의 바다에서 허우적대고, 말라비틀어진 나무 사이를 헤매게 될 것이다.
모든 훌륭한 예술작품이 삶의 방식을 고민하게 만들듯 『미어캣의 스카프』 역시 그러했다. 한편 그림책의 서사는 시만큼이나 압축에 대하여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미어캣들이 부른 노래는 주제가 날것으로 드러났다는 점에서 과잉 친절이 아닌가 한다. 앞뒤 표지, 앞뒤 면지까지 의미를 살뜰히 담아낸 것은 진심으로 친절해서 좋았다. 작품의 마지막 장, 광활한 하늘이 보여 주는 색의 향연을 아주 작은 미어캣 몇몇이 황홀한 듯 응시하고 있다. ‘세상이 참 아름다워요. 예전에 정신없이 일만 할 땐 미처 몰랐죠.’ 미어캣은 이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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