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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새책 인문학적 사유의 징후에 그친 미완의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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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12-27 21:53 조회 5,69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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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문 대학강사, 국문학


위인전집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백제의 전쟁 영웅 ‘계백’과 신라의 화랑도를 온몸으로 구현해 보인 ‘관창’의 이야기가 단행본으로 나왔다. 마지막 페이지 ‘작가의 말’에 의하면 ‘『삼국사기』와 그와 관련된 연구 성과를 뿌리 삼아 인문학적으로 재해석해 그린 그림책’이라 하니 인문학적 관점에서 몇 가지를 짚어 보고자 한다. 이 글의 인문학적 관점이란 현실의 지배적 규범과 이데올로기에 의문을 던지고, 더 나은 세상을 욕망하고 현실화하려는 실천적 행위의 지향을 의미한다.

우선 기존의 남성 영웅주의적 관점을 극복했는지를 살펴보자. 식구를 몰살한 후 괴로워하는 계백과, 아버지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관창의 모습은 기존 영웅의 이미지에서 살짝 비껴나 있다. 하지만 인간적이고 나약한 일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바로 그 일면을 극복했기 때문에 더욱 진정한 영웅일 수밖에 없다.

대개 앙각(대상을 올려다보는 인상을 느끼도록 하는 구도)으로 그려진 계백의 형상을 보자. 얼굴에 비해 터무니없이 과장된 커다란 손과 육중한몸, 그가 들고 다니는 더욱 육중한 부월이, 그리고 “그러나 수염만큼은 아름다웠다”라는 문장에서 보듯 아름다운 수염은 ‘과잉된 남성성의 기표’들이다. 또한 계백의 고뇌에도 불구하고 그의 부인과 자식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삭제되어 있다. 침묵당한 목소리 위에 자리하는 건 “우린 대장부,대장부는 오직 전장에서 죽는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누가!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고, 누가! 우릴 위해 곡을 하겠나! 그러나 백제의 대장부라면 응당 전쟁터에서 죽어야 한다!”와 같은 계백의 단호한 진군 명령이다.

‘백제의 대장부’라는 호명 안에서 남성은 여성과 구별되어 우월한 존재로 배치되고, 이질적 개인은 ‘백제의 백성’이라는 단일한 집단 정체성을 담보한 무리로 통합되어 내부의 다양한 차이와 갈등은 무시된다. 가족 몰살에 대한 죄의식, 군사들의 희생에 대한 번민, 그리고 전쟁의 명분과 전쟁 자체에 대한 성찰(누가, 무엇을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가, 전쟁은 누구의 이익에 복무하는가) 등도 ‘대장부’라는 이데올로기적 언표 앞에서는 억압되어야 할 감정에 불과하다. 백제의 대장부는 다수의 개인을 권력에 자발적으로 종속시키는 명백한 권력 담론이다.

이 책에서 가장 공을 들인 듯한 관창은, 죽음을 불사하는 반굴과 같은 화랑과 병치됨으로써 오히려 빛을 발하는 존재이다. 관창은 “아버지… 어찌 사람으로 태어난 저를 짐승으로 죽이려 하십니까, … 제발! 저를… 살려주십시오.”라며 희생양이 되기를 거부한다. 하지만 최후의 죽음 앞에서 이전의 모든 갈등과 감정은 순식간에 무화된다. “아버지… 이젠 무섭지 않습니다. 행여나 하는 마음… 아버지여, 나를 위해 울지 마소.”에서 관창은 이전의 인간에서 다시 ‘충과 효’의 정신으로 똘똘 뭉친 화랑의 영웅으로 호출된다. ‘“관창! 대신라군의 좌장군 김품일 장군의 아들, 화랑 김관창!” 관창은 최후의 순간 이렇게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에선 관창을 역사에 길이 남을 진정한 인간적 영웅으로 재구성하려는 작가의 욕망이 날것으로 드러난다.

다음으로 국가주의·민족주의 극복의 문제를 들 수 있다. 계백과 관창의 인간적 고뇌와 감정이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지 못한 채 허무하게 소멸되어 버리고 마는 것은, 남성 영웅주의와 더불어 작가가 국가주의·민족주의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이자 근대 초기에 발명된 ‘민족’과 ‘국민’이라는 개념은 국난을 극복하고 산업화를 추구하는 데에 훌륭한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국가주의·민족주의는 내부의 다양한 민주적 담론을 억압하고, 동아시아의 평화적 관계 형성을 방해한다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본 어용학자들이 무사도를 특징으로 하는 일본의 남성적 민족성과 한국인의 비겁함, 태만함, 여성스러움을 대조시킬 때, 한국 민족주의자들에겐 우리에게도 남성다운 과거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주된 과제처럼 인식됐다. ◆1 그리고 이 과제는 아직도 수행 중인 미완의 과제로 남겨진 듯하다. 화랑의 다양한 이미지 중 유독 ‘전사로서의 화랑’ 이미지만이 확대·복제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계백이 출전 전 비장한 각오로 전의를 다지는 장면에서 백제의 군기는 두 화면에 걸쳐 커다랗게 전시된다. 이 장면에서 계백은 깃발 아래 조그마한 개인에 불과하다. 관창이 처음 백제의 진영으로 진격하는 장면에서도 관창이 든 신라의 군기는 윗부분이 생략되긴 했지만 두 화면에 걸쳐 커다랗게 펼쳐져 있다. 압도적인 깃발이야말로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해야 할 절대적 존재이며, 이 상징적 존재로 인해 그림책이 시도했던 인문적 사유는 징후에 그치고 말았다. “너희 왕은 고구려에게 구걸하다 기어이 당 왕에게 고개까지 숙였다는데 사실이냐?” “군사들은 아니오!” 이는 백제인과 신라인이 하나의 공동체에 속한다는 인식을 전제하는데, 그들이 같은 민족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싸웠는지 아닌지는 확인할 수 없다. 현재의 민족 개념을 고대사에 투영해 역사를 해석했을 때의 부작용을 생각해 본다면 『삼국사기』 원문에 작가의 주관적 역사의식을 투영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이다.

마지막으로, 삭제되고 왜곡된 『삼국사기』의 한 문구를 소개한다. “너는 비록 어린 나이지만 뜻과 기개가 있다. 지금은 바로 공명을 세워 부귀를 취할 때이니 어찌 용맹을 내지 않겠느냐.” ◆2 관창의 아버지 품일이 관창을 적진으로 내보낼 때 강조한 것은 신라에 대한 충성, ‘임전무퇴’의 정신이 아닌 ‘부귀’와 ‘공명’이었다. 관창의 죽음은 신라의 승리 이외에도 가문에 ‘당나라 비단 30필, 20승포 30필과 곡식 100섬’을 안겨 주었다. 삭제 혹은 왜곡에 대한 정치적이고 윤리적 판단은 독자에게 맡겨둔다.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의 정체성과 현실은 어릴 적 우리가 읽었던 위인전에 많은 부분을 빚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1 박노자, 「화랑은 무사집단이었을까」,
<한겨레21>, 2008.06.27
◆2 “爾雖幼年 有志氣 今日是立功名取富貴之時
其可無勇乎”(三國史記 圈 第47 列傳 第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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