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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새책 [어린이 그림책 깊게 읽기]마법은 이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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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1-06 19:28 조회 7,56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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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
부르노 무나리 글・그림|이상희 옮김|비룡소|60쪽2012.05.30|30,000원|모든 연령|이탈리아|상상

검은 종이에 두 가지 잉크만으로 인쇄한 표지가 과감하다. 흰 종이에 네 가지 잉크를 사용하는 일반적인 인쇄 방식이 아니다. 사실 고양이 눈동자에 쓰인 노란 잉크 두 방울을 빼면 잉크 하나로 인쇄한 것과 다름없다. 푸른색으로 인쇄된 사물은 눈을 비비고 보아야 한다. 검은 종이에 얹어진 푸른 잉크는 빛 한 줄기 없는 어둠 속에서 시간이 꽤 흐른 후에 드러나는 사물의 윤곽과 덩어리가 되었다. 그런 인쇄 방식은 앞 면지를 포함해 19쪽까지 이어진다. 지루할 새는 없다. 그 분량을 끌고 가기에 충분한 작은 구멍 하나가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인쇄 방식에 타공 기법 하나가 추가되자 시선을 더욱 단단히 붙들고, 의미가 더해진다. 어둠 속 이야기들을 지켜보게 된다. 종이, 잉크, 인쇄 방식은 물론, 있어야 할 것과 없어도 될 것들에 대한 오랜 고민에서 나온 놀라운 시각적 실험들이 독자를 압도한다. 문자는 딱 필요한 만큼만 있다.

표지 전면을 채운 nella notte buia는 직역하면 ‘까만 밤에’다. 표지를 열고 한숨 돌리며 첫 장을 넘기면 ‘작은 불빛 하나’란 글자가 노란 빛이 보이도록 뚫어 놓은 작은 구멍 옆에 있다. 뒤이어 ‘멀리’,‘저 멀리’, ‘반짝’까지가 검은 종이로 인쇄한 부분이다. 연결해보자. ‘까만 밤에 작은 불빛 하나 멀리 저 멀리 반짝’. 이것은 한 문장이다. 짧은 시라 해도 좋겠다. 한글 번역 제목이 왜 ‘까만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인지 의아한 지점이다.

‘저 멀리’란 텍스트까지는 글자 크기가 점점 작아지도록 지정해 글자만으로도 거리감이 느껴진다. 따라서 시간도 흘러간다. 반면 그 뒤에 나오는 ‘반짝’은 크기가 ‘작은 불빛 하나’보다 크되 과하진 않다. 작은 불빛을 따라오다 불빛의 존재를 잊을 만한 지점에서 ‘반짝’하고 시선을 집중시키며, 시간도 잠깐 멈춘다. ‘반짝’하고 외친 다음 이어지는 그림 속 야단법석은 슬랩스틱 코미디의 원조 격인 이탈리아 즉흥 코미디를 보는 듯하다. 별에 닿으려는 인간 군상들의 허망한 도전이 한바탕 꿈처럼 지난다. 우리가 따라온 불빛도 아주 작은 한 마리 벌레, 반딧불이로 밝혀진다.

이제부터는 ‘안개’다. 밤은 지났으되 아직 명확한 것은 없다. 아침 이슬에 흠뻑 젖은 풀 숲 안개 사이로 곤충들의 자연스런 일상이 보인다. 파라핀종이로 안개처럼 뿌연 질감을 표현하고, 거기에 앞뒤로 인쇄된 사물은 흐릿하게 중첩되어 안개 사이로 보이는 풍경의 효과를 극대화했다. 안개 끝은 동굴의 시작. 동굴부터는 종이가 바뀐다. 거친 질감의 회색 종이가 비슷한 모양이지만 각기 다른 크기로 뚫어져 있다. 까끌까끌한 질감의 종이, 울퉁불퉁한 형태로 뚫린 책장을 넘기는 동안 공간감과 속도감은 극대화된다. 처음엔 탐색하는 기분으로 조심스럽게 동굴로 들어가 벽에 그려진 그림들을 본다. 해적들의 보물 상자와 갖가지 벽화들을 보며 구멍이 제일 크게 뚫린 책장을 지나면, 다시 파라핀종이가 나오고 강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요란한 강물 소리가 동굴을 내달리며 메아리치고, 동물의 뼈와 물고기 화석, 사냥 도구들을 발견하는 사이 추위를 느낀다. 어느새 동굴 밖으로 나오자 다시 밤. 반딧불이 여러 마리가 반짝반짝 어둠을 밝힌다.

문자언어보다는 시각언어를 통한 소통방식에 유달리 집착했던 브루노 무나리(Bruno Munari 1907~1998)가 그림책을 만든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이 책은 특히 그가 그림책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시각적 실험을 모아 놓은 것이다.

무나리는 1920년대 후반 1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예술운동인 미래파 작가들과 교류하며 순수미술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디자인으로 영역을 넓혔고 이탈리아 디자인사에 한 획을 긋게 된다. 피카소는, 디자인 현장은 물론 저술 및 교육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했던 그를 ‘제2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 찬탄했다. 상상력을 실천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고, 조형적 실험에 아낌없이 시간을 투자했던 무나리의 작품들은 오브제 그 자체로서도 훌륭하지만 생활용품으로서의 실용성도 최고였다. 조형교육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던 그가 어린이들에게 놀이를 통해 경험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 그림책과 완구 등은 아직까지도 유효하다. 1959년 이탈리아에서 출간된 그림책 『nella notte buia』를 오늘 이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까닭이다.

“일생 동안 자기 안에 어린이 같은 동심을 간직한다는 것, 그것은 호기심을 간직하는 것, 안다는 것에 대한 기쁨을 간직하는 것, 그리고 어우러짐(커뮤니케이션)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이다.”–브루노 무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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