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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합니다! 가족을 잃는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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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12 20:35 조회 6,26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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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학년 때까지 갖고 있었던 꿈은, 돈을 많이 벌어서 비행기 타고 미국에 있는 엄마를 만나러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나의 꿈 그리기’를 할 때에도 하늘로 머리를 내어놓은 채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 모습을 그렸다. 미국에 엄마가 있다고 믿은 건 그때까지였다.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부모님 모두 건강하시고, 항상 내 부탁을 들어주는 자상한 남편에, 지혜롭고 귀여운 딸을 두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사람들이 부러워마지 않는 책과 함께 하는 이상적(?)인 직업까지 가졌으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너무나 당연한 것인 양 누리며 살고 있으니, 난 행복한 사람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몹쓸 사람인 것도 같다. 『안녕, 사바나』를 처음 본 것은 작년 겨울 글쓰기 연수를 받던 중이었다. 척 보기에 눈길을 끌지 못했지만 토론 강사의 숙제로 손에 들게 되었고, 읽는 내내 내가 가진 값진 행복들을 되새김질하고 있었다.

주인공 이름은 소남우, 10살에서 11살로 넘어가는 소년이다. 새 학년이 시작될 때마다 선생님과 친구들의 웃음을 자아내는 이름을 가진 남우의 별명은 ‘생각하는 나무’이다. 독특한 이름과 조용한 성격 때문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데 ‘생각하는 나무’라? 파스칼은 일찍이 인간에게 갈대라는 존재를 끌어들인 이유가 그 나약함에 있다고 하였는데, 남우는 갈대가 아니라 나무이니 성격이 곧고 강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우 아빠는 일곱 살 때 돌아가시고, 엄마는 얼굴도 모른다. “너 때문에 산다”를 입에 달고 사시는 할머니와 단짝 친구인 태완, 미주, 동우 같은 친구들이 삶의 전부이다. 무료하고 새로울 것 없던 남우와 친구들에게 어느 날 신나는 구경거리가 생긴다. 동네에 새로 들어서는 동물원이 개장에 앞서 원숭이 카퍼레이드를 준비한 것이다. 기다리는 동안 남우는 가지고 간 사과를 낚아채가는 어린 사바나 원숭이를 처음 보게 된다. 남우는 동물사전을 찾아가며 사바나 원숭이가 사는 곳과 먹이 등을 알아보다 문득 사과를 가져간 그 원숭이도 엄마와 헤어졌을 거라는 생각에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그러던 중 동물원에서 사바나 원숭이가 탈출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이 원숭이는 남우의 집 헛간에 숨어들게 된다. 남우는 원숭이를 사바나라고 부르기로 하고 먹을 것을 갖다 주며 엄마처럼 보살핀다. 엄마와 헤어져 동물원에서 지내야만 하는 사바나의 처지가 자신과 비슷하다고 느낀 남우는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엄마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사바나가 이틀 만에 동물원 직원에게 붙잡혀 가자, 계속 울다 결국 며칠 동안 앓게 된다. 유일하게 위안이 되었던 사바나와의 헤어짐은 남우에게 또 다른 가족을 잃은 슬픔을 주게 되고, 그동안 참았던 아픔을 열병으로 토해낸다. 그러나 남우에게 슬픈 일들만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동안 엄마의 존재를 숨기고 만나지 못하게 막았던 할머니가 엄마를 만나게 해 준 것이다. 드디어 엄마를 만난 날, 상상 속에서 그려 보았던 엄마보다 예쁘거나 멋지지 않아서였을까? 아니면 기억도 나지 않는 엄마의 얼굴이 낯설어서였을까? 엄마를 만난 순간 남우는 눈물이 나지 않는다. 이것저것 사주겠다는 엄마에게 남우는 동물원에 같이 가자고 한다. 마지막으로 유인원사로 간 남우는 우리 안에 있는 사바나와 다시 만난다. 둘은 마음속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가장 친한 친구가 되기로 한다. 즐거운 시간도 잠시, 엄마는 보살펴야 할 다른 가족이 있어 남우와 오랫동안 함께하지 못한다.

엄마와도 사바나와도 또 다시 긴 이별이 시작되지만 남우는 이제 더 이상 그리움을 마음속에 숨겨두지도, 아파하지도 않을 것이다. 사바나 원숭이를 보면서, 자신을 보며 미안해하는 엄마를 보면서 슬픔을 이기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아픔과 상처가 때로는 가혹한 인생의 순간을 견디게 해주는 거름이 되는 것 같다. 결코 유쾌하거나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동화는 아니지만, 책을 잡은 손끝으로 따뜻함이 전해진다. 나는 아직 가까운 사람과 헤어지거나 소중한 것을 잃어 본 경험이 없다. 언젠가 나에게 슬픔이 닥쳐올 때 나도 이야기 속 주인공처럼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

신영복 교수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책을 읽는 시간보다 책을 덮고 읽은 바를 되새기듯 생각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일 년이면 천여 권의 책을 사서 도서관을 채우다 보니 항상 쫓기듯 아이들 책을 읽는 습관이 있었다. 사색과 감동은 멀리 던져둔 채로 말이다. 『안녕, 사바나』를 읽은 후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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