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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새책 깊게 읽기 - 따뜻한 사람들 있어 세상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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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9 18:55 조회 5,80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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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를 비껴가던 기억이 있다. 혹시 감정이 얽혔을 때 인간적이지 못하다는 말을 들을까봐 겁이 나 그 친구가 내 옆에 오지 않기를 바랐다. 어른이 되어 그 친구에 대한 기억이 떠오를 때면 나 자신의 편협함에 어린아이처럼 도리질을 친다. 이 책을 읽으며 오랫동안 잊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일어나』는 왈가닥으로 소문난 아이가 시력이 점점 희미해져가는 친구의 곁을 지켜주는 아름다운 우정 이야기다. 주인공은 얼굴도 예쁘지 않고 몸집도 고릴라처럼 크고, 공부도 별로다. 하지만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 이북 사투리까지 멋대로 구사하는 장난기와 유머를 지녔다. 이름은 쾌한이다. 유쾌한. 언뜻 보면 별 볼일 없어 보이지만 하모니카로 ‘엘리제를 위하여’나 하이든의 ‘세레나데’를 기가 차게 부르는 매력 덩어리, 튀는 것을 좋아하고 남이 뭐라고 하든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하고야 마는 당찬 아이다.

작가는 사람 사는 맛을 유머와 따뜻함에서 찾고 있다. 곳곳에 나타나는 유머와 맛깔스런 비유에 책 읽는 맛이 난다. “십년 쓰고 버린 싸리 빗자루 머리를 해가지고……”, “호박잎에 청개구리 뛰어오르듯 엄마한테 대들래.”, “그러게 왜 자꾸 장비더러 풀벌레를 그리라고 해?” 적재적소에 사용된비유는 책을 읽는 내내 킬킬거리게 만든다. 또 엄마와 딸의 대화로는 믿기지않을 만큼 거침없는 언어, 통통 튀는 대사도 재미있다.

따뜻함은 이 책의 중요한 감상 포인트다. 쾌한의 인간에 대한 이해만큼은 초등학교 6학년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따뜻하다. 쾌한은 미르를 이해하기 위해 하루 동안 눈을 감고 지내본다. 그러면서 미르의 잔잔한 움직임의 이유를, 아픔을, 불편함을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쾌한의 이런 성품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았다. 장애가 있고, 부모도 없는 가난한 아이와 사귀려는 딸을 진정으로 응원해주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 쾌한의 부모는 남다르다. 쾌한의 엄마는 툭하면 농담이나 하고 악쓰고 큰 목소리로 떠들지만 일곱명의 아이들을 남몰래 후원하는 사람이다. 미르네 옥탑방이 추운 것을 알고 히터를 보내고 찬거리를 싸서 보낸다. 쾌한의 아버지는 사립학교 교사다. 하지만 이사장이 학교를 멋대로 쥐락펴락하는 학교를 그만두고 대안학교를 선택한다. 미르를 사귀는 것에 대해서도 상처안 받고 크는 사람 없다며 쾌한의 선택을 인정한다.

이들은 평범하지만 인간 도리의 심지가 꿋꿋하고 올바른 사람들이다.
미르는 작가의 꿈을 꾸지만 점점 희미해지는 시력으로 꿈이 사라질까 두렵다. 얼굴을 무릎 사이에 파묻은 채 이끼 낀 바윗덩이처럼 앉아 있는 미르를 보고 쾌한은 말한다. “일어나. 누군가 지원사격해 줄 때 때를 놓치지 말고 일어나 달려 나가야 하는 거여. 강미르, 일어나서 전진! 전진! 네 옆엔 내가 있잖아. 이렇게 기꺼이 지원사격해 주는 친구가 있잖아.” 쾌한은 자기와 미르에게 마법을 걸고 있다.



아빠가 그랬다. 무슨 일이 일어나길 진심으로 바란다면 그 일이 일어날 거라고, 자꾸 입 밖으로 말하라고. 말은 마법과 같아서 말대로 된다고, 엄마도 그랬다. 말이 씨가 된다고. 그래서 난 마법을 걸듯이, 씨앗을 심듯이 정확하고도 조심스럽게 연신 말했다. 미르야, 넌 할 수 있어. 내가 도와줄게, 라고.

『일어나』는 장애우와의 우정을 그린 사뭇 무거운 주제를 주인공의 성격에 맞게 유쾌, 상쾌, 통쾌로 이끌어간다. 특별한 것 없는 스토리 전개지만 단숨에 읽어낼 수 있는 필력이 있다. 작가의 글은 이야기가 많은 그림을 보는 듯하다. 사람들, 거리 풍경, 슈퍼, 옥탑방, 교회 들이 눈에 보이듯 펼쳐진다. 글의 곳곳에서 작가의 사물에 대한, 인간에 대한 깊이가 느껴진다.

등장인물들의 당당함, 솔직함, 자신감이 좋다. 슈퍼 주인이지만 언제나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엄마, 불의를 못 참아 대안학교를 선택한 아버지, 장애를 가졌지만 쾌한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미르, 자기 집에 올 때 통행료를 내라고 당당히 말하는 소리, 폐휴지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손자에 대한 소신을 갖고 있는 할머니. 세상에 당당한 이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좋다. 어린 독자들이 책 속 인물들의 자신감, 당당함, 솔직함을 배웠으면 한다. 미르를 통한 쾌한의 자기 성장도 주목할 만하다. 쾌한은 미르에게 하모니카를 가르쳐주고, 책을 읽어주면서 덩달아 자기도 책을 읽게 된다. 또 미르의 장애를 경험하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간다. 요즘 아이들은 공공연하게 이성교제를 한다. 그 아이들은 상대에게서 무엇을 배울까? 모쪼록 쾌한과 미르처럼 건강하고 당당한 관계로 지내기를 기대해본다.

초등 고학년에 알맞은 동화이긴 하나 특히 주변에 장애우를 가까이 둔 아이들이나 어른들에게 권하고 싶다. 장애우들도 꿈을 꾸며 세상에서 ‘일어나’고자 한다는 것을 일깨우고 그들을 쾌한이처럼 지원해주는 인간적인 따뜻함을 지니기를 바란다. 저자가 ‘친구의 상처를 멀찍이 서서 구경만 하는 게 아니라 침 발라 아물리려 애쓰는 유쾌한의 서툰 몸짓이 있어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말이 이 책을 다 읽고난 후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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