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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오늘은 뭐하고 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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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8-03-19 17:13 조회 43,548회 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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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오늘은 뭐하고 놀까? 
 
- 열 살 딸, 시인 아빠랑 세상책 읽기
 
 
글·그림 박규연 | 사진 박성우
 
 

규연이의 말_ 근데 이제는 알 것 같다

 
처음엔 이게 책이 되는 줄 모르고 글을 썼다. 여기에 있는 글, 그림들은 엄마 아빠랑 3, 4학년 때 여행 갔다 온 걸 쓰고 그린 거다.
 
3학년 때 간 곳은 단양과 정읍시골, 용유도, 산, 세월호 광장, 시흥갯골, 골목,국립과천과학관, 산수유 마을 등이다. 먼저 단양, 정읍에 갔을 때는 단양팔경도 외우고 할머니 집에 갔다가 고사리를 뜯었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도 같이 가서 좋았고, 단양팔경을 다 외운 게 뿌듯했다. 용유도 삼일독립만세기념비랑 조름도에 갔을 때는 큰구슬우렁이가 먹은 구멍 뚫린 조개를 봤는데 뭔가 무섭기도 하고 신기했다. 산에 가서는 ‘나비무덤’도 가고, 나무도감도 찾아봤는데 참나무 종류를 찾아본 게 재밌었다. 세월호 광장에 갔을 때는 세월호 공부도 하고 노란리본 열쇠고리도 만들었다. 열쇠고리를 여러 개 만들고 나니까 엄지손가락이 아팠던 게 기억에 남는다. 시흥갯골생태공원에 갔을 땐 염전 가운데 길도 걷고 갯벌도 갔는데 갯벌에서 본 엄청 큰 농게가 생각난다. 골목길을 걸었을 때는 벽화도 보고 학교 문방구도 갔는데 길을 가다가 ‘소변금지’라고 벽에 써 있던 게 웃겨서 기억에 남는다. 국립과천과학관에 갔을 때는 아빠랑 헤드셋 끼고 얘기했던 게 재밌었다. 온천이랑 산수유마을, 섬진강어류생태관에 갔을 때는 「14K」라는 시를 읽었는데 감동적이었다.
 
4학년 때는 유리섬, 도서관, 현대미술관, 신경림 시인 생가, 할머니 집, 구로공단 노동자 생활체험관, 아빠 구절초밭, 철도박물관 등에 갔다. 유리섬, 4·16기억교실에 갔을 때는 박성호 오빠한테 편지를 쓴 게 기억에 남는데 다 쓰고 뿌듯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금천구립시흥도서관에 갔을 때는 하늘공원에 간 게 가장 좋았다. 도서관은 지금도 가끔 가고 있다. 현대미술관에 가서는 할머니가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을 받는 걸 처음으로 봤는데 거기서 나도 엄마가 상을 받게 해주고 싶단 생각을 했다. 신경림 시인 생가, 노은초등학교, 함민복 시인 생가를 갔다 올 때는 함민복 시인 친구분 강아지인 ‘순심’이랑 놀았는데, 순심이가 내 과자를 먹어준 게 기억이 난다.
 
할머니 집에 갔을 때는 고추 따기도 하고, 가지 따기, 아카시아 잎줄기로 게임하기 같은 걸 했는데 나는 아카시아 잎줄기로 게임했던 게 가장 재밌었다. 구로공단 노동자 생활체험관에 갔을 때는 아빠가 “우리나라가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 덕분”이라고 한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빠 구절초밭과 작업실이 있는 동네를 갔을 때는 아빠 작업실에서 원고지에 글을 써봤던 것이 생각난다. 마지막으로 철도박물관에 가서는 『증기기관차 미카』를 읽어서 더 재밌었고 거기 있는 기차들이 모두 진짜라서 신기했다.
 
글을 쓰면서 힘들 때도 있었는데 엄마 아빠랑 여행도 많이 가고 대화도 평소보다 많이 해서 좋았다. 아빠랑 얘기를 많이 해서 생각도 넓어진 것 같다. 아빠가 예전에 할머니도 책이고 외할머니도 책이라고 했다. 자연 같은 것도 좋은 책이라고 했는데 그때는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근데 이제는 알 것 같다.
 
2018년 2월, 박규연
 
아빠놀까 평면표지.jpg
 
 
아빠의 말_ 친구 같은 아빠, 친구 같은 딸!
 
 
좋은 아빠는 되지 못하겠지만 친구 같은 아빠는 되고 싶었다. 언제든 만나 미끄럼틀이나 그네를 같이 타며 노는 친구. 그림도 같이 그리고 뒹굴뒹굴 책도 같이 읽는 친구. 공기놀이며 오목 같은 걸 하고 놀다가 토라지기도 하는 친구. 그러다가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키득키득 즐겁고 신나게 함께 노는 친구. 하지만, 일터에 나가 밥을 버느라 떨어져 지내야 하는 날들이 많았고 그럴수록 딸애에게 미안한 마음만 커져갔다.
 
딸애가 일곱 살 때였다. 모처럼 평일에 하루가 비었다. 나는 딸애 손을 잡고 유치원으로 가지 않고 서울대공원으로 갔다. 딸애와 나는 흥얼흥얼 폴짝폴짝 신나게 돌아다니며 놀았다. 그간 하지 못했던 비밀 얘기도 하고, 먹고 싶은 것도 실컷 사 먹었다. 거침없는 하루를 보내고 어느새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을 때였다. “아빠, 우리가 여기에 방금 전에 온 거였으면 좋겠다! 그치?” 뭔가 뭉클했다.
 
꿈을 꾼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딸애의 꿈을 알게 된 건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 때이다. 전에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부끄러워서 말하지 않은 거라고 딸애는 말했다. 아, 꿈이 생기다니! 나도 덩달아 가슴이 뛰었다. 내가 따르는 안상학 시인이 지어준 딸애 이름 ‘규연’은 별이름 규(奎)에 궁구할 연(硏)을 쓴다. 나는 딸애를 규연이라 부르면서 딸애가 별이름을 궁리하는 시인이 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했고, 별이름을 궁리하는 과학자가 되어도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아이들의 말은 그대로 받아쓰기만 해도 시가 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미 딸애의 말을 그대로 받아써서 동시집을 내기도 했다. 딸애가 유별나서가 아니라 아이가 하는 말을 허투루 흘려듣지 않고 귀하게 모셨을 뿐이다. 딸애가 네 살이 되던 무렵부터 쉬는 날이면 딸애와 같이 뒷산자락을 걸으며 산책하곤 했다. 처음엔 애 엄마에게 혼자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해 시작했지만 점차 딸애와 내가 마음을 열어 나누는 풋풋한 시간으로 자리 잡아갔다. 이제 이 일은 내 가장 소중한 일 중의 하나가 되었다. 딸애와 나는 어쩌면 산길 산책을 하는 게 아니라 딸애는 ‘아빠 산책’을 하고, 나는 ‘딸애 산책’을 하는 게 아닐는지.
 
엄마 아빠와 어딘가를 다녀온 딸애는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 별건 아니고 일기 같은 생활글이었다. <학교도서관저널>과 연이 닿아 이걸 그림과 함께 연재하기도 했다. 나는 딸애가 어떤 글을 쓰든 관여하지 않는다. 오자나 띄어쓰기 정도를 봐주기는 하지만, 말이 되지 않는 서툰 문장을 써도 오히려 아이다운 글이라 여긴다. 나는 그저 아직 활자화되지 않은 세상의 책을 함께 읽으면서 친구 같은 아빠, 친구 같은 딸이 되어가는 게 마냥 좋다.
 
지난 2년여 동안 격려를 아끼지 않은 서정원, 최문희 선생님과 예쁜 책을 만들어주신 이은진, 박주희 선생님께 고마운 마음 전한다.
 
2018년 2월, 규연이 아빠 박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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