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살아 내는’ 것 아닐까? -<얘들아! 삶은 고전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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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전문학전기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6-10-27 14:31 조회 14,112회 댓글 0건본문
“아…… 쌤, 너무 막막해요. 대학에 가도 달라진 게 없어요.”
얼마 전 한 제자가 찾아 왔습니다. 올해 막 대학에 들어간 신입생이었지요. 그런데 표정이 밝지 않았습니다. 삶을 지탱해 줄 무언가가 빠져 있는 느낌이랄까요? 축 쳐진 어깨는 무거워 보였습니다.
‘막막하다’ 그 한마디에 모든 고민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그럭저럭 수능을 보고 점수에 맞춰 대학에 갔습니다. 막상 대학생이 되었지만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무언가가 되겠다고 딱히 생각한 것도 없습니다. 아이는 삶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제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아이들은 ‘표류 시대’를 살아가는 게 아닐까. 공부도, 시험도, 대학에 가는 것도 자신이 스스로 계획하고 생각한 거라 보긴 어렵겠지요. 부모가 원하니까, 남들도 그러니까, 지금까지 떠밀리다시피 온 것에 가까울 겁니다. 그 모습은 거친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리는 돛단배처럼 위태로워 보였습니다. 삶이라는 배가 방향을 잡지 못해 표류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대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어서도 그 표류가 언제까지 계속될 진 알 수 없었습니다.
얼마 전부터 고전이 열풍입니다. 곳곳에서 인문학 강연이 열리고, 고전과 관련된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고전 과목도 신설되었지요. 대입 논술시험을 위해 아예 고전만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입시학원까지 등장했더군요. 자연히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어떻게 고전을 읽어야 할지 궁금해 합니다.
그런데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고전을 읽지 않아도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갑자기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고요? 이 말에 적잖이 당황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네요. 하지만 정말입니다. 벌어먹고 사는 데 고전 그 자체가 큰 힘을 발휘하지는 않습니다. 고전을 열 권 더 읽었다고 월급이 두 배로 늘어나지는 않으니까요. 오히려 그 시간에 자격증을 따거나 경력을 쌓는 게 훨씬 빠르겠지요. 좀 더 솔직하게 말해 볼까요? 고전 과목이 신설된 후에도 학교에는 고전을 읽는 학생이 드물고, 어쩌다 읽더라도 학교생활기록부와 독서이력을 위한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졸업과 동시에 고전과 ‘굿바이’ 하는 거죠. 고전에서 고전(苦戰)했던 기억을 저 뒤편으로 남긴 채 말이에요.
그렇지만 생각해 보세요. 산다는 것, 그것은 살아남는 것이 아닙니다. 목숨만 부지한 채 시간의 흐름에 이리저리 떠도는 생이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나만의 언어와 철학 없이, 내 삶의 주어가 되지 못하는 인생이 과연 어떤 가치를 지닐까요? 청소년들이 이 사실을 꼭 알았으면 합니다. 산다는 것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살아 내는’ 것임을요. 이 책을 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고전을 읽지 않아도 먹고 살 수는 있지만, 더 가치 있는 삶을 ‘살아 내기’ 위해 우리는 읽고 생각해야 한다고요.
이 책에는 스무 편의 고전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옛 문학부터 세계 문학까지, 아주 익숙한 작품부터 조금은 생소한 작품까지 다양한 고전을 선별했지요. 이 고전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성적, 친구, 부모, 진로, 삶의 역경 같은 청소년기에 가장 민감하고도 어려운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고 싶었습니다. ‘공부는 왜 해야 하는지’, ‘다른 이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살면서 맞닥뜨릴 시련에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함께 찾고 싶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청소년들이 삶을 살아 내는 방법을 배웠으면 합니다. 또 마음을 키우고 더 나은 삶의 방향을 찾길 바랍니다. 시간의 흐름에 꿋꿋이 살아남은 고전은 오랜 풍파를 겪은 등대와도 같지요. 이 ‘표류 시대’에 저 멀리 환하게 켜진 등대를 바라보며 흔들림 없이 나아가길 응원합니다. 고전은 현재의 삶에 의미 있을 때 가장 빛날 테니까요.
지은이 | 박진형
이 시대의 전기수(책 읽어 주는 사람)를 꿈꾸는 국어 교사. 그리고 도서관 2분 거리에 살며 그곳을 제집 드나들 듯 하는 북밀리(Bookmily, 책가족).
고려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으며 분당에 있는 낙생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십대를 위한 고전문학 사랑방」 시리즈 (사랑편, 인물편, 감정편 전 3권)와 『도서관 옆집에서 살기』를 썼다. 이 책들은 모두 아침독서운동 추천도서로 뽑혔으며, 그중 「십대를 위한 고전문학 사랑방 - 사랑편」은 ‘2015 세종도서’로 선정되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e-NIE 튜터, 경기도교육청 독서토론논술교육지원단, EDRB 콘텐츠연구 활동 등을 했다. 또한 현재 《고교 독서평설》에 「진형 쌤의 고전평설」을 연재하고 있다. 그 무엇보다도 문학을 통해 아이들과 삶의 의미를 찾는 시간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