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 화백의 그림책 <운동화 비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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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평화를품은책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7-06-30 12:16 조회 13,063회 댓글 0건본문
안녕하세요. 꿈교출판사 평화를품은책입니다.
신간 <운동화 비행기>가 나왔습니다.
이 그림책을 쓰고 그리신 홍성담 화백은 국제 엠네스티가 1990년 ‘세계의 3대 양심수’로 선정,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가 ‘2014년 세계를 뒤흔든 100인의 사상가’에 선정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오월에서 통일로》, 홍성담 판화집 《해방의 칼꽃》, 《사람이 사람을 부른다》(夜光社/일본 도쿄/2012), 그림 소설 《바리》, 《동아시아의 야스쿠니즘》(唯學書房/일본 도쿄/2016), 소설 《난장》, 그림 에세이집 《불편한 진실에 맞서 길 위에 서다》 등이 있습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저수지에서, 뒷산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갑작스런 총격에 목숨을 잃은 두 소년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홍성담의 광주5·18 그림책 《운동화 비행기》. 오월 광주를 온몸으로 겪은 화가 홍성담은 이 책을 통해, 민주주의를 간절히 원했던 광주 사람들의 숭고한 이야기와 사건 현장을 열여섯 장의 작품으로 되살려냈습니다.
평화징검돌 07
운동화 비행기
홍성담 글·그림
양장·컬러 | 본문 40쪽 | 크기 218*250 | 값 14,800 | ISBN 979-11-85928-12-8 | 펴낸 날 2017년 6월 30일
펴낸 곳 평화를품은책 | 주소 경기도 파평산로 389번길 42-19 | 전화 031-953-1628 | 팩스 031-953-1626
이메일 bbanh@hanmail.net | 카페 cafe.daum.net/ggoom.g | 인스타그램 instagram.com/nestofpeace/
· 평화를품은책은 꿈교출판사의 평화 관련 도서 브랜드입니다.
· 꿈교출판사는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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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운동화 비행기가 날아오르다
다시 오월을 보냈습니다. 서른일곱 번째 ‘광주의 오월’. 이번 오월은 예년과 달랐습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가 5·18민주화항쟁의 역사를 딛고 섰음을 인정한 것뿐만 아니라 5·18 정신을 헌법에 담겠다고 약속했다지요. 그래서인지 이번 광주의 하늘은 더욱 푸르고, 흩날리는 아카시아 꽃잎은 유난히 눈부십니다. 《운동화 비행기》의 주인공 새날이가 그날의 슬픈 눈물 대신에 하얀 꽃잎을 우리들의 머리 위에 뿌려주는 것만 같습니다.
열두 살, 새날이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작은 마을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부드럽게 마을을 감싸 안은 산은 저 멀리 무등산의 강직한 기운을 이어 받은 주산입니다. 이 주산이 모산(어미산)인 무등산을 멀리 돌아보고 있으니 풍수적으로 회룡혈(回龍穴)에 해당해, 따뜻하고 풍요로운 기운이 느껴지는 것만 같습니다. 너른 논, 밭을 고르는 아낙들, 굵은 소나무 아래 담소를 나누는 부부⋯⋯. 한참 시골 마을에 빠져들다 위쪽으로 눈을 돌리는 순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불안한 분위기가 엄습해옵니다. 주산의 일부가 깎여 맨살을 드러내 보이고, 오른 편으로는 커다란 부엉이가 광주로 가는 길목을 지키고 앉아 있습니다. 마을을 휘돌아 나가는 개울이 신작로 부근에서 두 갈래로 갈라지는 모양도 풍수적으로 흉한 기운에 해당합니다. 마을 뒷산에 앉아 무심하게 되새김질을 하는 소가 그 흉한 기운을 돌아보며 언제나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자연에 대한 감각은 사람보다는 짐승이 더 예민하다지요. 곧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듯 긴장감이 감돕니다.
계엄군의 총에 목숨을 잃은 아이, 엄마의 울음소리에 눈을 뜨다
새날이는 찔레꽃이 만발한 늦은 봄에 태어났습니다. 마을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던 새날이의 열두 살 생일 선물은 새 운동화. 새 신발을 신으니 비행기, 자동차나 보트를 탄 것만 같습니다. 친구들과 신나게 마을길을 내달리고 저수지에 몸을 담근 그 때였습니다. “탕!” 총소리에 놀라, 나무 뒤에 숨어 숨을 고른 것도 잠시. 이내 엄마가 사준 새 운동화를 줍기 위해 슬그머니 몸을 움직이던 찰나, 또 다시 총성이 울립니다. 멀리서 새날이를 조준하고 있던 계엄군이 방아쇠를 당긴 것이지요. 눈 깜짝할 새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오로지 엄마 울음소리만 온몸을 파고들었던⋯⋯ 그 순간이 새날이 몸에 새겨진 마지막 기억이었을 겁니다.
새날이의 죽음은 80년 ‘송암동 학살’의 피해자 고 방광범 군과 고 전재수 군이 친구들과 놀다가 계엄군에 죽임을 당한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신군부의 계엄령에 맞서 총을 든 시민군의 죽음도 아니오, 광주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섰던 이들의 죽음도 아니었습니다. 거칠고 날카로운 총칼에 희생된 아이들의 아프고 서글픈 죽음이었습니다. 작가는 이유도 모른 채 죽임을 당한 두 소년을 새날이의 영혼에 실어 광주 하늘로 띄워 보냅니다.
민주주의 정신을 몸소 실천한 사람들
새날이가 탄 운동화 비행기는 자신을 쏘았던 계엄군이 탄 장갑차와 트럭을 따라 80년 오월 광주로 날아갑니다.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볼 수 있는’ 비행기일지라도 가장 궁금하고 확인하고 싶은 건 바로 그날이었겠지요. 그곳에서 새날이가 본 것은 한마음으로 도시를 지켜낸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마을 산처럼 크고 너른 논처럼 넉넉한, 강철 같은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었습니다. 생각을 나누어 대자보를 쓰고, 밥을 나누고, 부상자를 간호하며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몇몇은 시민군이 되어 총을 들었습니다. 이 총은 계엄령에 따라 광주로 투입된 군인이 들었던 그 어떤 무기와도 다른, 위험에 맞서 서로를 지키려는 강철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어른도 아이도 자리를 지키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모두가 손을 잡았습니다.
시민의 권리가 침해당하는 순간, 자발적으로 일어나 옆 사람의 손을 잡아 주고 노래를 부르고 목소리를 높이는 일은 총칼이 드리워질지라도 굽힐 수 없었던 민주 정신에 다름없습니다. 이날 사람들이 외쳤던 ‘민주주의’는 살아 있는 시민의 목소리였습니다. 그럼에도 계엄군의 총칼은 전남 도청을 지키던 이들을 기어이 침탈했습니다. 그날 새벽 동이 트는 시각에 잡혀가는 사람들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새날이가 운동화 비행기를 타고 날아 하늘에서 뿌리는 꽃잎은 바로 이들의 눈물입니다. 눈부시게 흰 꽃잎에는 37년 전 광주 사람들이 손잡고 나누며 총칼에 맞섰던 민주와 평화의 정신이 깃들어 있을 테지요. 이는 우리가 지금 다시 광주와 그날의 오월을 바라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광주, 그곳을 지킨 이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홍성담 화백, 37년 동안 품은 광주의 이야기를 그림책에 담아내다
홍성담 화백은 5·18민주화항쟁 기간에 광주에서 벌어진 일들을 꾸준히 작품에 담아내, 광주의 진실과 신군부의 만행을 알려 왔습니다. 작가는 날카롭게 사회 부조리를 찌르는 작품 활동을 계속 해나가면서도 그날 광주 이야기를 언젠간 아이들에게 들려주려는 마음을 품어 왔다고 합니다.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대중들과 만나왔던 터이지만 그림책 작가로 거듭나기는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본인이 오월 광주에서 겪은 아픔이 고스란히 드러나 아이들에게 자칫 날카롭게 전달될까 우려하며 그날의 아프고 슬픈 참상보다도 서로를 위해 손을 잡고, 총칼에 맞서며 가진 것을 나누었던 대동정신을 전달하고자 무던히 애썼습니다. 몇몇 장면을 흰 물감으로 슬며시 덧칠해 강한 형상의 날카로움을 덜어내도록 연출한 것도 이런 까닭입니다. 거기에 작가의 또 다른 전공이나 다름없는 풍수지리학과 조선 민화의 자유스러운 기법을 더해 전통화 특유의 따뜻함을 더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아이처럼 쓰고 그리는 ‘흉내’를 내기보다도 작은 섬마을에서 태어나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어 놀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주인공 ‘정새날’이 되어 새날이의 눈으로 그날 광주를 바라보려 했습니다.
37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광주는 아직까지도 지금의 현실과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흔들릴 때 혹은 성숙한 민주주의로 도약을 꿈꿀 때, 우리는 늘 그날 광주에서 꽃핀 민주 정신과 연대의 힘을 들여다보곤 했습니다. 민주적 가치를 새롭게 정립해야 할 지금, 다시 한 번 새날이와 함께 운동화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를 시간입니다.